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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순흥안씨 양도공파 묘군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7. 22. 10:00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군
정정공 강사상선생 묘역을 지나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군을 찾아가는데 중간에 호암산 호압사를 지난다.
시간이 되면 호랑이기운을 누르기위해 세웠다는 호압사를 들르고 싶었지만 그냥지나쳐 아쉬움이 남는다.
별도로 한번 찾아가야할 곳이다.
묘역이 넓을 때는 항상 재실이 있는 곳의 번지로 네비게이션을 설정해야 한다. 순흥안씨 묘역은 상당히
넓은 지역에 걸쳐 있지만 주요인물은 재실이 있는 곳에 모여있어서 답사하기에는 아주 좋다.
또한 종무소에 계시는 종중 어른께서 얼마나 친절하신지 사당동 동래정씨 묘역과 너무도 대비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묘역 여기저기를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감사드립니다.
조선 전기의 개국공신인 순흥 안씨 양도공파의 3대에 걸친 묘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묘소에는 봉분 3기,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 3기, 묘비 3기, 문·무관석 8기, 장명등(묘지 앞에 있는 돌로 만든 등) 2기 등이 있다. 묘가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서 조선 전기 분묘의 형식을 이해할 수 있으며, 묘 앞에 세워진 인물상 등을 통해 묘의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4호 순흥안씨묘군 (順興安氏墓群)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산 126-1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54-2 재실 순흥안씨양도공파종회
▼ 순흥안씨 양도공3대영원 표석
▼ 순흥안씨 양도공 묘역
▼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 위치도... 이렇게 되어있으면 답사하기 아주 편하다.
▼ 순흥안씨 묘역 입구 추모재
▼ 순흥안씨 양도공 재실
▼ 순흥안씨 양도공파 사패기지비
안경공(安景恭)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손보(遜甫). 할아버지는 충목왕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안축(安軸)이며, 아버지는 조선왕조 건국에 참여하여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에 오른 안종원(安宗源)이고, 어머니는 우상시(右常侍) 김휘남(金輝南)의 딸이다. 부인은 문정공(文貞公) 정사도(鄭思道)의 딸로, 공신의 맏며느리이므로 의정택주(懿靜宅主)에 봉해졌다. 아들로 정숙공(靖肅公) 안순(安純)을 두었다.
안경공(安景恭)[1347~1421]은 1365년(공민왕 14) 국자감시(國子監試)에 합격하고 산원(散員)을 거쳐 1376년(우왕 2) 의영고부사(義盈庫副使)로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어 전리좌랑(典理佐郞), 전법좌랑(典法佐郞), 사헌지평(司憲持平) 등을 역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1382년(우왕 8) 경상도안렴사로 있으면서 합주(陜州)에서 사노(私奴)들이 일으킨 난을 진압하였고, 삼사좌사(三司左使)·판통례문사 진현관제학(判通禮門事進賢館提學)·판전교시사 지제교 예의판서(判典校寺事知制敎禮儀判書)를 거쳐 전법판사(典法判事)에 제수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옹호하다가 오히려 좌천되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의 건국에 참여하여 중추원도승지(中樞院都承旨)에 제수되었다. 이후 사헌부대사헌 겸 도평의사사 보문각학사(司憲府大司憲兼都評議使司寶文閣學士)와 전라도관찰출척사(全羅道觀察黜陟使)에 임명되었다. 1406년(태종 6)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를 거쳐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가 되어 약 4개월 동안 수도 행정의 최고 책임자로 일하였다.
1410년(태종 10) 판개성부사가 되었다. 이듬해에 정탁(鄭擢), 유창(劉敞) 등 개국 공신들과 함께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 때 주살된 정도전(鄭道傳)과 남은(南誾)의 죄를 감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1416년 집현전대제학(集賢殿大提學)에 제수되었다.
<디지털구로문화대전에서 인용>
▼ 양도공 안경공 묘역
▼ 양도공 안경공 묘
▼ 양도공 안경공 묘비
▼ 양도공 안경공 묘 문인석
▼ 양도공 안경공 신도비(왼편 구신도비, 오른쪽 신신도비-재실 앞에 세워져 있음)
▼ 양도공 안경공 묘
▼ 양도공 안경공 묘 후경
안순(安純)
1371년(공민왕 20)∼1440년(세종 2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현지(顯之).
증조부는 고려 말기의 학자로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역임한 축(軸), 할아버지는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를 역임한 종원(宗源), 아버지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경공(景恭)이며, 어머니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사도(鄭思道)의 딸이고, 부인은 정당문학 정공권(鄭公權)의 딸이다.
1380년(우왕 6)에 10세의 나이로 행랑도감판관(行廊都監判官)에 음보되었으며, 1383년 진사시에, 1388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9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다.
1390년(공양왕 2)에 성균학유가 되었으며, 1392년(태조 1)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사재주부(司宰注簿)로 발탁되었다.
1393년에 사헌감찰, 이듬해에는 좌습유 겸지제교(左拾遺兼知製敎)로 승진하였다.
1396년에 김해판관으로 좌천된 적도 있으나 1397년에 예조좌랑 세자우시직(世子右侍直)으로서 중앙관에 복귀되었다.
1398년 여름에 강원도도사가 되었다가 이해 가을에 사헌잡단(司憲雜端)으로 다시 중앙에 복귀되었다. 그가 사헌잡단으로 재직하던 때에 궁녀 한명이 죄를 범한 일이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태조는 당시 대사헌이던 조박(趙璞)에게 그 궁녀를 처형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조박은 안순에게 곧 처형할 것을 명하였으나, 그는 “사헌부는 형관이 아니며, 더구나 그 사람의 죄가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처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조박은 명령대로 할 것을 그에게 요구하였으나, “사람은 한번 죽으면 그만인데 극형에 처함은 불가하니 우선 유사(有司)에 명하여 먼저 심문부터 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으니, 이러한 일화가 암시하듯이 그는 강직한 인물이었다.
1401년(태종 1) 병조정랑 겸형조도관, 1403년 겸사평부경력(兼司平府經歷)·사헌부장령을 거쳐, 1407년 승정원우부대언에 발탁되고, 1409년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경상도관찰사, 1411년 좌군총제(左軍摠制)·집현전제학, 1414년 충청도관찰사를 지냈으며, 1419년(세종 1) 호조참판으로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1420년에는 공조판서로 승진하였다.
1423년 함길도도관찰사에 이어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호조판서가 되었고, 1432년에 판중추원사 겸판호조사(判中樞院事兼判戶曹事), 1435년에 의정부찬성사, 1437년에는 충청도 지방의 기근을 수습하기 위한 도순문진휼사(都巡問賑恤)로 임명되어 그 임무를 잘 수습한 공로로 숭정대부에 올랐다.
그는 오랫동안 호조판서 또는 판호조사를 겸하면서 국가의 전곡(錢穀)을 관장하였는데, 그 경비출납의 제문제가 추호도 틀림 없이 정확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수많은 관직을 역임하였지만 특히 국가의 재정을 책임맡은 직에서 가장 공로를 쌓았던 것이다.
1439년에 신병으로 금천별서(衿川別墅)에 은퇴하였다가 그 이듬해에 죽었다.
저술로는 《근재집(謹齋集)》 부록에 유고가 실려 있다. 시호는 정숙(靖肅)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 정숙공 안순 신도비...뒷편에 보이는 묘가 안순 묘... 안경공의 아들이다.
▼ 정숙공 안순 묘
▼ 정숙공 안순 묘 전경
▼ 정숙공 안순 묘비
▼ 정숙공 안순 묘 장명등
▼ 정숙공 안순 묘 문인석
▼ 정숙공 안순 묘
안숭선(安崇善)
1392년(태조 1)∼1452년(문종 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중지(仲止), 호는 옹재(雍齋).
고조부는 고려 말기의 학자로서 도첨의찬성사를 역임한 축(軸), 증조부는 판문하부사를 역임한 종원(宗源), 할아버지는 선의 개국공신에 오른 경공(景恭), 아버지는 판중추원사를 지낸 순(純)이다. 부인은 송씨(宋氏)로 판전농시사 천우(千祐)의 딸이다.
그는 1411년(태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15년에 음보로 계성전직(啓聖殿直)에 임명되었으며, 1418년에는 사헌감찰에 이르렀다.
1420년(세종 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평으로 승진하였고, 그 이듬해에 이조전랑으로 전보되었으며, 1426년 장령이 되었다. 이때 사헌부에서 예조참판 이명덕(李明德)을 수차에 걸쳐 탄핵하였는데 그가 앞장을 섰다.
이 일로 세종의 뜻에 거슬려 좌천되었으며 곧 사헌부집의에 임명되었고, 1429년에 대호군으로 승진하여 함녕군(諴寧君) 인(裀: 세종의 동생으로 처음 받은 봉군호는 景寧君)을 따라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 사행은 명나라가 요구한 금은(金銀)의 양이 과다하여 이를 감면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기 때문에 귀국하자 그는 곧 동부대언(同副代言)에 발탁되었고, 1433년에 지신사(知申事)가 되었다.
그뒤 1437년 3월 대사헌으로 승진될 때까지 승지로 있었다.
1433년 파저강(婆豬江)의 야인정벌 때 세종의 정책을 적극 추진, 이로 인하여 세종의 신임을 크게 받았다.
그뒤 그는 조정의 인사행정에도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 사관의 평에 “겸판이조사(兼判吏曹事) 맹사성(孟思誠)은 착하기는 하지만 결단성이 없고 이조판서 신개(申槩)는 그저 남의 의견을 따르기만 하였기 때문에 모든 인사행정을 안숭선이 좌우하였다.”고 한 것은 당시의 사정을 잘 말하여주고 있다.
이와같이 승지의 법제외적 권한이 인사행정에 크게 작용하자 이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이러한 비판은 자연히 안숭선 개인에게 집중되었으며, 나아가 승지의 인사행정과 관계되는 업무를 규제하려는 방향으로까지 전개되었다. 결국 1437년 3월에 안숭선은 대사헌으로 전보되고, 5개월 후에는 승지들의 전주권(銓注權)을 크게 제약하는 조처가 취해졌다.
1443년에 형조판서, 1444년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지중추원사·집현전대제학, 1445년에 병조판서 겸 지춘추관사로서 《고려사》 수찬에 참여하였고, 1448년에는 병조판서로서 예문관대제학을 겸하였다.
이때 정실인사가 문제되어 진천현에 부처되었다가 풀려나왔다.
1450년(문종 즉위)에 의정부우참찬을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다.
《근재집(謹齋集)》에 부록으로 유고가 전한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 문숙공 안숭선 묘... 할아버지 안경공 묘 밑에 있다.
▼ 문숙공 안숭선 묘비
▼ 문숙공 안숭선 묘 석물.. 특이하게 문인석이 좌우 2쌍씩 있다.
▼ 문숙공 안숭선 신, 구 신도비
▼ 문숙공 안숭선 묘 후경
안숭효(安崇孝)
미상∼1460년(세조 6).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계충(季忠), 호는 한백당(寒栢堂). 판중추원사를 지낸 순(純)의 아들이며, 좌참찬 숭선(崇善)의 동생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음보로 벼슬길에 나아가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호조참의를 지내고, 1454년(단종 2)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어서 덕녕부윤(德寧府尹)을 역임하면서 세조의 집권에 협조하여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그뒤 대사헌에 제수되어 관기의 확립에 힘쓰고, 이어서 공조참판·호조참판 등을 지내면서 행정실무를 주관하였다.
그뒤 중추원부사로서 한직에 머물러 있었는데, 충청도지역에 재변이 심각하여 재덕을 겸비한 인물이 요청되자 이에 선발되어 1459년(세조 5) 동지중추원사 겸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어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유망민에 대한 진휼사업을 폄으로써 그 효과가 컸으나, 이듬해 과로로 임지에서 죽었다.
성실하여 행정실무에 빈틈이 없었고, 민정에 관심이 많았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 대사헌 안숭효 묘... 뒤에 보이는 묘가 안숭효 묘
▼ 안숭효 묘... 아버지 안순 묘 아래에 있다.
▼ 안숭효 묘비... 묘비좌대가 아주 멋지다...
▼ 안숭효 묘 석물... 장명등, 문인석
▼ 안숭효 묘.. 잘 가꿔진 묘역이다...
◐◐◐순흥안씨 안도공 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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