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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성종 서자 이성군(利城君) 묘(숙용심씨 아들)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2. 12. 10:00성종 서자 이성군(利城君) 묘(숙용심씨 아들)
대자리 묘지 답사 때 시간이 조금 남아 먼저 은평구에 있는 숙용심씨 묘표를 방문했었다. 그때는 이성군이 숙용심씨 아들인
줄도 모르고 갔었는데... 이성군 묘를 답사하고서야 숙용심씨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숙용심씨는 한때는 일본에 의해
묘표까지 약탈해 가서 묘 위치조차 파악이 안되지만 지금은 뒷쪽에 둘째아들 영산군이 있고 가까운 곳에 이성군이 있으
니 어느정도는 편안하게 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난 가을에 매주 대자리, 남양주, 의정부 등을 수시로 드나들며 선현묘지, 왕가묘지를 답사다녔는데 정리할 시간이 없어
미뤄두었던 묘지를 겨울에 하나씩 꺼내서 올려볼 예정이다.
이성군(利城君)
1489년(성종 20)∼1552년(명종 7). 조선 제9대왕 성종의 서자.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관(慣). 어머니는 숙용(淑容)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1497년(연산군 3) 9세에 이성군에 봉해졌다. 사람됨이 총명하여 맡은 일을 잘 처리하였으므로 왕자로서는 파격적으로 조정의 일을 처리하는 직책에 임용되었다. 문소전(文昭殿)·연은전(延恩殿)·사옹원(司饔院) 등의 도제조를 역임하였다.
1528년(중종 23)에 선릉(宣陵)의 헌관(獻官)이 되어 치제하였으며, 1540년 선원전(璿源殿)치제에 헌관이 되었다. 종실로 여염에 나가서 작폐가 많았으나 벌을 받지는 않았다.
1545년(인종 1) 선왕인 중종의 어용(御容)을 추화(追畵)할 때는 도제조가 되어 그림을 그렸고, 왕이 종친의 집에 갔을 때 호종하면서 안양(安養)할 것을 진언하였다.
그해 명종이 즉위할 때는 대윤인 윤임(尹任)을 탄핵하여 명종을 보위에 오르게 하는 데 공이 컸으므로 위사공신(衛社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시호는 장평(章平)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이성군(利城君)
이성군은 성종대왕의 아홉째 아들로 휘는 관(慣), 자는 공숙(公肅), 시호는 장평(章平)이다.
어머니는 숙용 청송심씨로 1489년(성종 20) 1월 11일에 낳았다.군은 성품이 온후하고 총명하여 부왕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으며 연산군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중종대왕 등극에 앞장섰으며 항상 문소전 · 연은전과 종친부 종부시 · 사옹원 등의 도제조를 겸임하였고 서화에도 출중하여 중종대왕의 초상화를 그려 바쳤다. 특히 효심이 돈독한 군은 그 공로가
혁혁하여 중종과 명종 양조(兩朝)의 원종 1등공신이었다. 1516년(중종 11) 1월에 충청도 태안군에 있는 태복지(太僕地 : 임금이 타는 말을 기르는 곳) 8리(약 100만평)를 하사받았다. 5남 1녀를 두고 1552년(명종 7) 12월 29일에 별세하니 향년 64세였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리곡의 갑향언덕에 모시었다.이성군은 경양군(景陽君) · 금구정(金龜正) · 운성군(雲城君) · 한원수(漢原守) · 화산군(花山君) 등 5남을 두었고, 손자대에 영평군 · 해풍군 · 명원군 · 흥원군 · 의원군 등 5명의 군과 7명의 부수 ·
부정 등을 두었으며 증손자대에도 완강군 · 순의군 · 순정군 · 순녕군 · 풍천군 등 협책 · 호성공신에 제수된 공신과 군들이 많았으며 5대손의 완창군 등과 같이 후손들이 수많은 공신 직첩으로
조선왕조의 번성에 크게 기여하였다.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완강군(完康君)의 며느리가 어린 아들 성한(星漢)을 업고 배편으로 피난, 묘동(墓洞)에 정착하여 충남 태안군 소원면 송현리에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6대 종손인 보(칞)가 사패지인 이곳에 낙향하여 함께 살다가 1666년(현종 7)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그 후 전란과 식민통치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다가 뜻이 깊은 종현들이 여러 차례 중수하여 유지하여 오던 중 1976년 사당터가 타성에게 매각되면서 사당과 주변이 크게 훼손되었다. 이성군 후손들은 이에 크게 각성하여 1980년 음력 10월 1일 이성군파종회를 결성하고(초대회장 吉薰) 그 동안 조상의 시향
봉향에만 급급해 오던 종친들이 1차 사업으로 사당터 환원을 위하여 모금운동을 전개, 약 200만원을 모금하여 환원교섭을 벌였으나 새 산주의 거부로 실패하였다.2대 회장 용우(龍雨)가 취임 후 사당을 중수하고 <이성군파보>를 3년 여의 노력 끝에 완성하였다. 필훈(弼薰) 회장은 1992년 음력 10월 1일 3기 집행부를 구성, 그 동안 몇몇 종친 명의로 등기되어 있던 문중재산을 파종회 명의로 등기하고, 타성명의로 변칙 등재되어 있던 재실을 문중재산으로 환원 확보하는 등 이성군 산소 주변의 정화사업을 완료하였다. 더욱이 현재 태안군 소원면에 있는 사당은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 있어 많은 후손들이 참배하기에 큰 불편을 겪고 있고 사당터마저 남의 손에 넘어가 보수 유지가 어려운 현실이어서 이성군을 위시한 여러 선조가 계신 곳이며 후손들 수백호가 모여 사는 수도권 이성군 묘소앞 남향명당에 5년 여의 각고 끝에 웅장한 새 사당을 완공하였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고양시 향토문화 제4호 이성군(利城君) 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31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978-2(사당) 전주이씨
묘는 대자동 대자골에 위치하며 이성군의 봉분을 중심으로 배 곤산군부인 남평문씨와 계배 풍산군부인 안동 권씨의 봉분이 좌우에 있다. 3기의 봉분 앞에는 묘비가 서 있으며 봉분의 총둘레는 17cm이다. 묘역의 석물로는 묘 앞 중앙에 상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등이 각기 배치되어 있다.
<고양시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인용>
명종 11년(1556)에 세운 대리석의 묘비는 ‘왕자이성군 증시장평공지묘’라 쓰여져 있는데 장방형의 비좌에 정교하게 조각된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문은 정사룡이 짓고 송인이 글씨를 썼으며 한경우가 전자를 썼다.
현재 비의 규모는 높이 170cm, 폭 65cm, 두께 15cm이다.
이성군 관은 조선 제 9대 성종의 아홉째 아들로서 성종 20년(1489)에 출생하여 명종 7년(1552)에 돌아갔다. 자는 공숙이며 어머니는 숙용 심씨이다. 연산군 3년(1497)에 이성군에 봉해지고 문소전, 연은전, 종부시, 사옹원 등의 도제조를 역임하였다. 명종 즉위년(1545)에 위사원종공신 1등이 되었다.
그림에도 매우 뛰어나 인종 원년(1545) 선왕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 이를 주관하였다. 시호는 장평.▼ 이성군 사당..
▼ 이성군 묘 전경.. 맨 윗쪽이 이성군 묘
▼ 이성군 묘
▼ 이성군 묘.. 가운데가 이성군 묘
▼ 이성군 묘 안내판
▼ 이성군 묘표
▼ 이성군 묘 장명등
▼ 이성군 배위 풍양군부인 권씨 묘
▼ 이성군 배위 곤산군부인 문씨 묘
▼ 이성군 묘 정면
▼ 이성군 묘 석물
▼ 이성군 묘 입수처
▼ 이성군 묘 후경
▼ 이성군 아들 경양군 묘
▼ 경양군 배위 묘
▼ 경양군 묘 전경
▼ 이성군 손자 녕평군 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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