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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파주]영의정 김재찬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8. 12. 28. 09:00


    영의정 김재찬 묘


    파주지역 묘지답사를 후배와 다녀왔다. 이곳은 내가 드문드문 다녀온 곳이라 어떤 곳은 갔다왔는지 긴가민가 한곳들이 많다. 자료에 올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안가본 곳일텐데 꼭 다녀온 곳으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율곡 자운서원과 율곡묘도 올리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파주지역 묘역하고 인연이 부족한 것 같다.

    이번에 큰 맘먹고 새벽에 길을 나서 하루에 무려 20여곳을 다녀왔다. 그중에 군부대 안에 있어서 항상 답사가 힘든 곳들이 있었는데 다행이 다녀오게 되었다.

    김재찬은 부자 영의정으로 유명한 분이다. 묘역에는 부대가 들어와 있어서 자세한 것은 관찰하기 힘들었지만 평지룡에 아늑한 곳을 차지하여 무난한 것으로 평가된다. 도처에 부대장비가 있어서 사진 찍기 부담되어 많이 못찍었다. 

    부대를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위병소에 있는 사병들한테 부대내 묘소에 대해 물어보면 하나같이 묘에 대해 모른다는 답변이다. 있는지조차 모른다거나 누구 묘인지 전혀 모른다고 말한다. 이런 걸 두고 혹자는 말이 되느냐고 묻는데... 한 부대에서 2년을 근무하는 군인인데 한번 정도는 관심을 갖을만 한데도 그 묘가 있는지 조차 모른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말이 된다. 군인들만 따지지 말고 우리 집 옆에 문화재가 있는데도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게 무슨 문화재인지 아무도 모른다. 묘지답사를 하면서 그 동네에 도착해서 신도비를 물어보면 아무도 모른다. 커다란 묘비가 마을에 있는데도 관심이 없다. 자기하고 관계 없는 것은 전혀 눈길조차 안주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김재찬(金載瓚)


    1746(영조 22)∼1827(순조 2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국보(國寶), 호는 해석(海石). 김호(金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상석(金相奭)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익(金熤)이며, 어머니는 윤심재(尹心宰)의 딸이다.

    1773년(영조 49)에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고, 이듬해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0년(정조 4)에 검열(檢閱)이 되어 『이문원강의(摛文院講義)』를 편집했고,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에 임명되었다. 이어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뽑혔고, 검상(檢詳)·이조참의·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786년에 원춘도관찰사에 임명되어 울릉도에 잠입, 고기와 향나무 채취를 금했고, 영동 지방의 무사들을 삼진(三鎭)에 속하게 한 후 봄·가을로 나눈 시험일을 한날로 하도록 건의해 시행하도록 하였다.

    1789년에는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대사헌·규장각직제학(奎章閣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영의정인 아버지가 사망해 일시 관직을 떠났다가 1794년에 규장각직제학으로 재임명되었고, 형조판서·이조판서·예조판서·한성부판윤·병조판서·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796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대사헌을 겸임하였다.

    1799년에 병으로 이조판서를 사임하고, 좌참찬·홍문관제학·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그 해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규장각제학에 임명되었다. 1800년(순조 즉위년)정조가 승하하자 『건릉표석음기(健陵表石陰記)』를 지었고, 숭록대부(崇祿大夫)로 품계가 올랐다. 또한 지실록사(知實錄事)로 임명되어 『정조실록(正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802년에 수원부유수와 우참찬에 임명되었고, 1804년에 홍문관제학,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애책문제술관(哀冊文製述官)을 역임하였다. 1805년에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부임을 거절해 황해도재령에 부처(付處: 자신이 원하는 일정한 곳에서 생활하는 유배형의 하나)되었고, 이듬해 석방되어 영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1807년 우의정에 다시 임명되어 당시 공정성이 없는 과거의 폐단을 지적, 시정을 요구하였다. 1808년 좌의정이 되었고, 이듬해 영의정이 되어 영남 지방의 대동미 3분의 1과 호남 지방의 대동미 4분의 1을 아울러 줄이도록 조처하였다.

    순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해석집(海石集)』·『해석일기(海石日記)』가 있고, 편서로는 『이문원강의(摛文院講義)』가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영의정 김재찬 묘

    소재지

    경기 파주시 문산읍 이천리 266 (부대내)

    관리자(연락처)

    연안김씨

     

    영의정 김익 묘 바로가기


    ▼ 영의정 김재찬 묘비... 김제남의 6대손으로 아버지 영의정 김익과 함께 부자 영의정 집안이다.

    ▼ 영의정 김재찬 묘 전경

    ▼ 영의정 김재찬 묘비

    ▼ 영의정 김재찬 묘비 후면...

    ▼ 영의정 김재찬 묘 장명등...

    ▼ 영의정 김재찬 묘 망주석... 부대내에 위치하다보니 제약이 많다.


    ▼ 영의정 김재찬 묘 전경

    ▼ 영의정 김재찬 묘 측경

    ▼ 영의정 김재찬 묘 후경... 조안산이 멋지다.

    ▼ 영의정 김재찬 묘 아래쪽에 묘가 한기 있는데 비석이 없어서 누군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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