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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차지철(車智澈)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1. 1. 13. 11:30
차지철(車智澈) 묘
10.26사건의 주요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만 있는 게 아니다. 그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엎고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한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이 있다. 김재규 묘를 다녀오면서 차지철 묘를 올려야 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차지철 묘를 알아도 서로 눈치만 보고 올리지 못한 때였는데... 근자에 보니 인터넷 여러 곳에 차지철 묘가 올라와 있다. 그래서 나도 차지철 묘를 조금은 자세히 올리니 이해 바란다.
오래 된 묘역을 올리는 것은 별문제가 안되는데도 문중이나 일부 묘지답사 하시는 분들이 묘지 위치 등을 알리는 것을 꺼려하셔서 나 또한 몇몇 묘역들은 구체적인 주소를 생략한 체 올리는 경우가 종종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묘역 위치, 찾아가는 방법 등을 비교적 자세하게 올리려고 하고 있다. 인터넷 등에 이미 많이 알려진 경우에는 상황을 살펴서 그냥 구체적으로 묘역 위치를 올리고 있다. 현대 묘를 올리는 것은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운 데 김재규 묘도 십 수년 전에 올렸으니 차지철 묘도 인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어서 올려도 괜찮다 싶어 올린다.
묘를 올리면서 자료를 찾아보는데 차지철이 청백리로 살았다고 많이 나온다. 돌아가실 때 집 한 체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 권력가들이 부정부패로 얼룩이 졌다는데 그가 그처럼 검소하게 살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묘는 그의 어머니 김대안 권사가 다니던 영락교회 묘원에 있다. 어머니가 주선해서 교회에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어머니도 20여년 뒤에 차지철 옆에 묻혀 계신다.
40여년이 지난 묘역을 눈 내린 뒤에 찾았는데 비교적 양지 바른 곳에 조안이 잘 갖춰진 곳에 묘지가 있다. 현무정에서 맥도 잘 내려오고 있다. 생전의 그의 어머님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묘비 뒤에는 그의 아내, 세 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특이하게 어머니 묘비에도 아들 차지철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김재규 묘 바로가기
차지철(車智澈)
본관은 연안(延安). 경기도 이천 출생. 아버지 차윤염, 어머니는 김대안이며, 33세 시절이던 1966년 송희성과 결혼하였으나 10.26 사태 후 언론 보도를 보면 어머니 김대안과 아내 윤보영 등이 기절했다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송희성과 이혼하고 윤보영과 재혼한 것을 알 수 있다. (묘비에 보면 아내 윤보영과 세딸 이름이 나온다.)
1934년 경기도 이천 마장면에서 출생하여 가정 형편상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53년 사병으로 입대하여 이후 장교로 승진하였다. 1957년 미국의 포병학교와 1960년 보병학교를 졸업하고 공수여단 대위로 있던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가담하였다. 쿠데타 이후 박치옥 공수여단장의 소개로 박정희의 경호장교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박정희의 신임을 얻고 정치에 입문하였다. 1962년 육군중령으로 예편하여 민주공화당 상임위원을 지냈다.
1963년 민주공화당 전국구로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66년 민주공화당 경기6지구위원장을 지냈다. 1967년 민주공화당 지역구로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이천·광주). 1969년 국회 외무위원장을 지냈고, 1971년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광주, 민주공화당), 그해 국회 내무위원장을 거쳤다. 35세이던 1969년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의정사상 최연소 상임위원장이 될 정도로 박정희의 신임을 받았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성남·여주·광주·이천, 민주공화당), 그해 국회 내무위원장을 지냈다. 1974년 문세광의 육영수 저격사건으로 물러난 박종규의 후임으로 대통령 경호실장이 되었다. 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월권 행위로 대통령 비서실과 중앙정보부와의 마찰이 잦았고 재야와 야당문제에 대해 강경일변도로 대응했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 의원직 제명을 주도하고,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강경진압을 주장하고 공수여단 투입을 주도하였다. 당시 최고 권력이던 박정희를 사이에 놓고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와 대립하게 되면서 지배권력의 분열을 초래케 하기도 했다. 결국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에 의하여 피살될 때 경호실장으로 현장에 있다가 함께 살해당하였다.
묘는 노모 김대안 여사가 다니던 교회 묘원에 안장되었고, 노모도 1998년도 돌아가시자 아들 묘 옆에 나란히 묻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에서 발췌하여 내용 추가함>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차지철(車智澈) 묘 소재지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산 1-1 관리자(연락처) 영락교회묘지 ▼ 차지철(車智澈) 묘 현무정이 되는 팔각정...
▼ 현무정이 되는 팔각정...
▼ 팔각정 현무정에서 바라본 차지철(車智澈) 묘
▼ 차지철(車智澈) 묘 전경
▼ 차지철(車智澈) 묘
▼ 차지철(車智澈) 묘비
▼ 차지철(車智澈) 묘 후경...
▼ 차지철(車智澈) 묘 백호방(우측)에는 그의 어머님이 묻혀 있다.
▼ 차지철(車智澈) 묘와 그의 어머니 김대안 권사 묘
▼ 차지철(車智澈) 묘 측면에는 생몰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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