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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54)사도시 터(司導寺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2. 2. 18:38

     

    표 석 명

    사도시 터(司導寺址)

    임시관리번호

    종로54

    설치연도

    2003

    표석문안

    조선시대 궁중의 미곡과 장(醬) 등의 물건을 맡은 관청으로 태조1년(1392) 고려의 제도를 따라 요물고(料物庫)를 설치하였다. 태종1년(1401)에는 공정고(供正庫), 세종4년(1422)에는 도관서(導官暑), 세조 6년(1460) 사선서(司膳署)에 흡수되었다가 세조 13년(1467) 도관서를 다시 설치하였고 이후 사도시라 개칭되었으며 고종19년(1882)에 폐지되었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원서동 206

    찾아가는 길

    현대 원서공원 앞

    관계되는 내용

    사도시(司導寺)

     

    조선시대 궁중의 미곡과 장(醬) 등의 물건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정3품의 아문(衙門)이다. 고려시대는 비용사(備用司)를 두어 궁중의 미곡을 맡았는데, 충렬왕 때 요물고(料物庫)로 고쳤다.
    1392년(태조 1) 7월에 고려의 제도에 따라 요물고를 설치하여 관원으로 종5품의 사(使) 1인, 종6품의 부사 1인, 종8품의 주부(主簿) 2인을 두었다. 1401년(태종 1) 7월에 공정고(供正庫)로 개칭되고, 1422년(세종 4) 9월에 다시 도관서(䆃官署)로 고쳐졌다.
    그 뒤 1460년(세조 6) 5월에는 도관서를 혁파하여 사선서(司膳署)에 합하였다가 1467년 4월에 사선서를 사옹원에 합속시키면서 도관서를 다시 설치하였다. 뒤에 사도시로 고쳐 『경국대전』에 법제화하였다.
    그 관원으로 제조(提調, 정3품) 1인, 정(正, 정3품) 1인, 부정(副正, 종3품) 1인, 첨정(僉正, 종4품) 1인, 주부(主簿, 종6품) 1인, 직장(直長, 종7품) 1인을 두었다. 그리고 이속으로 서원(書員) 8인, 고직(庫直) 3인, 군사 1인을 두었다. 뒤에 『속대전』에는 정과 승(丞)을 감하고, 또 『대전회통』에서는 직장을 감하고 봉사(奉事)를 증치하였다. 이 사도시는 조선 말기인 1882년(고종 19)에 혁파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사도시 터(司導寺址) 표석

    ▼ 사도시 터(司導寺址) 표석은 현대원서공원 입구에 있다.<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사도시 터(司導寺址) 표석은 현대원서공원 입구에 있다.<네이버 블로그 개미실사랑방에서 옮겨옴>

    ▼ 사도시 터(司導寺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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