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 빛 첫사랑
이제 아카시아꽃이 그 향기를 잃어가고
앞에 보이는 수목원의 푸름이 짙어져 가는데
집집마다 담장 둘레에 핀 줄장미가
5월의 화사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아파트 상가쪽에 앵두나무가 무리지어 있습니다.
지난 4월초에 하얀 꽃을 피우더니
지금은 올망졸망 애기 손톱같은 앵두가 맺혀 있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은 앵두가
오늘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릴적 추억이 앵두에 참으로 많이 맺혀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지나면 모내기가 시작되고
앞마당 구석진 곳에 심어진 앵두나무에도
빨간 열매가 매달립니다.
앵두 맛이야 별것 아니지만 그 눈맛은 참으로 별미입니다.
미인의 입술을 앵두빛에 비유하듯이
빠알간 그 빛에는 우리를 흡입시키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나는 감히 사랑의 메신저라고 부릅니다.
어릴 적 앵두에 얽힌 많은 추억거리 중에
젊은 날 얼굴을 붉혀가며 겨우 자리를 같이한 소녀와
앵두 한접시를 가운데 놓고 툇마루에 걸터 앉아
얼굴도 마주 보지 못한 체 하얀 접시에 담긴 앵두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때의 그 앵두를
그 때의 그 울렁거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판은 모내기로 분주히 움직이는데 이 맘 때의 시골에서는
과일도 없고 뭐 내놓을 것이 없는 때입니다.
그런데 마당 한 구석에 흐드러지게 맺혀있는 빨간 앵두....
난 그 앵두를 한입에 넣지 못하고 그 빛만 감상하다가
겨우 한알을 입가로 가져가 새콤한 맛을 즐겨보지만
그 빛깔이 너무 고와 오히려 보는 것으로 즐겼습니다.
앵두를 앞에 놓고 오간 이야기는 숫제 사랑의 언어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분위기와 앵두 빛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하모니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첫사랑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나이가 든 이후에도 늘 이맘때면 그때의 앵두와 그 소녀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내 첫사랑은 빠알간 앵두빛 추억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이르지만 아파트의 앵두나무에
빠알간 앵두가 맺힐 날을 기다려 봅니다.
그런데 지난 해에도 이런 맘을 먹고 앵두가 익을 때 쯤
가보았지만 빨간 앵두를 구경할 수 없었는데
올해는 그냥 바라만 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고
택-도 없는 바램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