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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해남)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답사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21. 4. 9. 00:17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찾고 싶었던 절인데 남도 지역을 오며가며 하면서도 이곳을 지나치고 찾지를 못했다. 대부분 대흥사, 땅끝마을을 찾느라 시간이 부족해서 별도로 오지 못했다.
    이번 남도 사찰 답사를 준비하면서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를 무조건 넣어 진행했는데 동선이 길어져 오며가며 거의 4시간을 소비하다보니 오후 일정을 미황사, 도솔암만 찾았다. 먹거리도 좋은 곳이 많아서 거리가 좀 있더라도 찾아다니며 식도락도 즐겼다.
    미황사 창건설화에 인도의 금인(金人)이 부처님 모실 곳을 금강산에 갔는데 절이 이미 꽉차서 돌아가는 길에 달마산의 일만불을 보고 이곳에 부처님을 모셨다고 한다.  이때 의조 화상이 금인이 알려준대로 소를 앞세우고 가다가 소가 한 번 땅바닥에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산골짜기에 쓰러져 일어나지 않고 머문 자리에 미황사(美黃寺)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미황사의 ‘美’는 소의 울음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黃’은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다.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는 근자에 금강스님이 약 20년간 머물면서 크게 불사를 하고 절을 아름답게 꾸몄다고 해서 언론에 자주 등장했는데 최근 2021.2월에 미황사를 떠나 제주도 원명선원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번에 미황사를 답사하는데 향문 주지스님이 계셔서 인사만 드렸다.
    미황사에는 지금 동백이 후두둑하고 떨어져 있고 벚꽃은 이미 졌으며, 빨간 홍도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절 뒤로 병풍처럼 둘러져진 달마산이 아름다운데 지도를 보고 용맥을 그려보니 청룡,백호가 가람을 잘 감싸고 있어서 기운이 뭉쳐져 있다. 특히 백호가 바짝 붙어있어서 더 기운이 세다. 달마산 주맥은 대웅전쪽이 아니라 달마전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미황사를 답사할 때는 도솔암까지 함께 답사하는 게 좋을듯 싶다. 도솔암은 예전에야 도보로 달마고도를 따라 걸어갔겠지만 지금은 차량으로 정상까지 가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도솔암은 미황사의 12암자에 속하지 않고 대흥사 말사로 되어 있다. 이점 참고로 하길 바란다.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서 749년(경덕왕 8) 의조(義照)가 창건하였다. 사적비에 따르면, 749년 8월 한 척의 석선(石船)이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났는데, 의조가 제자 100여 명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에 오르니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법화경』·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40성중(聖衆)·53선지식(善知識)·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一萬佛)을 모실 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토(因緣土)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미자(美字)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자(黃字)를 택한 것이라 한다. 이 창건설화는 <금강산 오십삼불설화>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1264∼1294년 사이에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와 관리들이 이 절에 내왕하였다고 하므로 당시 미황사가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598년 만선(晩善)이 중건하였다.
    1660년(현종 1) 성간(省侃)이 3창하였으며, 1751년(영조 27) 덕수(德修)가 중건하여 금고각(金鼓閣)을 짓고 대웅전·나한전을 중건하였다. 그 뒤 고승 유일(有一, 1720∼1799)이 주석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의현(義玄, 1816∼1874)이 만일회(萬日會)를 열었다. 1996년 만하당을 짓고 누각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달마전(達磨殿)·응진당(應眞堂)·명부전(冥府殿)·세심당(洗心堂)·요사채 등이 있으며, 기타 석조(石槽)·당간지주(幢竿支柱)·부도군(浮屠群)·사적비(事蹟碑) 등의 문화재가 있다.
    이 중 미황사 응진당(美黃寺應眞堂)이 보물 제11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응진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1598년 만선(萬善)이 신축하였으며, 1971년 주지 이하덕(李河德)이 일부 보수하였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16나한 등의 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1598년에 중건한 뒤 1754년과 1761년에도 중수되었으며, 1982년의 수리 때 묵서(墨書)가 발견되어 건물의 연혁을 알 수 있었다.
    내부에는 삼존불을 모셨고, 후불탱화(後佛幀畫)가 걸려 있으며, 법당 뒤편의 목궤에 넣어둔 괘불(掛佛)은 오래된 것으로 몹시 상하였다.
    이 절의 부도군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곳은 26기(基)의 부도와 설봉당(雪峯堂)·송파(松坡)·금하(錦河)·낭암(朗巖)·벽하(碧霞) 등 대사비(大師碑) 5기가 있다. 다른 한 곳에도 5기의 부도가 있으나 전부 도굴되어 흩어져 있다.
    또한, 미황사 사적비는 1692년(숙종 18) 민암(閔黯, 1634∼1692)이 세운 것으로서 초서로 된 높이 3m의 비인데, 옥개석 위에 용을 얹어 조각하였다. 이 밖에 절 뒷산 사자봉에는 ‘토말(土末)’이라 쓰인 비석이 있어 우리 나라 육지의 끝을 나타내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명승 제59호

    문화재명칭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일원

    소재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관리자(연락처)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大興寺) 말사 미황사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일주문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용맥도와 전각배치도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오르는 길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천왕문...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천왕문 중앙통로에 윤장대가 설치 되어있다.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천왕문에는 무시무시한 사천왕이 있는게 아니라 아주 친근감 있는 천왕을 배치했다. 이런 천왕은 처음보는 것 같다.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자하루와 달마산...

    ▼ 미황사에는 문화재 안내판을 건물 앞에 세워 놓지를 않고 멀찌기 절 입구에 세워 놓았다.

    ▼ 미황사 달마대사상...

    ▼ 미황사 홍도화...

    ▼ 미황사 자하루

    ▼ 미황사 범종각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대웅전과 뒤로 병풍처럼 둘러져진 달마산 기암괴석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대웅전(보물947호)

    ▼ 미황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323호)

    ▼ 미황사 대웅전 측면

    ▼ 미황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전경

    ▼ 미황사 응진전에서 바라본 전경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응진전

    ▼ 달마산 미황사(達摩山 美黃寺) 응진전(보물 1183호)

    ▼ 미황사 명부전

    ▼ 미황사 삼성각과 내부

    ▼ 미황사 전각 뒤뜰...

    ▼ 미황사에 지천으로 피어난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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