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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하남]선성군 이무생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1. 7. 10:00

    선성군 이무생 묘

     

    하남시 묘지 답사는 단체답사에 몇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참석을 못해 어차피 혼자서 찾아봐야 할 

    곳이었다. 묘지답사를 혼자할 때의 어려움은 해본 사람은 안다. 바로 옆에까지 와서도 우왕좌왕

    하다 시간만 소비하기 일쑤여서 제시간에 답사를 다 마치기란 어렵다. 여럿이 할 때는 눈이 여럿이라 

    금새 찾는다..ㅎ 또한 좀 늦은 시각이 되면 어둑어둑해져 답사가 곤혹스럽다. 길가에 있지 않으면 

    찾아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하남시 답사는 서울, 남양주와 함께 묶어서 답사를 하면서 오후에 찾아갔다. 그러다보니 좀 서둘러서 

    찾아갔는데 번번히 제 위치를 놓쳐서 시간만 낭비했다. 선선군묘 옆에 회령군묘가 있었지만 공사장 

    부근이라 그냥 지나쳐 왔다.

    혼자가면 이런게 안좋다. 그런데 오히려 한두개 쯤 남겨둬야 다음에 한번 더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 

    선성군(宣城君)
    생몰년 미상. 이름은 이무생(李茂生).
    정종(定宗)의 4남으로 어머니는 충주지씨 고려 찬성사 지윤(池奫)의 딸이다.
    정종이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풍덕(豊德)의 강가로 물러나자 선성군은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렸으며 담백하고 조용한 마음을 스스로 지켜 권세와 존귀함을 싫어하였다.
    이무생은 1427년(세종 9) 자동선·간설매·죽간매를 간통한 혐의로 배천(白川)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종친(宗親)의 예에 의거하여 종학(宗學)에 나왔다는 기사가 세종 12년에 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 되지 않아 유배 생활에서 풀려난 듯하다.
    1444년(세종 26) 다시 주색을 좋아하고, 병을 핑계하고 학문을 게을리한 것 때문에 다시 배천으로 유배되었다.
    1454년(단종 2) 3월에 중의대부에 오르고 선성군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에 창기 탁금아(濯錦兒)를 사랑하여 정처를 내쫓은 일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1872년(고종 9) 3월 고종 조에 상보국숭록대부 영종정경으로 추증되었다. 시호는 양정()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하남시 향토유적 제9호
       선성군 묘
       경기도 하남시 덕풍1동 산64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 561(재실)
       전주이씨



     

    선성군(宣城君) 묘역은 조선 제2대 국왕 정종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 이무생(李茂生)과 그의 부인 정씨(鄭氏)/김씨(金氏)/한씨(韓氏)를 비롯하여 그의 후손인 병산군(屛山君)/지산군(知山君)/풍산부령(豊山副令)/이원군(利原君)/대구도호부사 이준도(李遵道)/동복공(同福公) 등 선성군파 종문(宗門) 10여기의 묘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선성군 이무생은 1425년(세종 7) 중직대부(中直大夫) 정윤(正尹), 1432년(세종 14) 원윤(元尹)의 작호를 받았으며, 1454년(단종 2) 중의대부(中義大夫) 선성군에 봉군(封君)되었고, 1872년(고종 9)에 상보국숭록대부 영종정경(上輔國崇祿大夫領宗正卿)으로 추증되었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선성군 묘역에는 선성군 신도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제작된 묘갈(墓碣)/장명등(長明燈)/상석(床石)/혼유석(魂遊石)/양석(羊石)/망주석(望柱石)/동자상(童子像)/고석(鼓石)/향로석(香爐石)/문인석(文人石) 등 수많은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선성군신도비의 비문은 이명상(李明翔)이 짓고, 윤용구(尹用求)가 글씨를 썼으며, 전액(篆額)은 민병석(閔丙奭)의 솜씨이다.
    또한 이준도(李遵道)의 묘갈은 윤근수(尹根壽)가 비문을 짓고 김현성(金玄成)이 글씨를 써 더욱 돋보인다. 이 묘역은 조선시대 왕자 묘의 규모나 규범을 참고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며, 이곳의 석물들은 조선시대 석물의 변천과 형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하남시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인용>

     

     

     

     

     

     

     

     

     

     

     

     

     

     

     

     







    ▼ 선성군 재실

    ▼ 선성군 묘역 전경 아파트가 산 위로 솟아있다. 이렇게 솟아 오른 곳은 괜찮지만 산보다 낮은

    아파트는 흉가로 본다.

    ▼ 선성군 묘비... 세부인과 함께...

    ▼ 선성군 묘비..

    ▼ 선성군 묘 석물...

     

     

     

     

    ▼ 선성군 묘 후경.. 앞쪽 아파트가 안산을 대신하는데... 오히려 너무 높다..

     

    ▼ 선성군 3번째 배위 증 평산군부인한씨 묘비

     

     

    ▼ 선성군의 4대손 대구부사 이준도(李遵道) 묘가 맨 윗쪽에 있다.

    ▼ 선성군 이무생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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