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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제천]가을 하늘을 청풍명월이라했던가?
    여행등산/여행이야기 2011. 10. 4. 10:30

    10월의 첫날 막내처남이 제천에 숙소를 마련하였다고 해서 함께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가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천은 예전에 별다른 관광상품이 없는듯 하여 그곳에 머무르기 보다는 지나치며

    의림지를 다녀온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숙소가 좋다하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다른

    일정은 없이 제천 주위를 둘러볼 생각으로 특별한 계획을 세우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별로 없어서 일단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청풍문화재단지와 베론성지를 둘러보기로 계획했습니다.

    숙소는 청풍호반 주위에 있어서 풍광이 아주 좋았는데요. 주위에 소나무를 그대로 살리면서 숙소를

    건축해서 공기가 맑고 산책로를 따라 한바퀴 돌아오면 마음과 몸이 재충전이 되면서 무척 상쾌해집니다.

    또한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역에 있던 문화재를 한곳에 모아놓아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고서도 한곳에서 여러 문화재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곳 망월산성에서 바라보는 충주호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답니다. 제천에도 의외로 많은 볼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진으로 초가을 하늘과 청풍명월의 고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의림지(義林池)
    의림지는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본래의 이름은 임지(林池)였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바꿀 때 제천을 의원현(義原縣) 또는 의천(義川)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로 저수지의 이름에 ‘의(義)’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의 음악가인 우륵이 만들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현감인 박의림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충청도관찰사인 정인지가 고쳐짓고, 다시 세조 3년(1457)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뒤 1910년부터 5년간에 걸쳐 3만여명이 참가하여 보수하였고, 1972년 대홍수로 서쪽 둑이 무너져 이듬해에 보수하였다. 저수지의 둘레는 약 1.8㎞, 면적은 158,677㎡, 수심은 8∼13m이며, 주위에는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세워진 경호루가 있다. 제천의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원삼국시대의 수리시설로서,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 제천 의림지...

    ▼ 제천 의림지

    ▼ 제천 의림지 호반에 떠있는 섬... 예전에 방문할 때 무슨 사연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 제천 의림지 오리배..

    ▼ 분수가 멋지다..

    ▼ 의림지 풍경

    ▼ 의림지 분수는 다리 양쪽으로 뿜어져 나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 의림지 소나무..

    ▼ 의림지 분수

    ▼ 의림지 경호루...

    ▼ 의림지 멋드러진 소나무

    ▼ 제천의 ES콘도.. 우리가 묵었던 숙소 전경... 숲속에 있어서 공기가 아주 좋다..

    ▼ 제천의 ES콘도 전경... 소나무 숲과 자연을 그대로 두고 개발을 해서 휴양지로 그만이다..

    ▼ 제천의 ES콘도에서 바라본 충주호반...

    ▼ ES콘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건물...

    ▼ 제천의 ES콘도에서 바라본 석양녘.. 멀리 보이는 산이 월악산이다..

    ▼ 콘도 산책로에서 마주한 산... 앞쪽 산이 조금만 높았다면 좋았을텐데...

    ▼ 콘도 산책로의 구름다리...

    ▼ 콘도 산책로에서 보이는 풍경..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
    1982~85년에 청풍호 연안 망월산성 기슭의 총면적 5만 4,486㎡에 조성되었다. 남한강 상류인 이 일대는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쟁탈지로 찬란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다.

    1978년부터 시작된 충주다목적 댐의 건설로 제천시의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부락과 충주시 일부가 수몰되자, 이곳에 있던 각종 문화재들을 한곳에 모아 문화재단지를 조성했다.

    이곳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선돌 등의 거석문화재와 민가·향교·관아 등을 나누어 복원·배치했으며, 고가(古家) 내에는 생활유품 1,600여 점을 옛 풍속대로 전시해놓았다. 중요한 문화재로는 청풍한벽루(보물 제528호)·청풍석조여래입상(보물 제546호)·금남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금병헌(錦屛軒: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응청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팔영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후산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수산지곡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도화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황석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청풍향교(충청북도 기념물 제64호) 등이 보존되어 있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 청풍문화재단지의 관문인 팔영루(충북유형문화재 제35호)

    ▼ 청풍문화재단지의 금남루

    청풍문화재단지에 보존된 청풍석조여래입상(통일신라)(보물 제546호)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한벽루(보물528호)

    청풍문화재단지에는 수몰지역에 있던 고가들을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청풍문화재단지는 망월산성이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산을 오르다보면 희귀한 나무들이 보인다.

    사진은 가지가 서로 연결된 연리지...

    청풍문화재단지 석물군..

    ▼ 망월산성에서 바라본 청풍호반.. 충주호를 이곳에서는 청풍호라 부른다..

    ▼ 망월산성 원경.. 국화꽃으로 단장했다..

    ▼ 망월산성에서 바라본 청풍문화재단지와 건설중인 청풍대교..

    ▼ 망월산성에서 바라본 월악산

     

    배론성지
    배론성지 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서, 천주교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지이다. 배론이란 지명은 골짜기가 배밑바닥 같다하여 한자 새김으로 주론(舟論) 또는 음대로 배론(排論)이라고도 한다. 1801년 신유박해때 많은 천주교인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살았는데 그들은 옹기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상황과 교회의 재건방안을 호소하는 백서를 중국 교주에게 보고하기 위해 토굴속에 숨어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1855년부터 1866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 신학교가 소재했던 지역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의 분묘가 소재한 지역이다. 일요일에는 전국에서 천주교인들의 성지순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 배론성지의 대성당

    ▼ 배론성지 전경.. 단풍이 벌써 물들었다..

    ▼ 배론성지의 신학교(성요셉신학교) 모습과 성당모습

    ▼ 황사영이 백서를 집필한 토굴

    ▼ 김대건 신부에 이은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상 

    ▼ 배론성지는 최양업신부의 묘가 있어 더 유명하다.. 묘비에는 최정구라 표기되어 의아해 했으나

    어릴때 이름이라 한다.

    ▼ 배론성지에 위치한 성직자 묘소.. 이곳에 지학순주교의 묘도 있다.

     

    짧은 제천여행이었는데 차가 밀릴까봐 조금 서둘러 귀경을 했는데도 2시간이면 올 거리를 4시간도

    더걸려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주말에 움직이면 이래저래 고생인것 같네요.

    이번 제천여행은 리프레쉬를 위한 편안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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