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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공원묘지#9]작가 계용묵(桂鎔默)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10. 22. 10:00
작가 계용묵(桂鎔默) 묘
최학송선생에 비해 계용묵 작가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기도해서 익숙한 분이다. 특히 백치아다다는 왠만한 사람들은 소설이나 영화로 한번쯤은 접해봤을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에 계용묵 선생의 묘를 찾았을 때 너무 초라해 인기작가도 이런 곳에 묻히나 했었는데 그것도 여러번 오다보니 만성이 되었는지 지금은 별로 그런 생각이 안든다.
그래서 첫인상, 첫느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곳은 앞쪽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기가 멈추지 못하고 흩어지는 곳인데 안타까운 생각보다 갈 때마다 묘 위치를 헷갈려 매번 헤맨다. 그러다보니 찾으면 안도를 하게되고 묘지의 길흉여부는 잊고 오게된다. 그 아랫쪽에 묘가 한두기 더있는데 이런데도 묘를 쓰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계용묵선생 묘는 앞쪽 전순이 없어서 전체 전경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전부 측면에서 찍은 사진만 있게 되어 삐딱한 사진이 되어 버렸다. 다행인 것은 문인들끼리 잘 뭉쳐 묘비라도 세워주어 후세인들이 찾을 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계용묵(桂鎔默)
1904년∼1961년. 소설가. 본관은 수안(遂安). 평안북도 선천 출신.
부친은 계항교(桂恒敎)이며, 모친은 죽산박씨(竹山朴氏)이다. 1남3녀 중 장남이다.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신학문을 반대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향리의 공립보통학교에 다닐 때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정옥과 혼인하였다. 졸업 후 몰래 상경하여 1921년 중동학교, 1922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잠깐씩 다녔으나, 그때마다 할아버지에 의하여 귀향하여야만 하였다.
약 4년 동안 고향에서 홀로 외국문학서적을 탐독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대학(東洋大學)에서 수학하였으나, 가산의 파산으로 1931년 귀국하였으며, 그뒤 조선일보사 등에서 근무하였다.
1945년 정비석(鄭飛石)과 함께 잡지 《대조(大潮)》를 발행하였고, 1948년 김억(金億)과 함께 출판사 수선사(首善社)를 창립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성실한 작가생활로 생애를 보냈다.
1925년 5월 《조선문단》 제8호에 단편 〈상환(相換)〉으로 등단한 이래 40여편의 단편을 남겼다. 그의 문학은 발표시기에 따라 대체로 3기로 구별된다.
〈최서방〉(1927)‧〈인두지주(人頭蜘蛛)〉(1928)로 대표되는 첫 시기는,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을 그렸다는 점에서 대체로 경향파적이라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적극적인 투쟁의식이 없다는 점과 이후의 다른 작품들과 결부하여볼 때 다만 고통받는 서민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반영된 작품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두번째 시기는 몇 년의 침묵 끝에 1935년 《조선문단》 제4권 제3호에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이 시기가 그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데, 초기의 미숙함에서 벗어난 세련된 문장기교로써 그의 문학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장벽(障壁)〉(1936)‧〈병풍에 그린 닭이〉(1936)‧〈청춘도(靑春圖)〉(1938)‧〈신기루(蜃氣樓)〉(1940)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서의 주인공들은 선량한 사람이지만, 주위의 편견이나 억압, 자신의 무지로 인하여 불행 속을 헤매거나 패배자적인 처지에 처할 뿐, 아무런 해결책도 가지지 못하는 소극적인 인물이기 일쑤인데, 이러한 경향은 작중세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고 관조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계용묵문학의 특징이자 한계점이라 할 수 있다.
광복 후 격동과 혼란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별을 헨다〉(1946)‧〈바람은 그냥 불고〉(1947) 등 세번째 시기의 작품에서도 그는 현실인식의 소극성을 크게 뛰어넘지는 못하였다.
결국, 그의 소설은 1930년대 한국문학의 언어적 미감을 세련시키고 단편양식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지만, 적극적인 현실감각 및 역사의식의 부재, 서민에 대한 관조적 시선이 빚은 현실감 결여라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그는 생전에 단편집 《병풍에 그린 닭이》‧《별을 헨다》 외에 한권의 수필집 《상아탑(象牙塔)》 등을 남겼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비지정
문화재명칭
작가 계용묵(桂鎔默) 묘
소재지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묘지(묘지번호 No.105383)
관리자(연락처)
망우리묘지관리소
▼ 작가 계용묵 묘 위치 (지도#9번)
9 계용묵(桂鎔默) 105383 1904~1961, 소설가, 작품'백치아다다'등 28번전주10m전방->길따라 좌측묘역으로 내려감->큰소나무 두그루 보이는 묘역 아래(번호로 찾음)
▼ 작가 계용묵 묘 위치
▼ 작가 계용묵 묘 ... 28번 전주에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조금은 복잡하다.
▼ 작가 계용묵 묘 내려가는 길.. 28번 전주 지나 10미터쯤 앞에 있는 나무 아래로 내려간다.
▼ 나무 아래로 내려가면 앞에 근사한 소나무 두그루가 보인다.. 그 사잇길로 내려간다.
▼ 왼편 소나무 아래 다른 소나무가 보이는데 그 나무 바로 아래에 작가 계용묵 묘가 있다.
▼ 소나무 사이로 내려가면 묘 뒤의 사잇길로 내려오게 된다.
▼ 작가 계용묵 묘 전경... 묘 앞 전순이 없어서 사진촬영이 어렵다.
▼ 작가 계용묵 묘비
▼ 작가 계용묵 묘비 측면
▼ 작가 계용묵 묘비 후면
▼ 작가 계용묵 묘비 측면
▼ 작가 계용묵 묘지번호
▼ 작가 계용묵 묘 측경
▼ 작가 계용묵 묘 입수.. 그 사잇길로 내려온다.
▼ 작가 계용묵 묘 후경
▼ 작가 계용묵 묘 후경... 묘 앞쪽은 가파른 낭떠러지이다.. 그래도 그 아랫쪽 묘들보다는 기운을 조금 받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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