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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파주]쌍백당(雙栢堂) 이세화(李世華)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9. 1. 13. 16:22


    쌍백당(雙栢堂) 이세화(李世華)


    파주지역은 워낙 넓어서 묘지답사를 하면서도 못한 곳도 많고 다녀왔으면서도 블로그에 올리지 못한 곳도 많다. 그러다보니 미쳐 올리지 못한 곳은 사진을 찾는 것 자체가 고역이어서 아예 사진을 다시 찍는 편이 더 낫게 된다. 이세화선생 묘도 예전에 다녀온 곳인데 기록이 없어서 다시 찾았다.

    인근에 화석정이 있어서 맘만 먹으면 자주 갈 수 있는 곳이다. 이세화 선생은 부평이씨로 나오는데 자주 들어보지 못한 성씨이다. 이곳에는 시조의 단부터 4개의 단이 조성되어 있다. 

    이세화선생의 묘역은 와혈(窩穴)로서 현무정 정상부에 모셔져 있는데 청룡이 바짝 붙고 앞쪽 조산이 멋진 무곡성으로 서있다. 한마디로 앞쪽의 무곡성을 보고 묘역을 쓰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혈전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멈춤이 없고 바람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숙종 때 인현왕후 폐위를 충심으로 간하다가 큰 고초를 겪었지만 충신은 끝내는 진심이 통하기 마련이어서 말년에는 좋은 결과를 맺었다. 

    아래쪽에 작은 연지가 있는데 이는 기운을 묶기 위한 비보책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좁은 연못에 섬까지 만들어 물이 제대로 고이지 못한다. 좀 더 넓게 확장하고 잘 관리하면 후손들의 재물이 좀 더 넉넉해 질 것으로 보인다.


    쌍백당(雙栢堂) 이세화(李世華)


    1630(인조 8)∼1701(숙종 2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부평(富平). 자는 군실(君實), 호는 쌍백당(雙栢堂)·칠정(七井). 병조정랑 이계록(李繼祿)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통덕랑 이이재(李以載)이다. 큰아버지 장릉참봉 이희재(李熙載)의 양자로 들어갔다.

    1652년(효종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65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정언·장령 등을 거쳐 황해도·평안도·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1689년(숙종 15) 경상도관찰사를 지내고 서호(西湖)의 향리로 돌아갔다.

    그 해 인현왕후(仁顯王后) 폐비설을 듣고 반대소를 올렸다. 소에 판서 오두인(吳斗寅)과 이세화의 이름이 전면에 올라 있는지라, 숙종은 분노하여 밤중에 친국하였다.

    이세화는 국문에서 “국사로 인해 죽기를 원했는데 이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하고, “다만, 신의 죽음이 성덕에 누를 끼칠까 두려우며, 신에게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다 하더라도 옥리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면 될 것을 밤새도록 친국하니 옥체를 상할까 두렵다.”고 형간(刑諫)하였다.

    다음 날 정주로 유배가다 풀려나와 파산(坡山)의 선영 아래로 돌아왔다. 갑술환국 후 1694년 4월 대사간·호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고사하고 나아가지 않다가 인현왕후 복위도감제조로 차정한다는 말을 듣고 곧 상경하였다. 그 뒤 의금부사 겸 지경연사·세자빈객에 오르고,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그 뒤 공조·형조·병조·예조·이조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풍계(豊溪)의 충렬사(忠烈祠)에 향사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저서로는 『쌍백당집(雙栢堂集)』이 있다.

    묘역의 규모는 81㎡이다. 묘역은 사성(莎城)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부인인 순창설씨(淳昌薛氏)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 두 봉분 사이의 중심에 정면으로 묘비가 있다. 그 앞으로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자리하였고 상석 앞에 장대석(長臺石)을 쌓아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마련하였다. 배계절(拜階節: 무덤 앞 계절 밑에 절을 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든 땅) 좌우로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1쌍씩 배치되었다.

    묘역의 입구 오른쪽으로 1708년(숙종 34)에 건립된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는데, 팔작지붕형 가첨석(加檐石)·비신(碑身)·기대(基臺)로 구성되었다. 비문은 남구만(南九萬)이 글을 짓고 오태주(吳泰周)가 글씨를 썼으며, 전액(篆額)은 최석정(崔錫鼎)이 썼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60호

    문화재명칭

    쌍백당(雙栢堂) 이세화(李世華) 묘 및 신도비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89-4번지

    관리자(연락처)

    부평이씨

     

    ▼ 이세화(李世華) 신도비... 비신에 돌 문양이 이채롭다.

    ▼ 이세화(李世華)선생 묘역 홍살문...

    ▼ 이세화(李世華) 묘역에 있는 부평이씨 조상 숭모단...

    ▼ 이세화(李世華) 신도비... 파주지역에 있는 신도비들은 거의 예외없이 총탄 흔적이 가득하다.

    ▼ 이세화(李世華) 묘역... 窩穴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앞이 트여있고 급경사를 이뤄 미흡하다.

    ▼ 이세화(李世華) 묘 전경

    ▼ 이세화(李世華) 묘 안내판

    ▼ 이세화(李世華) 묘 전경

    ▼ 이세화(李世華) 묘... 멧돼지가 봉분을 많이 훼손시켰다.

    ▼ 이세화(李世華) 묘비...

    ▼ 이세화(李世華) 묘 청룡쪽 석물...

    ▼ 이세화(李世華) 묘 백호쪽 석물...

    ▼ 이세화(李世華) 묘 측경...

    ▼ 이세화(李世華) 묘 후경...

    ▼ 이세화(李世華) 묘 후경... 멋진 금봉이 조안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조산이 높으니 혈도 따라서 높인 것 같다.

    ▼ 이세화(李世華) 묘는 청룡이 긴밀하고 조산이 무곡 금봉으로 부귀를 보장하지만 바람의 영향이 무섭고 급경사지의 물길이 빠져나가므로 이에대한 대비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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