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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9. 4. 18. 09:00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택당 이식 묘역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묘가 택당의 셋째 아들인 좌의정 이단하선생 묘다. 외재 이단하 묘는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의 할아버지 이안성 묘 아래 바짝 붙여서 묘를 조성했다. 이곳은 택당의 묘에서 어느 정도 설명했으니 생략한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서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택당이 조부 묘를 정읍 고부에서 이곳 양동으로 이장하고 난 뒤 첫번째 정승이 나온 셈이다. 묘를 이장하고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택당의 아들대에 들어와서 효험이 나타났다고 보여진다. 그래도 나는 이곳 묘역이 명당의 조건에 부합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이다.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계주(季周), 호는 외재(畏齋)·송간(松磵). 이섭(李涉)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안성(李安性)이다. 아버지는 판서 이식(李植)이며, 어머니는 심엄(沈掩)의 딸이다.
선조의 덕으로 공조좌랑으로 재직했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그 뒤 정언·부교리·용안현감·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북평사로 있을 때 감사 민정중(閔鼎重)과 함께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정문부(鄭文孚)의 사적(史蹟)을 조사해 조정에 알려 관직을 추증시켰다. 또한 사당을 세워 충렬사(忠烈祠)라는 사액을 내리게 했다.
부교리로 있을 때는 귀양 중인 대신들을 속히 사면할 것을 주청하기도 했다. 1669년 이조정랑이 되어 각 사(司) 노비의 공안(貢案)을 정리할 것을 청하여 신공(身貢)을 반 필씩 줄이게 했다. 이어 교리로 경서교정청(經書校正廳)의 교정관이 되었다. 훈련별대(訓鍊別隊)의 창설을 주청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그 뒤 응교·사간·사인 등을 역임하고, 1671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이조참의가 되어, 중종의 폐비 신씨(愼氏)의 신주를 신씨 본손의 집으로 옮기게 했다. 1674년 대사성으로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이어 숙종이 즉위한 뒤, 서인으로서 제2차 복상문제로 숙청당한 의례제신(議禮諸臣) 처벌의 부당성을 상소하다가 파직되어 이듬해 삭직당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풀려났다. 이듬해 홍문관제학이 되어 『현종개수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1682년 대사헌으로 각 능 기신(忌辰) 제사에 올리는 유과(油果) 및 과일 위를 덮는 채색꽃을 줄여 제사비용을 줄이도록 했다.
1684년 예조판서가 되어 「사창절목(社倉節目)」과 『선묘보감(宣廟寶鑑)』을 지어 올렸다. 1686년 우의정이 되어 사창 설치의 다섯 가지 이익을 건의했다. 그리고 죽을 죄인에게 삼복(三覆: 三審制)을 실시할 것을 청했다.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행판돈녕부사로 있다가 죽었다.
이단하는 무력해진 의정부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비변사를 의정부의 직방(直房)으로 만들고, 그 곁에 한 방(房)을 비변사로 만들어 의정부와 통하게 했다. 또한 좌우찬성의 자리를 비워 두지 말고 참찬과 함께 삼공을 도와 정치를 의논하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사창제도를 철저히 실시해 굶주리는 백성을 돌볼 것을 역설하였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자라나 조선 후기 경학을 대표할 만한 학자이다. 용안(龍安)에 영당이 있다. 저서로는 문집인 『외재집』과 편서로 『북관지(北關誌)』가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향토유적 제37호
문화재명칭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
소재지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산9-1
관리자(연락처)
덕수이씨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 안내판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 전경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 근경... 이곳 택당 묘역에는 상석이나 혼유석에 묘지명(墓誌銘)을 새겨 놓았다.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 상석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 혼유석... 이곳에도 묘지명을 새겼다.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비... 묘비에도 직책을 너저분하게 새기지 않고 좌의정 이공 묘라고 깔끔하게 새겼다.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비 뒷면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 망주석... 이곳 묘역은 그 흔한 문인석도 하나 없다. 묘역을 간소화 하라는 유지를 잘 따른듯 보인다.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 후경
▼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에서 바라본 택풍당...
▼ 건너편 큰 형인 이면하 묘에서 바라본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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