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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일 점심 때 돌아본 경희궁...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1. 4. 30. 10:00

     

    평일 점심 때 돌아본 경희궁...

     

     

    점심시간을 이용해 광화문에 나갔다가 인근에 있는 경희궁을 돌아봤습니다. 평일이라 관람객도 많지 않았고 한가해서 천천히 돌아다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역사박물관을 함께 돌아봤습니다.

     

    희궁은 항상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하늘과 맞닿아있는 선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새로 복원하여 지은 궁궐이지만 운치만큼은 오래된 궁궐에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새로지은 곳이라 다른 궁에서는 볼 수 없는 과도한 통제가 별로 없어 좋습니다. 문화재를 관람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제약들이 많이 있는데 경희궁에는 그런게 별로없어서 나같이 삐딱선들한테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경희궁을 자주 찾게 만듭니다. 또 한가지 이유를 들자면 한양의 5대궁 이름들이 뭔가 권위가 잔뜩들어간 이름들인데 이곳은 그래도 여자이름 같아서 왠지 친금감이 많이 들어 좋습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선이 아름다운 경희궁

     

     

    경희궁터(사적  제271호)에 대한 위키백과사전 내용입니다.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영조가 1760년(영조 36년)에 궁궐 이름인 '경덕(慶德)'이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음이 같다고 하여 '경희궁'으로 고친 것이다. 경덕궁터는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정원군)의 사저가 있던 곳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뒤 재건된 창덕궁으로 들어가기를 꺼리고, 인왕산 아래 새 궁궐인 인경궁(仁慶宮)을 짓다가 정원군의 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풍수설을 믿고 왕기를 누르기 위하여 그의 집을 빼앗아 1617년(광해군 6년)~1623년(광해군 15) 사이에 경덕궁을 세웠다. 그러나 1623년 인조 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경덕궁을 쓰지 못하였다. 인조가 즉위한 뒤에 창덕궁이 소실되고, 이괄의 난으로 창경궁마저 불타버리자 인목대비를 받들어 이 궁궐로 이어하였다. 이 곳에서 숙종이 태어났고, 경종, 정조, 헌종이 즉위하였으며, 숙종, 영조, 순조가 승하하였다. 경희궁은 경복궁 서쪽에 세워진 까닭으로 서궐(西闕)로 불렸고, 이 밖에도 새문안 대궐, 야주개 대궐, 새문동 대궐 등으로 불렸다.

     

    왕기가 서려있다는 왕암... 태령전 뒤에 있는데 예전에는 물이 흘렀는데 이번에 보니 물이 말랐다

     

    경희궁은 순조 29년(1829년) 10월 화재로 인하여 전각 대부분이 소실된 것을 1831년에 중건하였다. 일제가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궁궐의 서쪽에 세우면서, 경희궁의 많은 전각들은 헐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정전인 숭정전은 일본의 한 불교 종파인 조동종의 조계사 본전으로 쓰기 위해 1926년 남산 기슭으로 이건되었다가 지금은 동국대학교의 법당인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다. 흥정당은 1928년 광운사로 이건되었으며, 관사대(觀射臺)는 사직단 뒤로 이건되어 현재 황학정(黃鶴亭)으로 쓰이고 있다. 흥화문은 1932년에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인 박문사의 문으로 쓰였다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폐사되고, 이후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이다가, 1988년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경희궁터는 광북 후에 서울중ㆍ고등학교로 쓰이다가 1980년 6월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현대건설에 매각되었다. 그 뒤 서울특별시에서 이 터를 매입하여 사적 제271호 지정하였으나, 시에서 경희궁터에 서울역사박물관을 세우면서 다시 훼손되었다.

     

    언제봐도 이곳에서 보는 경희궁의 모습은 아름답다...

    자정전 옆에 있는 바위.. 경희궁은 자연을 거스르지않고 자연의 생김새에 따라 전각을 배치했다

     

    경희궁을 구성하는 전각들은 궁궐지, 서궐도안, 서궐영건도감의궤 등의 자료와 유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흥화문과 숭정문은 궁궐의 내외 출입문을 형성하였고,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융복전, 회상전, 흥정당, 자정전, 장락전, 집경전, 만학정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파괴되거나 이전되었다. 현재의 터에 남아 있는 것은 건물터와 흥화문뿐이며, 나머지는 새로 복원된 것이다.

     

    복원한 태령전에서 바라본 자정전. 공간배치가 아름답다

     

    경희궁의 배치 형태와 공간 구성은 다른 궁궐과 달리 매우 독특하다. 정전인 숭정전 영역이 서쪽에,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영역이 동족에 나란히 놓여 있으며, 정문인 흥화문은 궁궐의 남쪽에 있지 않고, 동남쪽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정문에서 내전으로 진입하는 길은 침전 앞을 지난 다음 북으로 꺾어 정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태령전 뒤 후원에 해당하는 지역에 봄꽃이 피었다

     

    흥화문(興化門)은 광해군 8년(1616년)에 세워진 경희궁의 정문이다. 흥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 건물이다. 원래 경희궁에는 동문인 흥화문 외에 흥화문 왼쪽에 흥원문, 오른쪽에 개양문, 서쪽에 숭의문, 북쪽에 무덕문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박문사(현재의 장충단 자리)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제가 이전하여 경춘문(景春門)이라 불렀다. 광복 후 장충동 신라호텔의 영빈관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1988년 경희궁터로 다시 옮겨왔다. 흥화문은 원래 경희궁터에 동남쪽 금천교 밖, 지금의 구세군회관 자리에 동향하고 있던 경덕궁 정문이었는데, 처음과 달리 지금 위치에 남향하여 세워졌다.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원래있던 자리를 떠나 숭정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었다. 경희궁에 있는 유일한 원래 건물

     

    금천교
    흥화문 안쪽의 홍예교(무지개다리)로, 광해군 11년(1616년) 세워졌다. 일제 강점기에 묻혔다가 2001년 발굴하여 복원하였다.

     

    복원한 금천교... 뒷쪽 다리형태가 금천교다. 앞쪽 석양, 석마는 흥선대원군의 문중에서 선조들의 묘를 파묘하고 난 후에 남은 석물들을 서울시에 기증하여 서울시에서 역사박물관 뜰에 배치해 놓은 석물이다. 조상도 잘둬야 복받는 후손이 되지만, 후손도 잘둬야 조상대접 받는다는 증거들...

     

    숭정문
    숭정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숭정문... 뒤로 인왕산 정상이 숭정문 용마루에 폭 안겨있다.

    숭정문의 백호쪽 신록..

     

    숭정전(崇政殿)은 광해군 8년(1616년)에 세운 것으로, 경희궁의 정전이다. 숭정전 일곽은 남향한 경사지에 축대를 조성하여 그 위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숭정전은 행각으로 둘러졌으며, 뒤로는 자경전이 있다.  동ㆍ서 행각은 남에서 북으로 가면서 바닥과 지붕이 단을 이루며 높아지도록 조성되었다. 숭정전은 이중 월대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건되어 현재 동국대학교 안에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고, 현 위치의 건물은 1989년 12월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994년 10월 주변 행각과 함께 완공한 것이다.

     

     원래의 숭정전은 현재 동국대에서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다. 우측은 복원한 숭정전

     

    숭정전과 품계석

    경희궁 숭정전 품계석

     

    경희궁 숭정전 월대에 놓인 드므. 드므는 넓적하게 생긴 독이라는 순수 우리말이다. 궁궐에서 주요건물의 월대와 그 마당에 드므를 설치하고 안에 물을 담아 놓았는데  드므에 담긴 물에는 화마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가기를 바라는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자정전
    현재 《서궐도안》에 따라 복원되어 있다. 이 건물은 주로 편전으로 쓰였다고 한다.

     

    편전으로 쓰였던 자정전 측면...

    봄꽃이 지고있는 자정전 후원

     

    태령전
    현재 《서궐도안》에 따라 복원되어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영조의 어진을 모신 곳이었다. 2000년에 서울시에서 복원하였다.

     

    태령전

    태령전 담장에 핀 봄꽃

     

    경희궁 방공호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는 주요 궁궐들을 대부분 파괴하였는데, 특히 경희궁의 경우 몇몇 이전한 건물을 제외하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경희궁 자리에 일제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자녀들이 다닐 경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전쟁 막바지인 1943년에 왕과 왕비의 침전이 있던 자리에 콘크리트를 이용해 방공호를 만들었다. 비상시 지휘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고 추정된다.

     

    경희궁 방공호(한겨레신문에서 퍼옴)

     

    황학정
    원래 경희궁에 있었던 정자인데, 일제때 팔려나가 현재 사직공원에 옛 등과정 자리에 있다.

     

    원래 경희궁에 있던 황학정... 전면 우측 구조가 특이하다.

     

    경희궁터는 광북 후에 서울중ㆍ고등학교로 쓰이다가 1980년 6월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경희궁을 돌아나오다가 서울시립미술관을 들러 여성미술가들의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서울고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서울시립미술관

     

    현재 현대여성미술대전을 전시중이다.

     

    시립미술관 앞에 있는 단풍나무.. 어린 새싹인데 붉은 단풍색을 내뿜고 있다.

     

    시립미술관에서 바라본 흥화문...

     

     

    시립미술관을 나와 그 아래에 있는 역사박물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역사박물관 내부는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데 시간관계상 관람은 못하고 외부에 있는 석조물들만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 시간을 내서 가끔씩은 내 주위를 돌아보면 좋을듯 합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전시되어있는 구 광화문.. 콘크리트로 되어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전시된 옛날 전차

     

    서울역사박물관 앞뜰에 전시된 흥선대원군 문중묘를 파묘한 뒤의 비석들과 문인석...

     

    서울역사박물관 정문에 놓인 해돌이 해순이..

     

     

     

    서울역사박물관 뒷뜰에 전시된 고려시대 5층석탑

     

    경희궁 앞에서 자동으로 놓고 찍은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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