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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광주]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3. 24. 09:00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심우승(沈友勝, 1551년 ~ 160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공신이다. 자는 사진(士進), 호는 만사(晩沙), 봉군호는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본관은 청송이다. 기묘명현 심달원의 손자이고, 경기도 관찰사 증 영의정 청파부원군 심전의 아들이다. 심우선, 심우준의 동생이고, 심우단의 형이다.

    1580년(선조 13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호조정랑으로, 피난길에 오른 선조를 호종하였다. 그 해에, 사간원 헌납을 거쳐, 성균관 직강으로,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진주사(陳奏使) 정곤수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후, 사헌부 지평이 되고, 1593년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의 원군이 평양성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평양성을 수복하자, 선조는 명나라에 구원 요청을 한 정곤수와 심우승의 공이라고 여겨, 심우승을 당상관으로 승진시키고,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에 제수하였다. 곧 이어, 호조참의를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 우부승지를 지내고, 1595년 승문원 부제조를 거쳐, 1597년 호조참판이 되었다. 그 당시, 한양에 주둔한 명나라 병사들의 행패가 심하였지만, 아무도 말 한마디 못하는 실정이었는데, 마침 명나라의 경리 양호가 심우승에게 명나라 병사들의 행패를 물어보니, 심우승이 그 실정을 사실대로 수백자를 써서 양 경리에게 보여주니, 양 경리는 심우승을 추켜세웠으나, 선조는 심우승을 파면시킨다. 양 경리가 선조에게 심우승을 다시 복직시키라고 요청하자, 1598년 한성부 우윤으로 복직된다. 1601년 강원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 사후 호성공신 2등에 책록되고,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으로 추봉되고,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소재지

    경기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 산 70-3(네비:도수리 479-1)

    관리자(연락처)

    청송심씨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원경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신도비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신도비 뒷면...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전경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표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청룡방 석물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백호방 석물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입수도두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후경... 입수룡이 휘어져 들어올 때 정혈처는 안쪽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제대로 점혈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격도 좋고 잘 갖춰져 있다.

    ▼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 심우승(沈友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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