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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3)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0. 22. 17:16

     

    표 석 명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임시관리번호

    종로3

    설치연도

    1987

    표석문안

    경기감영은 경기관찰사가 행정 사무를 보던 관청이다. 경기감영에서는 민정, 군정 및 사법 등의 업무를 맡았으며, 관하의 수령(守令)을 지휘 감독하였다. 이곳은 태조 2년(1393)에 설치되어 건양 원년 (1896)에 수원으로 이전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평동 164

    찾아가는 길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40m 적십자병원 정문 앞

    관계되는 내용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의 서울적십자병원과 서대문우체국 일대는 조선시대에 서대문 밖이었던 지역으로, 경기감영이 있었던 자리였다. 현재 서울적십자병원 정문 옆 도로변에 이곳이 경기감영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경기관찰사가 민정·군정·사법 업무를 보고, 관하의 수령을 지휘·감독했던 관청이었던 경기감영은 1393년(태조 2) 설치되어 1896년(건양 원년) 수원으로 옮겨갈 때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경기감영은 기영(畿營)이라고도 했는데 소속 노비가 450명이었고, 감영의 유지비용을 대는 토지로 관둔전 20결, 늠전 20결, 공수전 15결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다.
    19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12폭 화폭의 관아도인 ‘경기감영도병(보물 제1394호)’에는 ‘기영(畿營)’이라는 편액이 걸린 경기감영의 솟을대문과 본관건물인 ‘선화당(宣化堂)’은 물론 관아의 측간과 작은 창고들까지 묘사되어 있다.
    감영 주위로는 돈의문(서대문)·영은문(迎恩門)·모화관(慕華館)·연지(蓮池)·활터를 비롯하여 백성들의 기와집과 초가집, 약방·신발가게·쌀가게·주막 등이 있었다.
    .

    <두산백과사전에서 인용> 

     

    ▼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표석

    경기도청이 이곳에 있었다는 얘기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서대문(돈의문) 밖 바로 아래에 성곽을 벗어나자마자 경기감영이 있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서울을 선호하는 관리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한양을 벗어나자마자 경기감영을 만들어 놓고 경기도 관찰사가 근무를 했다하니... 최고의 직책이 아니었을까...? 도성에서 벗어나서 지방 근무 한 것으로 쳐 주었을거고 궁궐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을테고... 도성 안에 있는 집에서 출퇴근도 가능했을테고... 물론 어떤 제약은 있었겠지만... 조선 말에 수원으로 옮겼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최고의 자리였을 것이다.

     ▼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표석

    ▼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표석은 도로가에 세워져 있다. 

     ▼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표석은 서울적십자병원 정문 바로 앞에 세워져 있다.

     ▼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표석

     ▼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표석 길 건너편에는 농협중앙회가 있다.

     ▼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표석에서 바라본 문화일보사 건물...

    ▼ 경기감영 터(京畿監營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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