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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우리공원묘지#38]월파 김상용(金尙鎔)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11. 27. 10:00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들은 유명인사인지라 거의 많이 알려지게 된다. 그래서 묘역을 가더라도 상당히

    친숙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 연예인들은 그냥 그 자체로 호감이 가는 것이다.

    그러니 풍수하는 사람들도 죽자살자하고 TV에 출연하려고 발버둥을 치게 된다. 이름께나 알려져야

    사람들이 알아주고 알아줘야 수입도 늘어나게 되는 법이니...

    망우리 유명인사들도 자기 분야에서는 하늘같은 분들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으면

    별로 아는게 없다보니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그런면에서 김상용선생은 많이 알려진 인사치고 묘역은

    너무 초라하다고 볼수있다. 길옆에 있다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심성없이 한번씩만 밟아도 금새

    묘역이 거칠어지게 된다. 이곳은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하고 단정한 모습이 아니어서 답사하는 사람도

    조금은 정신없이 답사하기 일쑤다. 길 옆에 있고 그 윗쪽에 벤치가 놓여있어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고

    있어서 답사하는 맛도 별로 안난다고나 할까?



    김상용(金尙鎔) 


    1902∼1951. 시인·영문학자.

    경기도 연천 출생.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월파(月坡). 아버지는 김기환(金基煥)이고,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丁氏)이며, 시조시인 김오남(金午男)은 여동생이다.

    1917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21년에 졸업하였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듬해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의 탄압으로 영문학 강의가 폐강되어, 1943년 교수직을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군정하에서 강원도지사로 임명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이화여자대학 교수로 복직하였다(1945년).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하고 1949년에 돌아왔다.

    최초의 문단활동은 1926년 『동아일보』에 시 「일어나거라」를 발표하면서 출발하였고, 그 뒤 「이날도 앉아서 기다려 볼까」·「무상(無常)」·「그러나 거문고 줄은 없고나」 등을 계속 발표하였으나, 이때 발표한 창작시는 미숙한 것들이었다.

    김상용의 시가 평단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35년 『시원(詩苑)』에 「나」·「무제(無題)」·「마음의 조각」 등 몇 편의 가작을 발표하고 나서부터이다. 일반적으로 김상용의 작품세계는 자연을 가까이하려는 단면을 드러내며, 그와 함께 대상을 따뜻한 마음씨로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1939년 시집 『망향』을 간행하였다. 이 시집에서는 일본의 탄압과 수탈에 대하여 소극적인 대응태세로 보이는 자연귀의의 정신경향이 나타난다. 대표시 「남으로 창을 내겠오」에서는 자연 속에 묻혀 살면서도 그 속에서 생을 관조하는 단면이 엿보인다. 대표작으로는 「노래 잃은 뻐꾹새」·「어미소」·「향수」를 꼽을 수 있다.

    광복 후 수필집 『무하선생방랑기(無何先生放浪記)』를 간행하여 과거의 관조적인 경향보다는 인생과 사회에 대한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문학자로서 포(Poe,E.A.)의 「애너벨리」(『신생(新生)』27, 1931.1), 키츠(Keats,J.)의 「희랍고옹부」(『신생』31, 1931.5), 램(Lamb,C.)의 「낯익던 얼굴」(『신생』32, 1931.6), 데이비스(Davies,W.H.)의 「무제」(『신생』55, 1933.7) 등을 번역하여 해외문학의 소개에도 이바지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비지정

    문화재명칭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

    소재지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묘지(묘지번호 No.109956)

    관리자(연락처)

    망우리묘지관리소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 위치 (지도#38번) 

    38 김상용(金尙鎔) 109956 1902∼1951, 시인, 남으로창을내겠소 지석영연보비 지나 북쪽순환로->형제약수터 입구 팻말 바로아래 첫번째 묘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 위치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비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는 형제약수터로 내려가는 표지목 바로 밑에 있다.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 후경... 길 바로 아래에 있어서 이 장면이 먼저 보인다.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는 형제약수터 표지판 아래에 있는데 그곳에 밴치가 놓여있어 사람들이 항상 쉬는 곳이다.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 측경.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지번호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비 측후면...

    ▼ 월파 김상용(金尙鎔) 묘 측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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