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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여주]신임사화 노론 안동김씨 세장지(김제겸,김성행,김이장)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3. 6. 20. 10:00

    신임사화 노론 안동김씨 세장지(김제겸,김성행,김이장)

     

    김창집 묘를 보기 전에 무작정 안동김씨 묘역을 올라 누구 묘인지도 모르고 돌아다니다 김창집 묘를 

    보고 나서 정리를 하면서 알게된 내용이 신임사화의 노론들이다. 신임사화 때 노론의 4대신 중 한명인 

    영의정 김창집과 아들 김제겸, 손자 김성행이 화를 당하였는데 모두 한 곳에 묘가 모여있다. 한 가문이 

    일어서는데는 고비들이 있을터인데 안동김씨도 가문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 많다.

    경종 때 세제 연잉군(영조)을 지지했다가 신임사화로 목숨을 잃은 영의정 김창집과 그 아들, 손자들

    묘를 돌아보면서 무엇이 진정한 정치인지 삶의 정답은 무엇인지 참 어려운 과제를 자문해 본다.

    아무튼 처음에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바쁜 답사일정으로 돌아다녔지만 정리를 하면서 새삼 인생무상을 

    느끼는 중이다.

    김제겸(金濟謙)
    1680(숙종 6)∼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필형(必亨), 호는 죽취(竹醉). 동지중추부사 광찬(光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수항(壽恒)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창집(昌集)이며, 어머니는 박세남(朴世楠)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창흡(昌翕)에게 수학하였다.
    1705년 진사가 되고, 1710년 세마(洗馬)로 기용되었으며, 고양군수를 거쳐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으로 재직중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언(正言)이 되었다.
    그 뒤 헌납(獻納)·집의(執義)·응교(應敎)·교리(校理)·사간·예조참의·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22년 아버지가 노론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소론의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 등에 의해 사사되자 울산에 유배, 뒤에 부령(富寧)으로 이배되었다가 사형당하였다.
    조성복(趙聖復)·김민택(金民澤)과 함께 신임사화 때 죽은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1725년(영조 1) 관작이 복구되고,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죽취고』, 편서로는 『증보삼운통고(增補三韻通考)』가 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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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정
       신임사화 노론 안동김씨 세장지(김제겸,김성행,김이장)
       
       안동김씨


     



     

     

     

     

     

     

     

     


    **안동김씨 김상현,김수항,김창집 가계도


    김상현

     

    김광찬

     

    김수항

     

    김창집

     

    김제겸

     

    김성행

     

    김이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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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민공 김제겸 묘... 뒤로 보이는 산길을 타고 가면 부친 영의정 김창집 묘가 있다.

    ▼ 충민공 김제겸 묘비

     

    김성행(金省行)
    1696년(숙종 22)∼1722년(경종 2).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사삼(士三)이고, 호는 취백헌(翠柏軒)이다. 본관은 안동(安東[新])이다.
    고조는 김상헌(金尙憲)이고, 증조는 김수항(金壽恒)이며, 조부는 영의정(領議政) 충헌공(忠獻公) 김창집(金昌集)이다. 부친 증좌찬성(贈左贊成) 김제겸(金濟謙)과 모친 송병문(宋炳文)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22년(경종 2)에 목호룡(睦虎龍)이 상소를 올려서, 병기와 독약으로써 임금을 시해하려는 역적 무리를 보고하였는데, 김성행(金省行)도 김민택(金民澤)‧김용택(金龍澤)‧심상길(沈尙吉)‧오서종(吳瑞鍾)‧이기지(李器之)‧이희지(李喜之)‧장세상(張世相)‧정인중(鄭麟重)‧조흡(趙洽)‧홍의인(洪義人)‧홍철인(洪哲人) 등과 함께 그 무리 속에 포함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국청(鞫廳)에 잡혀 들어가서 심문을 당하였다.
    국문(鞠問) 도중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으며, 충의와 절개를 지켰다. 수차례의 곤장을 맞으면서도 《예기(禮記)》의 구절을 인용하며, 군자(君子)는 머리를 꼿꼿하게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심문으로 27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신임사화 때 죽임을 당하였던 자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신원이 회복되었으며, 지평(持平)에 추증되었다. 이후 이조참의(吏曹參議)‧이조참판(吏曹參判)‧영상(領相)에 차례대로 가증(加贈)되었다. 또한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旌閭)를 하사받았고, 시호 충정(忠正)도 하사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충정공 김성행 묘

    ▼ 충정공 김성행 묘비...

    ▼ 충정공 김성행 묘 후경

     

    김이장(金履長)

    김이장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영의정 김창집의 증손이자 충정공 김성행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진출하여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묘는 초현리 아랫새재마을의 좌측 구릉에 위치한 안동김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여주군사에서 인용>

     

     

     

     

     

     

     

     

    ▼ 김성행의 장남 김이장 묘

     

    ▼ 김성행의 장남 김이장 묘비

    ▼ 김성행의 장남 김이장 묘 후경


    ▼ 일묘사충지묘... 아마도 신임사화에 화를 입은 선조 위패를 모셔놓은 묘인듯...

     

    ▼ 안동김씨 선조에 대한 비.. 아마도 일묘사충지묘에 대한 비일 것이다.. 게으름 탓에 내용을 확인 못함... 

     

    ▼ 안동김씨 세장지에는 노거수 향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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