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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연천]미수(眉叟) 허목(許穆)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4. 10. 22. 09:00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연천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묘를 처음 찾은 것은 2008년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허목 묘와 강회백 묘를 답사하였다. 그 이후 여러차례 다녀온 곳인데 강회백 묘는 글을 올렸는데 미수 허목 묘는 글이 없어 올 봄에 다녀온 사진을 찾아서 올린다.
허목은 남인의 영수로 당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인물이며 글씨가 뛰어나 유명하다. 비무장지대의 그의 묘는 낮은 구릉에 잘 막아주는 사격들이 오밀조밀 하게 모여있는 무척 좋은 터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처음 답사할 때는 군인이 함께 따라 다녔는데 요즘에는 신분증만 교환하고 군인은 따라다니지 않는다. 물론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이런 곳은 답사를 안가는 것이 상책이다.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선조 28)∼1682(숙종 8). 조선 후기의 문신.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 찬성 자(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별제 강(橿)이고, 아버지는 현감 교(喬)이며, 어머니는 정랑 임제(林悌)의 딸이다. 부인은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이다.
1615년(광해군 7)정언눌(鄭彦窓)에게 글을 배우고, 1617년 거창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가서 문위(文緯)를 사사하였다. 또한 그의 소개로 정구(鄭逑)를 찾아가 스승으로 섬겼다. 1624년(인조 2) 광주(廣州)의 우천(牛川)에 살면서 자봉산(紫峯山)에 들어가 독서와 글씨에 전념해 그의 독특한 전서(篆書)를 완성하였다.
1626년 인조의 생모 계운궁 구씨(啓運宮具氏)의 복상(服喪)문제와 관련해 유신(儒臣) 박지계(朴知誡)가 원종의 추숭론(追崇論)을 제창하자, 동학의 재임(齋任)으로서 임금의 뜻에 영합해 예를 혼란시킨다고 유벌(儒罰)을 가하였다.
이에 인조는 그에게 정거(停擧 : 일정 기간 동안 과거를 못 보게 하던 벌)를 명하였다. 뒤에 벌이 풀렸는데도 과거를 보지 않고 자봉산에 은거해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해 영동(嶺東)으로 피난했다가 이듬해 강릉·원주를 거쳐 상주에 이르렀다.
1638년 의령의 모의촌(慕義村)에서 살다가 1641년 다시 사천으로 옮겼다. 그 뒤 창원·칠원(漆原) 등지로 전전하다가 1646년 마침내 경기도 연천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음 해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상중에 ≪경례유찬 經禮類纂≫을 편찬하기 시작해 3년 뒤에는 상례편(喪禮篇)을 완성하였다.1660년(현종 1) 경연(經筵)에 출입했고, 다시 장령이 되었다. 그 때 효종에 대한 조대비(趙大妃 : 인조의 繼妃)의 복상기간이 잘못되었으므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상소해 정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이를 기해복제라 한다.
1674년 효종 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자 조대비의 복제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조정에서는 대공복(大功服)으로 9개월을 정했으나 대구 유생 도신징(都愼徵)의 상소로 다시 기해복제가 거론되었다.그의 견해가 받아들여져 서인은 실각하고 남인의 집권과 더불어 그는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1675년(숙종 1) 이조참판·비국당상(備局堂上)·귀후서제조(歸厚署提調) 등을 거쳐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진하고, 의정부우참찬 겸 성균관제조로 특진하였다.
이어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승진되어 과거를 보지 않고도 유일(遺逸)로서 삼공(三公)에 올랐다. 그 해 덕원(德源)에 유배중이던 송시열에 대한 처벌문제를 놓고 영의정 허적(許積)의 의견에 맞서 가혹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남인은 송시열의 처벌에 온건론을 주장하던 탁남(濁南)과 청남(淸南)으로 갈라졌고, 그는 청남의 영수가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경기도 기념물 제184호
문화재명칭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연천군청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안내판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원경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아래에 양천허씨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아래에 있는 석관에 대한 안내문
▼ 미수(眉叟) 허목(許穆) 신도비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원경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전경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장명등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표...
▼ 묘표에는 총탄자국이 많이 나 있다.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석물... 오석으로 석물 재질이 특이하다.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청룡쪽 석물... 뒤쪽으로 부친 묘가 보인다.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청룡쪽 사격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석물...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청룡쪽 사격... 부친 묘가 있는 곳이다.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후경... 명당이 넓게 펼쳐지고 좌우 산세가 잘 막아주고 있다. 앞이 뚫려 있지만
바람은 큰 걱정이 안된다. 주변 산세가 낮으막하니 잘 막아주고 있다.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에서 바라본 청룡쪽 후경....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에서 바라본 백호쪽 사격....
▼ 미수(眉叟) 허목(許穆) 조부 허강의 묘
▼ 미수(眉叟) 허목(許穆) 조부 묘갈...
▼ 미수(眉叟) 허목(許穆) 조상님 묘
▼ 미수(眉叟) 허목(許穆) 묘역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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