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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김포]용양부원군(龍陽府院君) 윤섬(尹暹),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2. 24. 10:00


    용양부원군(龍陽府院君) 윤섬(尹暹),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 묘


    집안이 크게 발전하는데는 영의정, 대제학 등 큰 인물이 나와서 가문을 발전시켜야 하고 거기에 덧붙여 충신, 열녀가 등장해야 제대로 된 가문이라고 칭송 받는다.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레주의 상징이랄까?

    남원윤씨 가문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걸쳐 충신이 대를 이어 나와서 큰 가문으로 추앙 받게 되었다. 

    용양부원군(龍陽府院君) 윤섬(尹暹), 충강공(忠康公) 윤형갑(尹衡甲),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이 그들이다. 영사정에 세분이 모셔져 있고, 윤집 선생 묘는 충남 부여에 있다. 어찌보면 선조들의 희생으로 후손들이 명예를 얻는다고 보여진다. 일제시대 항일애국지사들도 이 가문에서 많이 나온 것은 우연만이 아닐 것이다.



    1.임진왜란 충신 용양부원군(龍陽府院君) 윤섬(尹暹)


      윤섬(尹暹, 1561~1592)의 자는 여진(如進), 호는 과재(果齋)로 윤우신의 아들이다. 1583년(선조 16)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지평 등을 역임하다 1587년(선조 20)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가서 왕실의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1590년(선조 23)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용양부원군(龍陽府院君)으로 봉군(封君)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 1538~1601)의 종사관으로 종군하다 상주에서 전사하였다. 서거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부인은 원주 원씨(原州元氏)로 정경부인으로 추증되었다.

      묘소는 원래 광주(廣州) 구천 냉정리에 매장하였다가 영사정 세장지 윤유 묘 아래로 이장하였으며 쌍분으로 조성되어있다. 전란이 끝난 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의관(衣冠)으로 장례를 지냈다고 한다. 2005년 조성한 비석과 문인석, 혼유석, 계체석 등의 석물을 새로 배설하였고 옛 석물은 묘표와 상석, 향로석, 양석, 망주석이 있다.

      묘표는 1760년(영조 36) 6대손 윤염(尹琰, ?~1771)이 건립하였다. 묘표 전면에 비제로 ‘유명조선 증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용양부원군 시문열공 행수충익모수기광국공신 통훈대부 홍문관교리 윤섬지묘 정경부인 원주원씨 부좌(有明朝鮮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龍陽府院君諡文烈公行輸忠翼謨修紀光國功臣通訓大夫弘文館校理尹暹之墓 貞敬夫人原州元氏祔左)’라 단정하고 작은 해서 글씨로 썼다. 비신은 애석을 사용하여 만들었고 옥개석, 비좌는 화강암으로 제작하였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신도비문을 찬술하였다고 하나 신도비를 건립하지는 않았다. 

    <남원윤씨대종회에서 발췌: 경기도문화재전문위원  정해득님 자료>


    2.충강공(忠康公) 윤형갑(尹衡甲)


    윤형갑(尹衡甲, 1585~1618)의 자는 임지(任之)이며 윤섬의 아들이다.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여 부안 현감, 서흥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장남 윤계와 차남 윤집 두 아들이 병자호란 때 순절하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시호를 충강(忠康)이라 하였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 1584~1633)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다.


    3.병자호란 충신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


      윤계(尹棨, 1603~1636)의 자는 신백(信伯), 호는 신곡(薪谷)으로 윤형갑의 장남이다. 1627년(인조 5)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와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남양 부사 재임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으로 진군하려던 중 갑자기 청나라 군대가 들이닥쳐 남양부중에서 사로잡혔으나 굴복하지 않고 대항하다가 죽었다. 이조판서로 추증 및 용원군(龍原君)으로 추봉되고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첫 번째 부인은 동래 정씨(東萊鄭氏), 두 번째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모두 정부인으로 추증되었다. 묘소는 윤징 묘 아래에 위치하며 윤계와 두 부인의 봉분을 각기 만들어 일자로 배열한 삼연묘로 조성되어 있다..

    <남원윤씨대종회에서 발췌: 경기도문화재전문위원  정해득님 자료>


    4.병자호란 삼학사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백(成伯), 호는 임계(林溪)·고산(高山). 윤우신(尹又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교리 윤섬(尹暹)이다. 아버지는 현감 윤형갑(尹衡甲)이며, 남양부사 윤계(尹棨)의 아우이다.

    1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형을 따라 공부해 1627년(인조 5) 생원이 되고, 1631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이듬해 설서가 되었다. 그 뒤 수찬(修撰)·교리(校理)에 오르고 헌납(獻納)을 역임한 뒤, 1636년 이조정랑·부교리를 거쳐 교리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국왕과 조정 대신들이 남한산성으로 난을 피했으나 청병에게 산성이 포위되어 정세가 극히 불리하게 되었다. 최명길(崔鳴吉) 등이 화의로 위기를 극복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때 오달제(吳達濟) 등과 함께 화친의 사신을 보내자고 주장하는 최명길의 목을 벨 것을 청했으며, 최명길이 국왕의 뜻을 움직여 화친의 일을 성립시키고자 입대(入對)해 승지와 사관을 물리치도록 청하자, 이를 규탄하는 극렬한 내용의 소를 올렸다.

    이 상소문에서 옛날 화친을 주장해 사필(史筆)의 베임을 피할 수 없었던 진회(秦檜)와 같은 대간도 감히 사관을 물리치지 못했다고 극렬한 말로 규탄했으며, 국왕이 대간(臺諫)을 꺼리지 않고 오직 사특한 의논만을 옹호하고 간사한 신하만을 의뢰하면 마침내 나라를 잃어버리고 만다고 경고하였다.

    화의가 성립되고 청나라 측에서 척화론자의 처단을 주장하자, 오달제와 더불어 소를 올려 자진해 척화론자로 나섰다. 청병에 의해 북쪽으로 끌려갈 때도 조금도 절개를 굽히지 않아 청병이 오히려 감복해 존경했다고 한다.

    청나라에서 고문과 회유 등으로 윤집의 뜻을 돌리려 했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항변하자 마침내 심양성 서문 밖에 끌려가 사형당하였다. 세상에서는 오달제·홍익한(洪翼漢)과 더불어 삼학사라고 이른다.

    처음 부제학(副提學)에 추증되었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광주(廣州)의 절현사(節顯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 평택의 포의사우(褒義祠宇), 홍산의 창렬서원(彰烈書院), 영주의 장암서원(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김포시 향토유적 제13호

    문화재명칭

    남원윤씨(南原尹氏) 영사정(永思亭) 묘역

    소재지

    경기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102-7

    관리자(연락처)

    남원윤씨 판관공파

     

    ▼ 남원윤씨(南原尹氏) 영사정(永思亭) 묘역 

    ▼ 남원윤씨(南原尹氏) 판관공파 가계도

    ▼ 남원윤씨(南原尹氏) 영사정(永思亭) 묘역 안내판

    ▼ 남원윤씨(南原尹氏) 영사정(永思亭) 묘역에 화중원(和仲園)이라는 충신단을 세워놓았다. 화중(和仲)은 이 묘역의 최고 어른인 윤은선생의 자(字)이다.

    ▼ 임진왜란 충신 용양부원군(龍陽府院君) 윤섬(尹暹) 기념비 

    ▼ 병자호란 충신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 기념비

    ▼ 병자호란 삼학사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 기념비

    ▼ 남원윤씨(南原尹氏) 영사정(永思亭) 묘역 전경

    ▼ 남원윤씨(南原尹氏) 영사정(永思亭) 묘역에 있는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묘갈

    ▼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묘갈

    ▼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구 묘갈

    ▼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묘 전경

    ▼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묘는 묘역 아래쪽에 있다.

    ▼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묘

    ▼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묘 백호방 석물

    ▼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묘 청룡방 석물

    ▼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묘 후경


    ▼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의 아들이면서 윤계, 윤집의 부친인 충강공(忠康公) 윤형갑(尹衡甲) 묘

    ▼ 충강공(忠康公) 윤형갑(尹衡甲) 묘갈

    ▼ 충강공(忠康公) 윤형갑(尹衡甲) 묘 후경


    ▼ 임진왜란 충신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 묘 전경

    ▼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 묘갈

    ▼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 묘갈

    ▼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 묘 석물


    ▼ 병자호란 삼학사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 묘는 충남 부여에 있다. 사진은 광나루님의 나홀로테마여행에서 가져왔다.

    ▼ 병자호란 삼학사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 신도비 및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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