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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우리공원묘지#14]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10. 26. 10:00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이광래 묘가 있다는 것을 '네이버 블로그 기분좋은 나무공간'에서 처음 알았다.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고 번호만

    가지고 찾았으나 산을 완전히 한바퀴 뒤져도 없어서 허탕치고 한번은 돌아오고 두번째에 가서야 겨우 찾았다.

    그런데 묘역이 잡풀이 무성하여 사진을 써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벌초가 끝난 다음에 다시한번 찾아

    나섰는데 이번에도 묘를 찾느라 또 헤맸다. 그래서 제대로 표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묘역 인근의 사진을 찍어

    올렸으니 다음번 가는 사람은 쉽게 찾기를 바란다.

    이광래(李光來)
    1908년∼1968년. 극작가‧연출가‧연극이론가. 본명은 흥근(興根), 호는 온재(溫齋). 경상남도 마산 출신. 사회사업가 이무상(李舞相)의 아들이며, 〈산토끼〉동요작가 일래(一來)의 아우이다.
    1928년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가 1930년 동경고등학교(東京高等學校)를 졸업하였다.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3학년으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기자로 있었다.
    1935년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에 가입하였고, 같은해 〈촌선생(村先生)〉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극작가로 데뷔하였다.
    1938년 중간극(中間劇)을 표방하는 극단 중앙무대(中央舞臺)를 설립하여 극작‧연출‧제작 등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5년 10월 극단 민예(民藝)를 조직하여 좌익연극단체와 대항하는 우익민족연극운동을 펼쳤고, 1949년 유치진(柳致眞)과 함께 한국연극학회를 발족시켰다.
    1950년 국립극장 창설과 함께 전속극단 신협(新協)의 대표로서 민족극의 기반을 다지는 데 한몫을 하였다.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초대연극학과장을 맡아 연기자들을 길러내었고, 1957년 예술원회원이 되었다.
    1958년 소극장 원각사(圓覺社)를 중심으로 극단 원방각(圓方角)을 창설하고 소극장운동을 잠시 펼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그가 겪었던 식민지시대로부터 광복‧동족전쟁‧학생혁명 등 격동기 민중의 불행한 삶을 그리고 있다.
    그는 리얼리즘기법으로 출발해서 상업성이 강한 낭만주의로 후퇴하기도 하였고, 목적극(目的劇)을 쓴 바도 있으며, 6‧25사변 후에는 표현주의극을 썼다. 그는 뮤지컬과 심포닉 드라마(Symphonic drama)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를 실험하기도 하였다.
    연출에 있어서는 1938년 중앙무대에서 입센의 〈헬게랜드의 해적〉으로 시작하여, 1963년 오학영(吳學榮) 작 〈그 얼굴에 햇빛을〉에 이르기까지 40여편 이상을 연출하였다. 대학교수로 재직한 이후부터는 희곡보다 연극이론에 관한 글을 많이 발표하였는데, 〈극시형태론(劇詩形態論)〉‧〈제4벽을 모색함〉‧〈비극미에 관한 서설적 개관〉‧〈단군신화의 연극사적 고찰〉등이 대표적 논문이다.
    대한민국문화포장‧5월문예상‧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촌선생〉(1935)‧〈석류나무집〉(1937)‧〈지하도〉(1940)‧〈청계천 풍경〉(1941)‧〈나상(裸像)〉(1954)‧〈견우와 직녀〉(1954)‧〈지옥문을 열어라〉(1966) 등이 있다.
    그는 극예술연구회 이후 30여년 동안 희곡창작‧연극론‧연출‧극단운영 등에 걸쳐 매우 폭넓게 활약한 연극인이었다.
    특히, 표현주의‧상징주의 수법을 실험하기도 하는 등 반사실주의희곡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묘지(묘지번호 No.108899)
       망우리묘지관리소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위치 (지도#14번) 

    14 이광래(李光來)  108899 1908년∼1968년. 극작가‧연출가‧연극이론가 서광조 연보비에서 남부도로 끝까지가면 산불방지장비보관대가 나오는데 50m전 좌측산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위치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는 이곳 왼편 산자락에 있다.. 멀리 산불방지 장비보관소가 보인다.

    ▼ 산불방지 장비보관소 

    ▼ 산불방지장비보관소 옆에 걸려있는 플랭카드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는 도로 바로 윗쪽에 있다.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전경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측경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비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비 뒷면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지번호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입수...

    ▼ 극작가 이광래(李光來)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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