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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윤경지(尹敬之) 묘 및 묘갈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6. 26. 10:00
윤경지(尹敬之) 묘 및 묘갈
윤경지 묘 답사하는 날은 공교롭게도 핵안보정상회의 하루 전날이라 각국 국가원수들이 성남비행장을 통해 들어오는 날이라
경비가 삼엄했는데 그 덕에 비행장이 보이는 묘역은 올라갈 수 없었다. 아쉽지만 국가행사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통제
에 따라서 윗쪽으로는 올라가지 않았다.
묘역은 땅이 단단해야 혈처로 본다, 땅이 푸석푸석하고 바람에 흙이 날릴 정도이거나 푹푹 꺼지는 땅은 혈자리로 보지
않는다. 이 부근의 토질은 거의가 토질이 무르고 발 딛기가 겁날 정도다. 예전의 사격은 잘 감싸주는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도로가 이중삼중으로 옆으로 나는 바람에 장풍이 되지 못하고 기를 흩어지게 하고 있다.
윤경지(尹敬之) 묘 및 묘갈
윤경지(尹敬之, 1604 ~ 1659)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손자이다. 세마(洗馬)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고 그 뒤 훈국랑(訓局郞), 평릉찰방(平陵察訪), 홍천현감 등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높았다.
숙인 연일정씨(淑人 延日鄭氏)와의 원형의 합장분이다. 2단의 활개와 봉분 주위로 반원형의 담장이 있으며 봉분 아래에는 각 면에 12지를 새긴 호석(護石)을 두르고 있다. 봉분 가운데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이 있고 봉분 왼쪽으로 묘갈(墓碣) 2기, 상석 왼쪽과 오른쪽으로 망주석(望柱石) 등의 석물을 갖추고 있다. 묘갈은 백색 화강암제로 비좌(碑座)와 월두형(月頭形)의 비신(碑身)이며 비신의 네 면에 비문이 있다. 비문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민구(李敏求)가 지었고, 외손 유이복(柳以復)이 썼다. 비의 건립시기는 1700년(숙종 26)이며 총높이는 176cm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윤경지(尹敬之) 묘 및 묘갈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산71-1 해평윤씨 윤경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윤경지는 선조 대 영의정을 지낸 문정공 윤두수(尹斗壽)의 손자이고, 공조판서를 지낸 아버지 장익공 윤휘(尹暉)와 어머니 사평 이기명(李耆命)의 딸 사이의 셋째 아들이다. 부인은 연일정씨 정립(鄭岦)의 딸이고, 아들은 윤기(尹圻)이다. 예조참판에 올랐던 유심(柳淰)과 참의를 지낸 김진표(金震標)가 사위이다.처음 문음(門蔭)으로 세마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후일 훈국랑, 평릉찰방을 거쳐 최종 벼슬은 통훈대부로 홍천연감에 이르렀는데,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높았다.
윤경지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산71-1에 위치한다.
1992년 9월 29일 해평윤씨(海平尹氏) 종친회에서 윤경지를 제사하기 위한 사당인 모덕재를 복정동 해평윤씨 묘역 좌측에 건립하였다. 모덕재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성남대로를 사이에 두고 경원대학교와 마주보는 위치에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15일 정오를 전후로 하여 윤경지를 위한 시향(時享)을 올리고 있다..
<성남시 디지털성남문화대전에서 인용>
▼ 윤경지 묘 전경.
▼ 윤경지 묘 신 구 묘비
▼ 윤경지 신 묘비
▼ 윤경지 묘 구 묘비
▼ 윤경지 묘비 측면, 후면
▼ 윤경지 구 묘비 측면, 후면
▼ 윤경지 묘 측경
▼ 윤경지 묘 후경
▼ 윤경지 묘 현무봉
▼ 윤경지 묘 현무봉에서 바라본 좌, 우 후경
▼ 윤경지 묘 원경
▼ 윤경지 묘 답사하는 날은 핵안보정상회의 전날이라 산너머로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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