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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광주]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4. 1. 09:00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


    광주 답사 시에 공주 묘를 마지막에 가게 되었는데 들머리를 찾지못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겨우 찾았다. 그래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지친 상태에서 보게 되었는데 경현공주의 일생을 살펴보니 그날 답사 때 내 심정하고 비슷한듯 해서 깜짝 놀랐다.

    생전에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을 후세인들이 굳이 함께 합장하는 것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너무 감정적인지는 몰라도 원하지 않으면 굳이 함께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묘역은 남편도 포악하여 위리안치 될 정도고, 아들도 불효자로 위리안치 되었으니 그 아비에 그 아들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한 묘역에 번듯하게 묘를 쓰고 지금까지 후손들이 잘 관리하고 있으니 꼭 인과응보로만 되는 것은 아닌듯 싶다.

    이곳은 진입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최근에 이곳에 빌라를 신축하는 바람에 기존 답사로가 차단되어 있어서다. 그날 나는 일단 계곡 끝으로 가서 타고 오르다 입수룡을 밟고 내려오면서 뒤에서부터 답사를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사진도 거꾸로 되어있다. 이해 바란다.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경현공주(敬顯公主, 1530년 ~ 1584년)는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과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의 셋째 딸이며, 명종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이름은 옥현(玉賢)이다.

    성종과 숙의 홍씨 소생인 이복 고모 혜숙옹주와는 시가로는 시조모와 손자며느리가 된다. 혜숙옹주 이수란은 그의 아버지 중종의 이복 누나가 된다.

    1530년(중종 25년) 중종과 문정왕후의 3녀로 태어났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문정왕후는 경현공주를 낳은지 7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시어머니인 정현왕후가 병상에 눕자 간호를 하였고, 정현왕후는 이에 감동하였다고 한다. 1537년(중종 32년) 경현공주에 봉해졌고 1541년(중종 36년) 목사 신수경(申秀涇)의 아들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에게 하가하여 1남을 두었으나 혼인 관계는 평탄치 못하였고 가정사는 불운하였다.

    그의 남편인 영천위 신의는 패악무도하여 폭행을 저질러 통천으로 유배되었으며 후에 살인까지 저질러 직첩을 박탈당하였다. 또한 1552년(명종 8년) 경현공주가 병에 들자, 신의는 기생집 출입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첩과 기생을 불러 공주 앞에서 희롱하고 간음하는 등의 부도덕적인 행동으로 마침내 1555년(명종 11년) 위리안치 되었다.

    1565년(명종 21년), 문정왕후의 국상중에 공주의 아들인 신사정(申士楨)이 기생 석빙정과 간통하고 공주 집의 재물과 외조모인 문정왕후가 하사한 물건까지 석빙정에게 건내주어 문제가 되었으며 1568년(선조 1년)에는 왕이 전교하기를 신사정이 아버지 신의가 죄를 지어 형을 받음에도 감정이 태연하고,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도 나와보지 않는 등의 불효를 저질렀음을 이유로 사판에서 이름을 삭제시키고 유배를 보냈다.

    아들과 남편 모두 귀양을 보낸 상태에서, 남편 신의가 서울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경현공주를 박대하고 의복과 음식을 넉넉하게 주지 않음을 이유로 보성으로 위리안치되었다. 이후 1584년(선조 17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

    소재지

    경기 광주시 목현동 산 107(네비: 목현동 645)

    관리자(연락처)

    고령신씨

     

    ▼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역... 들머리를 찾기 힘들다.

    ▼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

    ▼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 들머리를 찾아 돌다보니 입수룡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 경현공주(敬顯公主) 묘 입수룡을 확연히 볼 수 있어 좋다.

    ▼ 경현공주(敬顯公主) 묘 입수룡을 따라 등산로가 잘 되어 있다.

    ▼ 경현공주(敬顯公主) 묘에서 처음 만나는 묘는 신부(申桴)의 배위 숙인  하동정씨 묘다

    ▼ 봉사(奉事) 신부(申桴)는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의 동생이다. 배위 하동정씨 묘를 옮겨오면서 이곳에 이장했다.


    ▼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 전경... 일반적으로 묘역을 말할 때 남편을 먼저 말하고 부인은 생략하거나 뒤에 말하는 게 관례인데 이곳 묘의 주인공은 경현공주이기 때문에 그리 부르는 것이며, 또한 부군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가 살아 생전 행실이 좋지 못해 본받을게 별로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갈

    ▼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갈

    ▼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 석물

    ▼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 묘 후경


    ▼ 중종(中宗)女 경현공주(敬顯公主) 묘 아래에는 시아버지 여주목사 신수경(申秀涇)의 묘가 있다.

    ▼ 여주목사 신수경(申秀涇)의 묘갈

    ▼ 여주목사 신수경(申秀涇)의 묘 석물

    ▼ 여주목사 신수경(申秀涇)의 묘 석물... 요듬 세우는 석물들 중에는 의외로 무인석이 많다. 장군이라고 무인석을 세우는 게 아닌데 요즘 장군묘역에는 무인석을 세우는게 일반화 된 듯 보인다.

    ▼ 여주목사 신수경(申秀涇)의 묘 후경

    신수경(申秀涇) 묘 아래에는 신수경(申秀涇)의 손자이자 경현공주(敬顯公主)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의 아들 신사정(申士禎) 묘가 있는데 불효자로 귀양까지 갔다고 해서 그냥 지나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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