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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38)동아일보 창간사옥 터(東亞日報創刊社屋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1. 22. 10:00

     

    표 석 명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

    (東亞日報創刊社屋址)

    임시관리번호

    종로38

    설치연도

    2006

    표석문안

    1920년 4월 민족언론을 표방하며 창간된 동아일보의 사옥터. 그에 앞서 1917년까지 기호학교와 그 후신인 중앙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었고, 동아일보사가 1926년 광화문 신축사옥으로 이전한 뒤에는 중외일보의 사옥이 되었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화동 138-33

    찾아가는 길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110m 풍문여고 정문 우회정-->250m 덕성여고 정문-->170m 정독도서관 앞 사거리-->안내센터 앞에 위치

    관계되는 내용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東亞日報創刊社屋址)

     

    1920년 4월 1일에 창간된 신문
    동아일보는 민족지도자이자 교육사업가였던 김성수를 대표로 창간되었다.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회사의 경영 방침으로 내세웠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창간 당시부터 격렬한 항일적 어조로 일제의 탄압을 받았던 동아일보는 4차례의 무기정간처분과 수많은 발매반포금지, 압수, 삭제 등의 탄압을 받았다. 1920년대의 물산장려운동, 언론집회압박 탄핵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등 국내 대중적 민족운동과 민중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민중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브나로드운동을 전개하고,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른 새로운 철자법을 채택하는 등 여러 사업을 통해 민족정신을 강화하고 민중계몽에 열중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인습에 얽매어 집안에 갇혀 있던 여성을 일깨우고자 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여성’면을 고정으로 두어 여성의 권익향상과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기획기사와 기고를 실었다. 1933년 1월 일간 신문사로서는 최초로 여성월간지 ‘신가정’을 창간했다. 신가정은 여성동아의 전신으로 여성독자를 고려해 제목만 국한문을 섞어쓰고, 그 외 모든 기사는 순 한글로 제작했다.
    동아일보는 1945년 12월에 열렸던 모스크바 3상 회의 내용 중 '신탁통치문제"를 놓고 사전에 오보를 내기도 하여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40년 조선일보와 함께 일제의 강요로 폐간되었다가, 광복 3개월 반 만인 1945년 12월 1일 복간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에서 인용> 

     

    ▼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東亞日報創刊社屋址) 표석

    북촌답사를 하면서 왠만한 표석은 모두 찾아서 게시물로 올렸으나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는 그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표석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 정독도서관 입구에 세워진 성삼문집터 표석보다 더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데도 왜 내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들도 이 표석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관심이 없어서일것이다. 한번 봤겠지만 관심이 없으니 그냥 지나쳤을 것이고 성삼문선생집터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서 그리 되었을 것으로 위안을 삼아보는 것이다.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 표석들이 다 비슷한 상황인것 같다. 조금이라도 눈에 잘 띄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

     ▼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東亞日報創刊社屋址) 표석

     ▼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東亞日報創刊社屋址) 표석은 북촌마을 정독도서관 앞 안내소 앞에 위치한다.

     ▼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東亞日報創刊社屋址) 표석은 정독도서관 입구에 있다.<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東亞日報創刊社屋址) 표석.<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동아일보 창간사옥 터(東亞日報創刊社屋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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