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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정읍)봄날 내장사(內藏寺) 답사(대웅전 화재는 왜 계속되는가?)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21. 5. 11. 15:33

    내장사(內藏寺) 대웅전은 화재에 취약한가?

     

    전라도 지역 사찰을 답사하기로 마음 먹고 동선을 계획했는데 처음에는 지리산 쪽 위주로 계획을 잡았는데 지난 3월에 내장사 대웅전이 스님의 방화로 불에 타버린 사건이 있어서 내장사와 백양사를 묶어서 답사하기로 했다. 내장사 연혁을 살펴보던 중 유난히 불이 많이 나서 중창을 한 뒤 얼마 못가 또다시 불이나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지난 2012년에 대웅전이 불에 타 소실되었고 그 뒤 다시 대웅전을 복원했지만 이번에 또다시 불에 타는 불운을 겪게 된 것을 알았다.

    유난히 화마에 취약한 사찰들이 눈에 띄는데 이런 곳은 전통적인 화재예방책으로 풍수사상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내장사 대웅전 화재사건을 보면서 현재 해인사, 통도사 등에서 행하고 있는 화재예방 전통비보방책을 소개하면서 내장사의 비보방책을 소개해 드리려고 한다.

    내장사는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고보니 단풍도 불타는 듯 하다고 표현하니 그것도 내장사하고는 안맞는듯 하다. 이른 초봄에 찾은 내장사 단풍나무들은 연두색 잎을 단풍대신 보여주고 있어서 초봄의 분위기를 한껏 높여주고 있었다. 단풍터널로 유명한 길이 연두터널로 만들어져서 이맘 때 쯤 내장사를 찾아도 전혀 아쉬울게 없는 풍경이다.

    불이난 대웅전은 말끔히 치워져 있어서 내장사의 전체적인 가람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는데 대웅전 뒤에서 내려오는 맥은 괜찮아 보이고 절을 둘러싸고 있는 청룡, 백호는 너무 높아서 절간의 전각들을 누르는 형세다. 특히 멀리 서래봉 암석들이 좋지 못하고, 백호쪽 팔각정 있는 봉우리가 대웅전을 직접 충살하고 있다. 이곳에서 화기가 뿜어져 나와 대웅전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진다. 부디 비보방책을 잘 활용하여 앞으로 새로 짓는 대웅전은 화마로부터 벗어나길 기대해 본다.

     

    내장사(內藏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 내장사는 백제 때에 창건한 두 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원래 내장산에는 636년(백제 무왕 37) 영은조사(靈隱祖師)가 50여 동의 대가람으로 창건한 영은사(靈隱寺)와 660년(백제 의자왕 20) 유해선사(幼海禪師)가 세운 내장사(內藏寺, '백련사(白蓮寺), '벽련암(碧蓮菴)'이라고도 전함)가 있었다.
    1539(중종 34) 내장산에서 승도탁란사건(僧徒濁亂事件)이 일어났다. '승도탁란사건'은 승과를 없애는 등 억불정책을 펼쳤던 중종이 승려들을 환속시켜 군적에 넣도록 한 것에 대해 호남지역 승려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했던 사건으로, 중종이 이에 크게 분노하여 내장사와 영은사를 도적의 소굴이라 칭하며 소각을 명함에 따라 불태워졌다.
    1557년(명종 12) 희묵대사(熙黙大師)가 영은사 자리에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하고 절 이름을 내장사로 고쳤는데, 이곳이 현재의 내장사 전신이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년(인조 17) 부용대사(芙蓉大師)가 중수하고 불상을 도금했으며, 1779년(정조 3) 영운대사(暎雲大師)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했다.
    1925년 학명선사(鶴鳴禪師)가 옛 내장사 자리인 벽련암으로 옮겨 벽련사라 하고 옛 절터에는 영은암을 두었다. 그러나 1938년 매곡선사(梅谷禪師)가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채를 신축했다.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74~77년까지 대규모 중건을 통해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다.
    대웅전·극락전·명부전·삼성각·천왕문·일주문 등이 있으며, 내장산의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2012년 10월 대웅전이 누전으로 전소된 후 2015년 7월 복원되었으나 2021년 3월 승려의 방화로 다시 소실되었다.<다음백과에서 인용>

    영은사지(靈隱寺址)

     

    전라북도 기념물 제63호. 636년(백제 무왕 37)영은조사(靈隱祖師)가 50동의 큰 절을 지었고, 1098년(고려 숙종 3)행안선사(行安禪師)가 전각당우를 새로 중창하였다고 하였을 뿐, 그동안의 연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뒤 1567년(명종 22)희묵대사(希默大師)가 법당과 요사를 수축하고, 1639년(인조 17)부용대사가 사우를 중창하고 불상을 도금하였으며, 1779년(정조 3)영운대사가 대웅전·시왕전을 중수하고 명부전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6·25 때인 1951년 전소되었다. 그뒤 1957년 요사, 1958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고, 1973년 일주문, 1975년에는 명부전, 1978년에는 정혜루를 복원하고 사천왕문을 새로 세웠다. 1979년에는 인도로부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성임(成任)의 〈정혜루기〉에 의하면, 영은사는 고려 말엽 지엄선사(智嚴禪師)의 개산(開山)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영은사의 개산 시기를 밝히는 데 고증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영은사에는 유명한 정혜루가 있었는데 정혜루는 영은사의 문루로서 사세가 한창 번성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1467년(세조 12)에 시작하여 다음해 준공된 3칸의 문루로서 그 규모나 제작이 장엄하고 화려했음을 밝히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전라북도 기념물 제63호

    문화재명칭

    영은사지(靈隱寺址)

    소재지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관리자(연락처)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 내장사(內藏寺)

     

    ▼ 내장사(內藏寺) 입구 안내문

    ▼ 내장사(內藏寺) 일주문... 강암 송석용선생 글씨다.

    ▼ 내장사(內藏寺) 단풍터널 안내문... 지금은 연두색터널이다.

    ▼ 내장사(內藏寺) 초봄 풍경과 만추 풍경...

    ▼ 내장사(內藏寺)는 가을 못지않게 초봄도 멋드러진 풍경을 보여준다.

    ▼ 내장사(內藏寺) 부도밭

    ▼ 어디를 봐도 연두빛... 비가 내리는 내장사(內藏寺)... 물감이 흘러내릴듯 보인다.

    ▼ 내장사(內藏寺) 천왕문...

    ▼ 내장사(內藏寺) 정혜루 가는 길

    ▼ 내장사(內藏寺) 정혜루...

    ▼ 내장사(內藏寺) 대웅전의 예전 모습과 화재 현장...

    ▼ 내장사(內藏寺) 대웅전의 모습과 불이 난 뒤의 대웅전 터...

    ▼ 내장사(內藏寺) 용맥... 완만하게 내려와 좋은 기운을 보내준다. 예전에 앞쪽에 있던 석탑은 지금은 옆으로 배치했다.

    ▼ 내장사(內藏寺) 대웅전이 사라진 빈터.... 극락전 뒤로 서래봉이 보였는데 이날 비가 와서 보이지 않는다.

    ▼ 내장사(內藏寺) 극락전

     

    내장사조선동종(內藏寺朝鮮銅鐘)

     

    총 높이 72.5cm, 종신높이 7cm, 종지름 46.5cm. 1768년(영조 44) 제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동종의 형식과 양식을 보면 종정상의 용통(甬筒 : 음관)은 고려 후기 동종에서 보이는 일반적 양식을 갖추고 단룡(單龍)의 용뉴(龍鈕 : 종의 꼭지부분)로 용의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종정(鐘頂 : 동종의 정상)의 천판(天板)은 비교적 수평을 이르고 있으나 용뉴가 설치된 곳은 한 단계 높아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견대(肩帶)와 천판이 접하는 부분에는 여의두문으로 장식된 입상대(立狀帶)를 돌렸으나 마멸과 결손이 심하여 현재는 일부만이 남아 있다.
    상대인 견대는 상하 2단으로 구분하였는데, 상단은 연당초문으로 돌려 장식하였으며, 하단은 꽃잎 중앙에 작은 여의두문을 장식하고 꽃잎변을 고사리 문양으로 장식한 복련판으로 돌리고 있다. 상대와 유곽과의 사이에는 두 줄의 가는 선으로 돌린 원공 안에 범자(梵字) 21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장식하고 있다.
    4개소에 위치한 유곽(乳廓)은 거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9개의 유두는 꽃잎유좌에 자방이 돌출된 유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유곽의 문양은 연당초문이며 하대인 구연대의 문양도 유곽문양과 같은 연당초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의 두광과 보관을 갖추고 합장한 보살입상 4구가 배치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양주(陽鑄)된 명문이 있어 주성 연대와 사찰명을 밝히고 있다.
    명문에는 ‘乾隆三十三年 戊子十月 日長興寶林寺明正庵中鐘鑄 成尹光衡 大禪師光學 化主德周 別座來應 施主秩 大施主尹光衡 趙漢寶爲化父母 趙仁九 梁氏兩主 林奉□ 妻安氏(건륭33년 무자10월 일장흥보림사명정암중종주 성윤광형 대선사광학 화주덕주 별좌내응 시주질 대시주윤광형 조한보위화부모 조인구 양씨양주 임봉□ 처안씨)’로 기록되어 있는데, 부모를 위해 주성하여 장흥 보림사 명정암에 공양한 동종이며, 건륭 33년 무자는 영조 44년(1768)으로 조선 후기 동종의 양식을 갖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내장사(內藏寺)조선동종... 장흥보림사 종이었는데 내장사로 옮겨왔다.

    ▼ 내장사(內藏寺) 대웅전 터에서 바라본 정혜루...

    ▼ 내장사(內藏寺) 대웅전 터

    ▼ 내장사(內藏寺) 삼층석탑

    ▼ 오래된 석탑과 불암...

    ▼ 내장사(內藏寺) 산신각...

    ▼ 내장사(內藏寺) 명부전

    ▼ 내장사(內藏寺) 범종각

     

    ▣ 내장사(內藏寺) 화재 예방을 위한 비보방책

    내장사(內藏寺)는 내장산의 연봉들이 막 피어난 연꽃잎처럼 연화봉을 이루며 도량을 둘러싸고 있어 그 경관이 아름답다고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내장산의 중심에 내장사가 위치해 있다보니 연화봉의 기봉들이 뾰족한 암석으로 되어 내장사를 누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형상으로 내장사는 능압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은 형세다.

    특히 절간에서 보면 청룡쪽 너머로 서래봉이 보이고, 백호방에는 지근거리에 팔각정봉우리가 뾰족한 봉우리를 이루며 대웅전을 누르고 있다. 이는 화기(火氣)로 매우 좋지 않다.

     

    ▼ 내장사(內藏寺) 배치

    ▼ 내장산(內藏山) 연봉들이 빙 두르고 있는 중앙에 내장사가 자리하고 있다. 화기가 센 봉우리가 절간에서 보이면 화마에 취약하게 되므로 반드시 비보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 내장사(內藏寺) 대웅전 화재(2012년) 현장.... 화기를 품은 암봉이 직접 절을 누르고 있다.

    ▼ 내장사(內藏寺) 대웅전 터를 가까이에서 능압하고 있는 팔각정봉우리....

    ▼ 내장사(內藏寺)와 유사한 해인사, 통도사에서는 매년 단오일(양의 기운이 가장 센 날)에 화기를 누르기 위해 앞산에 소금단지를 묻고 절간의 전각 등 여러 곳에 소금단지를 묻거나 석가래에 소금봉지를 올려 놓아 화기를 억제한다. 소금은 음양오행에서 물(水)를 상징하므로 물로 불을 제압하려는 비보방책인 것이다. 

    내장사(內藏寺)는 한국전쟁 중에도 불이나 대웅전이 소실되었고, 지난 2012년도에도 전기합선으로 화재가 나 전소되었으며, 이번 2021년3월에는 방화에 의해 소실되는 등 끊임없이 화재에 노출되어 왔다. 앞으로 또 대웅전을 중창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에는 화마로부터 벗어나길 바란다. 이에 대한 비보방책을 소개하면,

    첫째, 대웅전에서 보이는 각 봉우리에 단오날 소금단지를 묻어야 한다.(해인사 사례를 참고)

    둘째, 백호방에서 직접 대웅전을 내려보고 있는 팔각정에 소금단지를 묻고 인공으로 작은 연못을 만든다.

    셋째, 대웅전 좌우에 음료대, 감로수대를 설치하여 화기를 억제해야 한다.

    넷째, 대웅전 천장 석까래에도 여러가지 비보방책을 강구해야 한다.(아래 소품들은 경복궁 중건 시 지붕아래에 넣었던 벽사용품들인데 새로 대웅전을 중창할 때 참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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