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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보물찾기보다 어렵다는 이종무장군 묘, 쉽게 찾는 법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7. 15. 10:00
능원묘 답사를 하다보면 찾기 힘든 묘소가 많다.
주소가 애매하거나 번지수가 알려진 것과 다를 때, 또는 행정구역이 바뀐다든가 하는 여러가지 이유로 묘소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여름철에는 숲이 우거져서 근처까지 가서도 묘소를 찾기가 쉽지않은게 사실이다.
이런 묘 중에서 묘지답사 마니아들 사이에 찾기 힘든 묘중 하나로 알려진 세종 때 대마도정벌을 주관한 이종무장군 묘소다. 근처까지 가서도 도무지 입구를 찾지 못하고 빙빙돌다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온 사례가 인터넷상에 많이 올라와 있다. 마니아들 사이에 얘기가 오가고 블로그나 카페에 이종무장군묘 답사 글이 올라와도 다음에 그곳을 가보면 또 못찾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이번에 작심하고 묘소를 후배와 함께 찾았다. 사전에 충분히 도상연습을 했는데도 역시나 입구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이종무묘소찾기 완결판으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온갖 자료를 다 올려본다. 다음번 답사하시는 분들에게 충분한 자료가 되길 빌면서...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경기도기념물 제25호 이종무장군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79번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598-4
이종무장군 묘
문화재 소재지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79번지
다음이나 네이버의 지도서비를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서보면 묘소 입구를 찾기 힘들게 되어있다. 이는 용인시의 관심부족이 원인이다. 묘소까지 안내판을 설치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것을 묘소 입구에서 그만 안내판을 안보이는 곳에 설치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좀 더 쉽게 네이게이션으로 찾아갈 수 있는 주소를 공개하겠다.
이종무장군묘
네이게이션주소(민가주택)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598-4 (신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169번길 11-11 ) (이집 앞에서 하차하면 바로 옆이 이종무 장군 묘소 입구다, 사진 참조)
이렇게 하여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많이 다녀오시길...
▼ 앞에보이는 집이 598-4번지이다. 참고하시길...
■ 이종무장군 묘 안내판에서 바라본 주위 동영상-파란옷 입은 사람 서있는 곳에서 하차하세요..
이종무(李從茂)
1360년(공민왕 9)∼1425년(세종 7). 조선 초기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였고, 1381년(우왕 7)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었다. 1397년(태조 6) 옹진만호로 재직중 왜구가 침입하여 성을 포위하자 끝까지 싸워 이를 격퇴하였다. 그 공으로 첨절제사에 올랐다.
1400년(정종 2) 상장군으로 제2차왕자의 난 때 방간(芳幹)의 군사를 무찔러 좌명공신(佐命功臣)4등에 녹훈되고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다. 의주의 병마절제사를 거쳐, 1406년(태종 6) 좌군총제(左軍摠制)가 되고 이어서 우군총제를 겸하였으며, 이해에 장천군(長川君)에 개봉(改封)되었다.
1408년 남양·수원 등의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중군도총제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안주도병마사가 되었다.
1411년 안주절제사를 역임하고, 이듬해 별시위좌이번절제사(別侍衛左二番節制使)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3년 동북면도안무사 겸 병마절도사를 거쳐, 영길도도안무사(永吉道都安撫使)가 되었다.
1417년 좌참찬을 거쳐 판우군도총제(判右軍都摠制)·의용위절제사(義勇衛節制使)를 지내고, 1419년(세종 1)에는 삼군도체찰사에 올랐다. 이해에 왜선 50여 척이 비인현의 도두음곶(都豆音串)에 침입하여 병선을 불태우고 약탈하였으며, 절제사 이사검(李思儉)을 해주·연평곶(延平串)에서 포위하는 등 침입이 잦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적의 허점을 틈타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對馬島)를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그로 하여금 전함 227척, 군량 65일분, 군졸 1만 7,285명을 거느리고 대마도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이에 그는 정벌군을 지휘하여 대마도를 공략하여 대소 선박 129척을 소각하고, 가호(家戶) 1,940여호를 소각하였으며, 적 114급(級)을 참수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귀국한 뒤 찬성사에 승진하였으나, 불충한 김훈(金訓)·노이(盧異) 등을 정벌군에 편입시켰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삭직되어 상원(祥原)에 유배되었다.
이듬해에 복관되고, 1421년 부원군(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다음해 사은사로 또다시 명나라에 다녀왔으나, 동행하였던 정희원(鄭希遠)의 불경한 행동을 직계하지 않아 1423년 과천에 부처(付處)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와 복관되었다. 시호는 양후(良厚)이다.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는 이종무 장군. (세종대왕기념사업회)<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 네비를 찍고 한참 가다보면 안내판을 만난다.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되는데... 못미더워서 거기
사시는 아주머니께 물어봤다가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 당신은 영일정씨라서 안가봤다나..ㅎㅎ
▼ 위에 있는 간판앞에서 바라볼때 풍차 왼편길로 올라가면 된다..
▼ 약300미터를 가면 전봇대에 아주 작은(?) 글씨로 안내판이 보인다..
▼ 전봇대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분명 묘소 근처인데 여기서 해멘다. 도무지 입구를 찾을 수 없어서.
잘 보면 숲속에 안내판이 보인다.. 무슨 보물찾기 하는 것 같다.
▼ 들어가는 입구의 길이 없다보니(아마도 사유지인듯...) 밭고랑으로 들어선다
▼ 드디어 찾았다..
▼ 아랫쪽 집(안내판 앞집)이나 위에서 말한 집(안내판 오른쪽집)을 기점으로 찾으면 된다.
▼ 이종무장군의 묘. 1975년 9월 5일에 경기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묘는 광교산(光敎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장수이씨 양후공파(襄厚公派) 후손들의 고증에 따르면,
묘소를 실전했다가 문중의 기록을 근거로 다시 찾았다고 한다. 봉분은 사방 13척 정도의 장방형
호석(護石)이 둘러진 형태이며, 정면에는 묘비와 상석(床石)이 있다. 좌우로는 무덤을 수호하기 위해
세우는 2개의 문신석(文臣石)이 있다. 처음에 건립되었다는 신도비(神道碑)와 재실(齋室)은 현존하지
않는다.
▼ 이종무장군의 묘비... 1975년 묘소 정비할 때 세웠다.
▼ 이종무장군의 장명등 흔적..
▼ 이종무장군의 묘 전면...
▼ 이종무장군의 청룡쪽 문인석
▼ 이종무장군의 백호쪽 문인석
▼ 이종무장군의 묘비 뒷면
▼ 이종무장군의 묘 측면.. 잡풀이 무성하다...
▼ 이종무장군의 묘 후경.. 숲이 우거져서 묘역을 감평하기는 힘들다..
▼ 이종무장군의 묘역 백호 사격
▼ 이종무장군의 청룡쪽...
▼ 이종무장군의 묘역 입구...
■ 이종무장군 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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