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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음성)예조판서 조형(趙珩)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6. 10. 22. 09:30


    예조판서 조형(趙珩) 묘


    음성지역 풍수답사 두번째 코스로 간 곳은 예조판서 조형 묘이다. 아마도 묘역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길가에 있어서 접근하기 좋아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입구에 조형 신도비각이 있고 묘역은 길게 종으로 되어 있는데 조형의 묘가 맨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사격이 감싸주지 못해 바람에 취약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기운이 흩어지는 형태이다. 앞쪽으로 펼쳐진 조안산은 그나마 이 터의 위안을 주고 있다. 향선은 두 봉의 가운데로 맞추었는데 유형의 혈에서는 파인 쪽으로 향을 정해야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예조판서 조형(趙珩)

     

    1606(선조 39)∼1679(숙종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 세찬(世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찰 기(磯)이고, 아버지는 승지 희보(希輔)이다.

    1626년(인조 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나 파방되고, 163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대교를 거쳐 사국(史局)으로 옮겼다.

    1632년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定遠君)을 추존하자는 박지계(朴知誡)의 발의에 반대하여 인조의 미움을 받아 부여로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풀려났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임금을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가 독전어사(督戰御史)가 되고, 이듬해 환도하여 병조좌랑이 되었다.

    1642년 지제교에 선임되고, 이듬해 부교리·수찬을 지냈으며, 그 이듬해 헌납·이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46년 다시 헌납이 되었으나 1636년의 중시별과가 파방되는 사건이 발생, 당시 참시관(參試官)으로서 책임을 물어 파직되었다.

    1647년 집의가 되고, 뒤에 춘추관편수관으로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51년(효종 2)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와 보덕을 거쳐 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충청감사를 거쳐 1653년 정신옹주(貞愼翁主 : 선조의 딸)의 예장(禮葬) 때 역군가(役軍價) 문제로 정배되고, 이듬해 풀려나 승지가 되었다.

    1655년 대사간이 되어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오고, 1657년 도승지·대사간이 되었다. 그 뒤 1659년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로 성균관좨주 송준길(宋浚吉)과 사학규제(四學規制)를 마련했으며, 예조참판이 되었다. 이듬해 경기감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형조판서가 되고, 1661년(현종 2) 공조판서·대사헌·예조판서가 되었다.

    이 때 형조판서 재직 시 이갑남(李甲男)의 죄를 잘못 처리했다 하여 평산 금암역(金巖驛)으로 귀양갔다. 1663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판윤이 되었다. 이 때 동대문 밖 금산(禁山)의 소나무 남벌 사건에 관련되어 고신(告身)을 박탈당하였다. 1665년 지의금부사·우참찬을 거쳐 이듬해 공조판서를 지낸 뒤, 1668년 좌참찬이 되었다.

    1669년 평안도 외방별시의 시관이 되고, 이듬해 좌참찬, 1673년 예조판서로서 판의금부사를 겸하다가 다시 좌참찬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1674년인선왕후(仁宣王后)의 상에 대공설(大功說 : 9개월)을 주장하여 양주로 귀양갔다가, 이듬해 풀려나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비지정

    문화재명칭

    조형 신도비(趙珩 神道碑)

    소재지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

    관리자(연락처)

    풍양조씨

     

    ▼ 예조판서 조형(趙珩) 신도비각


    ▼ 예조판서 조형(趙珩) 신도비

    ▼ 조형(趙珩) 묘 전경

    ▼ 조형(趙珩) 묘표

    ▼ 조형(趙珩) 묘 청룡쪽 석물

    ▼ 조형(趙珩) 묘 백호쪽 석물

    ▼ 조형(趙珩) 묘비


    ▼ 조형(趙珩) 묘갈

    ▼ 조형(趙珩) 묘 입수도두

    ▼ 조형(趙珩) 묘 후경...향선을 두봉우리 사이 낮은 곳으로 택했다.


    ▼ 조형(趙珩) 묘 아래에는 조형의 장자 조상변(趙相抃) 묘가 있다. 

    ▼ 조상변(趙相抃) 묘표. 

    ▼ 조상변(趙相抃) 묘 청룡쪽 석물

    ▼ 조상변(趙相抃) 묘 백호쪽 석물

    ▼ 조상변(趙相抃) 묘 후경

    ▼ 조상변(趙相抃) 묘 후경... 이곳의 진혈처는 조상변 묘로 보인다. 


    ▼ 조형(趙珩) 묘 근처 마을의 정자 이름이 특이하다. 취생정(鷲笙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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