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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109)장흥고 터(長興庫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2. 13. 14:30

    표 석 명

    장흥고 터(長興庫址)

    임시관리번호

    종로109

    설치연도

    2001

    표석문안

    장흥고는 조선시대 때 궁궐 안이나 궁궐 내 관공서에서 쓰이는 물품을 보관하거나 공급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장흥고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태조 때에 설치되었는데, 본래는 중구 회현동에 위치했다가 나중에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내자동 201-14

    찾아가는 길

    3호선 경복궁역 7번출구 -->30m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우회전-->40m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 못미쳐 도로변

    관계되는 내용

    장흥고(長興庫)

     

    고려·조선시대 돗자리〔席子〕·유둔(油芚 : 종이나 목면포에 기름을 먹여 비옷용구에 쓰이는 것) 등을 관장하던 관서
    장흥고는 조선시대에 궁궐 안이나 궁궐 내 관공서에서 쓰이는 물품을 보관하거나 공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고려시대에는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이 즉위하여 대부상고(大府上庫)를 장흥고로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 1) 고려제도를 이어받아 그대로 장흥고를 두다가, 1403년(태종 3) 흥신궁(興信宮)을 본고와 합하였고 또 풍저창(豊儲倉)을 병합시켰다.
    장흥고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태조 때에 설치되었는데, 본래는 중구 회현동에 위치했다가 나중에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조선 장흥고의 구성원
    조선시대에는 관원으로는 사 1인, 부사 1인, 직장 2인, 주부 2인이 있었는데 1414년 주부를 부직장으로 칭하였으며, 뒤에 다시 영(令, 종5품) 1인, 주부(종6품) 1인, 직장(종7품) 1인, 봉사(奉事, 종8품) 1인을 두어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그 뒤 다시 영을 없애고 제조(提調) 1인을 두었다. 이속(소속 서리)으로는 서원(書員) 6인, 고직(庫直) 6인, 사령(使令) 5인, 군사(軍士) 1인이 있었다.

    <문화컨텐츠닷컴에서 발췌> 

     

    ▼ 장흥고 터(長興庫址) 표석... 이곳은 경찰청 민원인들의 차량이 항상 불법 주차하는 곳이다. 

    ▼ 장흥고 터(長興庫址) 표석

    ▼ 장흥고 터(長興庫址) 표석은 경찰청민원봉사실 앞에 있다.

    ▼ 장흥고 터(長興庫址) 표석

    ▼ 장흥고 터(長興庫址) 표석 주변은 항상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장흥고 터(長興庫址) 표석<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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