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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남양주]이춘원(李春元)선생 묘역 및 신도비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9. 4. 17. 17:58


    이춘원(李春元)선생 묘역 및 신도비


    남양주에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묘는 거의 다 다녀온 듯 한데 언젠가 북한강 길을 지나다 보니 묘역이 보여 확인해본 결과 이춘원 묘역이라 나온다. 그래서 언젠가 가야겠다 생각만 하고 미루다 이번에 남양주 양평 답사를 하면서 찾았다. 이곳 진입로가 개인 땅인지 도로 한가운데를 철조망으로 쳐놓고 접근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매우 꼴 사납다. 차가 진입하기 어려워 멀찌기 세우고 담치기로 들어갔다. 

    신도비가 비교적 깨끗하게 남아있고 바로 위에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그곳에 이춘원의 4남 이초기 묘가 돌혈로 위치해 있다. 평지에서 돌혈은 쓸 수는 있지만 이곳은 북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어서 바람이 무서운 곳이다. 그 앞에 오래된 소나무가 있는데 무슨 한이 맺혀 있는지 솔잎 하나 안남기고 싹뚝 전정을 했는데 다시 살아날지 걱정이 된다. 서울근교에 이런 문중 땅을 소유하고 지키려면 우선 돈이 많아야 하는데 이춘원 묘는 수구가 열려있고 경도가 심해서 재물과는 거리가 있을거라고 추측해 본다.


    이춘원(李春元)선생 묘역 및 신도비


    이춘원(1571∼1634)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초명이 신원(信元), 자는 원길(元吉), 호는 구원(九폀)이다. 20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6년(선조 2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에 등용되고 이듬해인 1597년에는 광양현감으로 남원을 포위한 왜군과 싸웠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613년(광해군 5) 승정원좌승지에 이르렀다.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려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파직되었고, 인조반정 후 기용되었으나 사양하고 은퇴하였다. 묘역은 정부인 해평 윤씨와 합장묘로 동향하고 있다. 원형봉분에 활개를 갖추고 있으며 새로 호석을 두르고, 그 앞에 혼유석, 복고석 위에 상석을 놓았으며, 연이어 장대석, 향로석, 문인석, 묘표 등이 있다. 묘표에는 “有明朝鮮國嘉善大夫忠淸道觀察使兼巡察使李公春元之墓 貞夫人海平尹氏之墓”라 새겨져 있으며 또 “숭정 7년 갑술(1634년) 9월, 후장 계사(1653년) 6월”이라 쓰여져 있다. 

    신도비는 묘역 아래 길가에 동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총길이 266㎝로 사각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파도문과 복련을 사방에 새긴 장방형 대석과 백색 대리석으로 만든 비신, 이수로 되어 있다. 이수에는 용이 한 마리씩 앞뒤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수의 왼쪽 부분은 마모된 상태이다. 비에는 “有明朝鮮國嘉善大夫忠淸道觀察使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師李公神道碑銘幷序”라 쓰여져 있고 숭정 9년 병자 즉, 1636년에 세운 것으로 김상헌이 찬하고 윤순거(尹舜擧)가 썼다. 비문의 서체는 둔탁한 행서체인데,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남양주홈페이지에서 인용>


    이춘원(李春元)


    조선시대 광양현감, 좌승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함평(咸平). 초명은 신원(信元)·입지(立之). 자는 원길(元吉), 호는 구원(九畹). 증좌통례 이세달(李世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이윤우(李允宇)이고, 아버지는 증좌찬성 이창(李瑒)이며, 어머니는 부마인 능창위(綾昌尉)이구한(李具澣)의 딸이다.

    일찍이 남양의 홍지성(洪至誠)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박순(朴淳)이 영의정을 그만두고 영평(永平)에 은거할 때 그를 찾아가 다시 배우니 단연 학문에 두각를 나타내었다.

    20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6년(선조 2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에 등용되고 이듬해인 1597년에는 광양현감으로 남원을 포위한 왜군과 싸웠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좌승지에 이르렀을 때인 1613년(광해군 5)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 항론하다가 파직되었다. 이듬해 다시 승지로 복직되었다가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되었다.

    1617년 충청도관찰사로서 권신들이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하고 대비에 대한 모든 의식을 없애려고 하자 이에 극력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1620년 지돈녕부사가 되어 명나라의 사신을 안주까지 나가서 맞이하였는데 갑자기 중풍에 걸려 사직하고 돌아왔다. 1623년 인조가 반정하여 구신들을 많이 등용할 때 한직을 맡겨 정양하게 하려 하였으나 사퇴하였다. 저서로는 『구원집(九畹集)』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향토유적 제6호

    문화재명칭

    이춘원(李春元)선생 묘역 및 신도비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로 1109-8

    관리자(연락처)

    함평이씨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역 및 신도비 안내판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역 및 신도비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역 및 신도비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역 및 신도비 안내석...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역 전경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 전경...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 뒤쪽으로 현무정이 아름답다.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 전경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비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 좌우 석물...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 측경... 백호방으로 물이 내려간다.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 측경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 후경... 앞에 안산에 있는 묘가 아들 묘...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 조안산... 멀리 강건너 조산이 아름답다.


    ▼ 이춘원(李春元)선생 신도비 위쪽에 넷째 아들 이초기 묘가 있다.

    ▼ 이춘원(李春元)선생 묘 안산 돌혈(突穴)에 넷째아들 이초기(李楚奇)묘가 있다.

    ▼ 이초기(李楚奇)묘비

    ▼ 이초기(李楚奇)묘 후경... 앞쪽 소나무는 한 맺혀 있는듯 싹뚝 잘려져 있다.


    ▼ 이춘원(李春元)선생 손자, 이초기(李楚奇) 아들인 이지두(李之斗) 묘비

    ▼ 이지두(李之斗)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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