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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관악]효민공 이경직 묘 및 신도비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7. 20. 10:00

    효민공 이경직 묘 및 신도비


    함풍군 묘역을 나와 남현동 관음사 입구에 있는 이경식 묘를 보러 가면서도 쉽게 생각했다.

    관악산을 오르면서도 그 옆에 묘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체 등산을 하곤 했었는데

    본격적으로 묘지탐방을 하면서 지척에 두고도 못간게 괜시리 겸연쩍기도하고 한심스럽기도하고 해서

    무조건 이경직선생 묘는 보겠다는 일념으로 오늘 답사를 나섰는데... 비가 억수로 내린다.

    산속으로 들어가는것 자체가 엄청나다. 겨우겨우 들어섰는데 문이 굳게 닫혀있다.

    담장을 따라 한바퀴 완전히 돌았는데도 어디하나 빈틈(?)이 없다.

    담치기 할까 했는데 이런 음산한 날 괜히 선현이 주무시는데 시끄럽게해서

    이로울게 없다는 생각에 멀찌기서 카메라를 최대한 당겨 사진 몇장 찍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사진도 거의 없다. 겨우겨우 몇장 건져 내가 찍은것과 함께

    답사기를 써본다. 인터넷에 올려주신 분들... 복받을 겁니다..감사



    이경직(李景稷)


    1577년(선조 10)∼1640년(인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상고(尙古), 호는 석문(石門). 정종의 8대손이며, 동지중추부사 유간(惟侃)의 아들이다.
    이항복(李恒福)과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1년(선조 34)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1605년에 전시(殿試)에 합격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올랐다. 이후 1609년(광해군 1)에 승문원주서 겸 시강원설서, 1610년에 홍문관정자·봉교, 이듬해에 전적·호조좌랑·수찬·병조좌랑 겸 지제교 등을 역임하였다.
    1613년 병조정랑으로 승진하였으나 이이첨(李爾瞻)이 득세하여, 이른바 계축옥사를 도모하자 이에 연루된 서성(徐渻)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수성찰방(輸城察訪)으로 나갔다가 파직되었다.
    그뒤 황해도도사로 복직되고, 다시 병조정랑이 되어 접반관(接伴官)·진휼종사관(賑恤從事官)·평안도경차관(平安道敬差官) 등을 겸하였다.
    1617년에는 오상윤(吳相允)과 같이 일본에 회답사(回答使)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1618년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이에 반대하여 사직하고, 약 5년여를 고향에 내려가 지냈다. 이후 1622년 명장(明將) 모문룡(毛文龍)이 가도(椵島)에 주둔하자 그는 백의종군하였으며, 곧이어 철산부사가 되어 모문룡의 신임을 얻었고, 인조반정 이후 형조참의·의주부윤이 되었다.
    또한,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전라도절도사로 여산(礪山)으로 달려가 병사들을 모으고 난군 진압에 힘썼으며, 그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오르면서 수원부사가 되었다.
    1626년(인조 4)에 부총관·장례원판결사를 거쳐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도체찰찬획사(都體察贊畵使)·비변사유사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병조참판으로 왕을 강화도에서 호종하고 강화가 성립될 때 접반사로 활약, 환도 이후 호조참판이 되었다.
    1629년 도체찰부사(都體察副事)로서 모문룡의 병기(兵機)를 파악하기에 노력하였으며, 호조참판·경기도관찰사를 거쳐 1634년 도승지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부호군으로 비변사당상을 겸하여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하였고, 화의가 성립된 뒤 호조판서가 되었으나 영의정 김류(金瑬)와의 불화로 일시 정직되었다가 다시 도승지·강릉부사·동지중추부사 겸 경도총관을 거쳐, 1640년에 강화유수로 있다가 병으로 죽었다.
    관료로서 재주가 있고 품위가 준수하였으며, 특히 사부(詞賦)와 글씨가 뛰어났다.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효민(孝敏)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서울시 유형문화재 105호
       효민공 이경직 묘역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산57-48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산57-34 관음사입구 
       전주이씨 우곡공파(愚谷公派) 종중(관악구문화체육과 02-880-3496)


     

     

     

     

     

     

     

     

     

     

     

     

    ★전주이씨 덕천군파 계보
    정종대왕   10왕자
    덕천군
      제1자
    新宗君
    (신종군)
      장남
    莞城君
    (완성군)
      차남
    商山君
    (상산군)
      장남
    億孫
      惟貞
    (유정)
     
    (응)
     
    4남
    咸豊君
    (함풍군)
      외아들
    秀光
      3남
    惟侃
    (유간)
      1.李景稷(이경직)   이장영,
    이후영,
    이정영
     
    2.李景奭(이경석)

    *계보에서 색깔로 된 이름을 클릭하면 바로가기 됩니다.

     

    ▼ 효민공 이경직 신도비 

     

    이곳은 조선 인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이경직(李景稷: 1577~1640)과 그의 두 부인인 보성오씨(寶城吳氏)와 고성이씨(固城李氏)의 삼위합장묘가 있는 묘역이다. 이경직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상고(尙古)이며 호가 석문(石門)이다. 1605년(선조 38년)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다.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 때는 병조참판으로 뛰어난 외교적인 능력을 발휘하였고 그는 도승지와 호조판서를 거쳐 강화유수가 되었다가 별세하여 우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효민(孝敏)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비각 안에 있는 신도비는 1668년(현종9년)에 세운 것이다.


     

     

     

     

     

     

     

     

     

    ▼ 효민공 이경직 신도비 안내판- 아무리 당겨도 이정도 밖에 안보인다..

    ▼ 효민공 이경직 신도비 원경

    ▼ 효민공 이경직 신도비각<출처:다음카페 나홀로테마여행> 

    ▼ 효민공 이경직 신도비<출처:다음카페 나홀로테마여행>  

    ▼ 효민공 이경직 묘역 안내판

    ▼ 효민공 이경직 묘역

    ▼ 효민공 이경직 묘... 담장너머로 겨우 찍은 사진..

    ▼ 효민공 이경직 묘역

    ▼ 효민공 이경직 묘<출처:다음카페 나홀로테마여행>  

    묘는 북향인데 특이하게 햇빛을 많이 받는듯 보인다. 관악산에서 내려온 산줄기지만 묘역이 유혈인데다 

    용호사격이 낮아 아침이나 오후에도 햇빛이 부족하지 않아보인다.

    ▼ 효민공 이경직 묘역 입구... 굳게 닫힌 묘역.. 어디로 연락하라는 연락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쉬움 가득안고 돌아왔다. 비는 하염없이 주룩주룩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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