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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철종의 국구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3. 5. 24. 10:00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
김문근 묘를 답사하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보고 가는데 마을에 들어섰는데도
묘가 보이지 않는다. 묘가 보이지 않을 때는 바로 옆에 있는데도 찾기가 난감해
진다. 요즘에는 핸드폰에 위성지도가 보이니 쉽게 찾을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질 때가 종종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주소를 알고도
찾지 못하는 묘가 부지기수였는데 요즘엔 거의 못찾는 묘가 없을 정도다.
마을에 도착해서 오던 길쪽으로 돌아나오니 그곳에 묘가 있었다.
넓은 묘역에 묘비와 망주석만 단촐하게 있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는데 이렇게
단촐하게 묘역을 꾸민 것은 일부러 그랬을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김문근(金汶根)
1801(순조 1)∼1863(철종 1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노부(魯夫). 아버지는 인순(麟淳)이며, 이순(?淳)에게 입양되었다. 형이 이조판서 수근(洙根)이며, 사위가 철종이다.
1841년(헌종 7) 음직으로 가감역(假監役)이 된 뒤 현감을 지내다가 1851년(철종 2) 딸이 왕비로 책봉되어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에 책봉, 영돈녕부사가 되었고, 제2차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또, 금위대장·총융사·훈련대장 등의 군사요직을 거쳤다.
1860년 대사헌 서대순(徐戴淳)이 상소하여, 철종이 죽은 뒤 왕위계승의 가장 유력한 인물이던 경평군 호(慶平君0x983a)가 판중추부사 김좌근(金左根) 등과 그를 비난한다고 하며 경평군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이에 철종은 경평군을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보내고, 한편으로 종정부(宗正府)에 명하여 속적(屬籍)을 끊어 경평군의 작호를 환수하였다.
김좌근·김병국(金炳國)·김병기(金炳冀) 등과 함께 성밖으로 한때 퇴출되었으나 왕명으로 곧 돌아왔다. 1862년에는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이하전(李夏銓)의 역모를 빨리 처분하도록 청하여 왕족을 모해하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강화하도록 노력하였다.
이듬해 죽자 철종은 부기(副器) 일부를 수송하도록 하고, 성복일에는 승지를 보내어 제사지내고 3년간 녹봉을 그대로 지급하며, 예장(禮葬) 등속은 전례를 따르도록 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순(忠純)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 안동김씨
▼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비
▼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비 측,후면...
▼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 원경
▼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
▼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역에는 문인석이 없이 망주석만 있다.
▼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 입수도두..
▼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 내룡...
▼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 후경
▼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묘는 새둥우리처럼 옴팍 파인 곳에 올려서 묘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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