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맞아 베란다 화초들을
거실로 옮겨 놓아두고
몇 주를 보내던 중
뜨스한 기운에 몇번 몸서리를 치는가 싶더니
이내 꽃망울이 맺히고
한두송이 꽃을 피워물고 있다.
우리집 화초라야 몇그루 없지만
그래도 그중 맨처음 동백이 꽃을 피우고
뒤를이어 철쭉이 피고
오늘엔 연산홍이 몇 송이 얼굴을 내민다.
동백은 탐스럽게 꽃봉오리가 맺히고 난 뒤
한 열흘이 지난 후에
피는줄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연달아 네송이 다섯송이를
그 작은 나무가지 틈새로 수줍게 피어물고 있다.
철쭉은 정말 가느다란 가지에
볼품도 없는 것이었지만
집들이때 친지가 보내주면서
나중에 꽃이 보기 좋으니 잘 기르라는 말만 믿고
열심히 물을 주곤 했는데
이번에 꽃을 보니
크기도 크고 색깔도 무척 맘에 든다.
몇가지 안되는 작은 나무에서
각 가지마다 세네송이를 피웠으니
언뜻 잎은 안보이고 꽃나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연산홍 분재를 하나 키우고 있는데
이 녀석도 다른 것들과 동참을 할려는지
몇일전에 꽃봉오리를 만들더니
오늘엔 기어코 봉오리를 벌려
그 존재를 확인 시켜준다.
연산홍을 보면 미당의 영산홍이란 시가 생각난다.
*********
영산홍 (미당: 서정주)
영산홍 꽃잎에는
山이 어리고
山자락에 낮잠 든
슬푼 소실댁(小室宅)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놎요강
山넘어 바다는
보름 살이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메기
*********
때아닌 꽃잔치를 맞고보니
지금이 한겨울인데도
봄이 다가온 것 같다.
꽃이란게 참 묘하다.
꽃 몇송이가 대번에 분위기를 바꿔주고
사람 마음을 안정시켜 주니 말이다.
계절은 여전히 변함없이 흐르고 있는데
인간이 그 물줄기를 돌려놓는 것 같아
꽃을 보면서도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향기를 맡아보고자 연신 코를 벌름거리지만
마땅한 제 향기는 아니 나오는듯 싶다.
그나마 삭막하기만한 겨울 분위기를
다소나마 정감어리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겠지...?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이 가련하게 느껴진다.
괜스레 먼저나와 벌과 나비도 못보고
또한 본래의 제모습을 지켜내기도 힘들고
사방에 위험이 널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넓은 천하를 피해 겨우 거실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으니 답답할거란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내가 벌이 되어
이 녀석들과 친구나 되어볼까나.....
출처 : 불혹전후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