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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김제)성모암(聖母庵)-진묵대사 모친 묘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21. 3. 1. 20:37

    성모암(聖母庵)

     

    김제지역 풍수문화답사를 계획하면서 유명 사찰, 문화재, 종교시설 등을 두루 계획했는데 오히려 묘지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진묵대사 모친 묘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어서 인근 망해사와 더불어 별 어려움없이 답사지로 선정하게 되었다.

    진묵대사(震默大師)의 속명은 일옥(一玉)으로 1562년(명종 17)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다.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으며,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하고 신통력으로 많은 이적(異跡)을 행하였다고 한다. 
    진묵대사가 태어난 화포(火浦)는 불거촌(佛居村)의 다른 이름으로, 즉 ‘불(佛)’의 음을 취한 뒤 불을 뜻하는 ‘화(火)’자를 쓰고, ‘거(居)’가 개로 음이 변한 뒤 갯마을을 뜻하는 ‘포(浦)’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다. 불거촌은 진묵대사와 같은 고승(高僧)을 낳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진묵대사는 다른 승려들과 다르게 사가의 어머니를 힘과 마음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고, 누이들과도 피를 맺은 형제로서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들인 자신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 향과 참배를 할 수 있는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에 어머니 묘를 썼다. 묘비에는 '향을 피우고 참배를 할 경우 한가지 소원은 들어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진묵대사어머니 묘소가 있는 곳에 성모암(聖母庵) 암자가 들어서 있는데 태고종 종단이며,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진묵대사가 예언했듯이 지금도 향과 초가 끊이질 않고 참배객들이 찾아오는 곳인데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이었는데도 이곳 묘역에는 적지 않은 불자들이 와서 기도를 하고 묘역에 손을 얹고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고 있었다. 정작 진묵대사의 부도탑은 전주 봉서사에 모셔져 있다.

     

    성모암(聖母庵)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유양산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성모암(聖母庵)은 일제강점기에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華之地)로 전해오는 전라북도 지역의 고승 진묵대사(震默大師) 모친의 묘소에 세워진 암자이다.
    1927년 5월에 이순덕(李順德) 화부인(華夫人)이 계룡산 신도안에 있다가 고향인 임실로 가는 도중 지금의 성모암 인근 마을에 유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서쪽 하늘로부터 흰 가마가 내려오더니 한 스님이 나타나 이 가마를 타라고 하였단다. 그 가마를 타자 공중으로 날아올라 어느 묘소 앞에 내리더니 쉬었다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 신심이 일어 집주인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 주인이 인근에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그곳이 영험한 곳으로 소문나 있으니 참배하고 소원을 빌어보라고 귀띔해 주었다는 것이다. 날이 밝아 묘소를 찾으니 봉분은 무너지고 잡초는 우거져 찾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이에 바로 묘소를 사초(莎草)하고 시묘하면서 지방 유지 신도들과 봉향계(奉香契)를 조직하여 정성스레 보살폈다. 그 후 사람들이 묘소 밑에 제각을 건립하고 고인이 된 이순덕 화부인의 공적비를 세운 것이 성모암의 시초가 되었다.  성모암은 근래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보전, 산신각, 고시례전, 종각 등의 건물을 조성하였다.<디지털김제문화대전>

     

     

    문화재지정

    전통사찰 111호

    문화재명칭

    성모암(聖母庵)-진묵대사 모친 묘

    소재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3길 54-9[화포리 389]

    관리자(연락처)

    성모암(聖母庵)

     

    진묵대사(震默大師)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는 고시레라는 말이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년] 어머니 고씨 부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진묵대사는 전라북도 김제 만경현 불거촌에서 태어난 유명한 승려이다.
    7세에 출가하였는데 그 후로 일생 동안 수많은 신비스러운 일을 행하면서 살았다. 대개 출가한 스님들은 가족과 맺었던 인연을 다 끊어버리는 것이 상례였지만, 진묵은 출가한 후에도 늘 어머니와 누이들과 깊은 사랑을 나누면서 살았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힘과 마음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고, 누이들과도 피를 맺은 형제로서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진묵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다하였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간절하게 드러냈다.
    진묵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들인 자신과 두 누이가 모두 세상을 떠나더라도 길이길이 모든 사람들의 향과 참배를 받을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 자손 없어도 천 년 동안 향화를 올릴 명당자리란 뜻]의 불거촌에 어머니 묘를 모셨다. 지금도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의 성모암에는 진묵대사와 그의 어머니가 모셔져 있다. 이 성모암에는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와 묘비가 단아하고 기품 있게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는 ‘진묵대성사존비지묘(震黙大聖師尊妣之墓)’라는 팻말이 서 있고 전통사찰 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1562년경 조선 명종 때 진묵대사에 의해 봉안된 묘소, 동양의 소석가모니 칭송을 받던 대사는 노모를 이곳 만경현의 북쪽 불거촌(佛居村)에 묘를 봉안하고, 이곳이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천하 명당인 ‘무자손천년향화지지’라 칭하고, 모친 묘에 제사를 지내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것이니 향과 초를 올려 참배하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의대선사가 지은 『유적고(遺蹟攷)』에서는 “대사는 동양의 소석가이시지만 효를 실천한 민족의 대스승이시다.”라고 칭송하였다. 모친의 성은 ‘제주고씨’이며 훗날 조의씨(調意氏)라고 존칭해 왔다. 민족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이곳 묘에 경건히 참배하여 효에 대한 숭고한 정신문화를 유지 계승하기 위해 사단법인 진묵대사 유적진흥회에서 사적지 1호로 지정하였고, 진묵대선사가 모친을 위하여 지은 49제 제문이 전한다.<디지털김제문화대전>

     

    ▼ 성모암(聖母庵)은 진묵대사의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암자로 전통사찰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 성모암(聖母庵) 입구에 있는 진묵대성사비...

     

    ▼ 성모암(聖母庵) 전경

     

    ▼ 성모암(聖母庵) 5층석탑

     

    ▼ 성모암(聖母庵) 진묵대성사어머님 묘 전경

     

    ▼ 진묵대사 어머님 묘비.... 진묵조사존비지묘(震黙祖師尊妣之墓)

     

    ▼ 진묵대사 어머님 묘

     

    ▼ 진묵대사 어머님 묘비 후면.... 불기 2956년이라 적혀 있다. 의아해서 확인해 본 결과 1962년까지는 북방불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동안 중국, 한국, 일본은 북방불기를 사용해서 기원전 1027년을 불기로 해서 사용했는데... 그런데 1962년에 남방불교와 불기 통합이 이뤄져서 기원전 544년을 부처님 탄생으로 보고 올해가 불기 2565년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 비석을 세운 연도는 1929년 기사년 4월에 세움...

     

    ▼ 진묵대사 어머님 묘 후경... 평지룡에 낮게 묘역을 조성하다보니 멀리 김제평야가 눈에 들어오는데 아무래도 바람이 걱정되어 주변으로 나무들을 많이 식재한듯 하다. 앞쪽에 작은 연못을 판 것은 연화부수형의 형국을 맞추기 위해 비보로 판듯하다. 예전 사진을 보면 묘역 뒤쪽으로 빙둘러 사성형태로 낮은 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은 나무들을 모두 제거해서 시원스런 눈맛은 즐길 수 있지만 바람에는 취약하다.

     

    ▼ 진묵대사 어머님 묘 측경

     

    ▼ 진묵대사 어머님 묘 뒤 산길로 가면 '고승진묵대사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 진묵대사 어머님 묘 앞에 작은 연못은 연화부수형에 맞게 비보로 판 것이다.

     

    ▼ 성모암(聖母庵) 나한전

     

    고시레 유래

     

    성모암에는 한글로 쓴 편액이 걸린 고시례전이 있고 진묵대사와 그 어머니 영정이 모셔져 있다. 김제 지역에서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고시레라고 외치면서 음식을 던지는 것은 진묵대사의 어머니 ‘고씨네’ 부인에게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행위적 의미가 강하다. 원래 고씨 부인 묘가 논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농부들이 새참을 먹거나 밥을 먹을 때 “고씨네도 드시오.”하고 밥 한술씩을 던져주었다고 한다. ‘고시레’의 ‘고시’는 제주고씨인 진묵대사 어머니의 성씨인 ‘고씨(高氏)’에서, ‘레’는 ‘예도 예(禮)’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래에는 이곳이 명당 터로 소문이 나서 많은 어머니들이 순례하면서 ‘고씨네’ 부인을 기념하고 있다. <디지털김제문화대전>

     

    ▼ 성모암(聖母庵) 고시례전...

     

    ▼ 고시례전에는 진묵대사와 어머님 고씨의 영정을 모셨다.

     

     

    진묵대사가 49제 때 올렸던 제문(祭文)

     

    다음은 성모암의 진묵대사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49제 때 올렸던 제문(祭文) 내용이다.
    “열 달 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까?/어머니 슬하에서 삼 년 동안 길러주신 그 은혜를 이 자식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 산다고 하더라도/이 자식의 마음에는 그래도 부족하온데/백 년 생애에 백 년도 다 채우지 못하시고 가셨으니/어머니의 수명은 어찌하여 그리도 짧습니까?/표주박 하나를 손에 들고 길가에서 걸식을 하는 이 산승(山僧)은/이미 말할 것도 없거니와/비녀를 꽂고 규중에 처하여 아직 출가하지 못한 누이동생이 어찌 애처롭지 않습니까?/상단의 불공의식을 마치고 하단 불공의식까지 끝나니/스님들은 제각기 방으로 돌아가고/앞산과 뒷산만 홀로 첩첩한데/어머니의 영령은 이제 어디로 떠나셨습니까?/아! 애달프다 사랑하는 어머니여!”<디지털김제문화대전>

     

    ▼ 어머님 묘 앞 연못가에는 진묵대사가 어머님 49제 때 올렸던 제문이 있다.

     

    ▼ 성모암(聖母庵)

     

    ▼ 성모암(聖母庵)에 노천에 모셔진 부처님...

     

    ▼ 성모암(聖母庵) 극락보전

     

    ▼ 성모암(聖母庵) 산신각...

     

     

    조앙사(祖仰寺)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행주산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조앙사(祖仰寺)는 진묵조사(震默祖師)를 흠앙(欽仰)하는 뜻에서 진묵조사의 ‘조(祖)’자와 흠앙의 ‘앙(仰)’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이곳 불거촌(佛居村)에서 훤당(萱堂) 조의씨(調意氏)가 진묵조사를 잉태하였을 때 인근의 산천초목이 시들어가더니 진묵조사가 출생하였다고 하여 산천의 정기를 뽑아 태어났다고 전한다. 
    1915년 3월 25일 강생술 보살이 대웅전을 건립하고, 1925년 3월에 초가로 요사를 지었다. 1927년에는 조앙사 진묵조사전을 건립하고, 1928년 3월에는 칠층석탑을 세웠다. 1958년 4월 8일에 종각을 짓고, 이어서 승려 유문수가 1962년 4월 삼성전을 새로 지었는데 지금은 허물어져 남아 있지 않다. 1977년 3월 18일에는 유문수가 예전의 대웅전을 허물고 새로 중건하였다. 석가모니의 등화신인 진묵조사를 우러러 받드는 데서 진묵조사가 태어난 이곳의 산 이름을 조앙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30년에 조앙사가 대화교의 포교당일 때 주존불인 미륵불을 모시고 미륵신앙을 전파하던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조앙사 미륵보탑이 남아 있다. 조앙사 후불탱화와 칠성탱화 및 신중탱화 등의 화기에 ‘개교(開敎) 5년’, ‘개교(開敎)9년’, ‘대화포교당(大華布敎堂)’ 등의 연도 표기가 눈길을 끈다. ‘개교’는 곧 대화교를 창종한 것을 말하는데, 1923년에 해당된다. 대화교는 손은석(孫殷錫)이 서울에서 창립한 종교로서, 최제우를 교조로 하는 제우교(濟愚敎)를 만들어 포교를 시작했다가, 1920년에 용화교(龍華敎)로 바꾸었다. 
    현재 조앙사에는 대웅전과 요사채, 종각, 진묵조사전, 그리고 1927년에 조성된 조앙사 미륵석탑이 있다. 진묵조사전 내부에는 진묵조사 진영과 성자모조의씨 진영(聖慈母調意氏眞影), 그리고 진묵조사의 누이동생을 그린 대조사소매 진영(大祖師小妹眞影)이 봉안되어 있다. 만경읍사무소에서 서쪽으로 2㎞쯤 지난 행주산에 자리하고 있어 행주사(行舟寺)라고도 부른다.<디지털김제문화대전>

     

    ▼ 진묵대사 어머님 묘 윗쪽으로 가면 바로 진묵대사 탄생지에 세워진 조앙사 대웅전으로 연결된다.

     

    ▼ 진묵대사 어머님 묘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바로 불거촌에 갈 수가 있다.

     

    ▼ 진묵대사 어머님 묘 뒤에서 바라본 조앙사 대웅전...

     

    ▼ 조앙사(祖仰寺) 안내석

     

    ▼ 조앙사(祖仰寺) 입구에 유앙산조앙사라 적힌 일주문이 세워져 있다.

     

    ▼ 조앙사(祖仰寺) 전경

     

    ▼ 조앙사(祖仰寺) 대웅전

     

    ▼ 조앙사(祖仰寺) 야외에 모셔진 석불...

     

     

    조앙사소장묘법연화경 권제1, 권1-7 (祖仰寺所藏妙法蓮華經 券第1, 券1-7)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삼국시대이래 가장 많이 유통된 불교경전이다. 
      묘법연화경 권1-7 영각사 중각본은 반곽 23.3×17.8cm, 전곽 30.7×19.9cm 로서 간기를 통해 볼 때 영각사에서 1539년에 중각한 것으로서 7권 28품의 완질이 전하고 있으며 제1권의 변상도와 제7권에 증각에 대한 연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묘법연화경은 실제로는 1650년경에 다시 인쇄한 것으로 보이는데 각 권 첫장은 이후에 다시 찍어 보완한 것이다. 
       묘법연화경 권1 귀신사 개간본 1책은 1609년 귀신사에서 간행한 목판본으로서 변상도 등의 선명한 표현과 연기문의 내용 및 간기 등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김제 귀신사는 1700년대까지 상당한 불경을 찍어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조왕사에는 언문번역 법화경 상․하, 단군영정, 진묵대화상진영, 부인회명부, 권왕문, 권선문 등 많은 수의 불서와 회화,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으나 모두 1900년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문화재청>

     

    ▼ 조앙사(祖仰寺) 소장 묘화법화경...

     

    ▼ 조앙사(祖仰寺), 진묵조사전(震默祖師殿) 갈림길...

     

    ▼ 숲 길에서 본 진묵조사전(震默祖師殿)

     

    ▼  진묵조사전(震默祖師殿) 전경

     

    ▼  진묵조사전(震默祖師殿)에 모셔진 영정... 중앙이 진묵대사, 오른쪽이 어머니 고씨, 왼쪽이 누이 영정...

     

    ▼  진묵조사전(震默祖師殿)에서 바라본 김제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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