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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십청헌(十淸軒) 김세필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7. 8. 10:00
네비게이션으로 주소를 확인하여 묘지를 찾을 때 네비만 믿다가는 헤매기 십상이다. 김세필 묘도
네비로 확인하면 산꼭대기에 데려다 준다. 이는 묘지는 산00번지로 되어있어서 묘역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주소를 입력할 때는 사당이 있으면 사당 주소를 입력해야한다.
김세필(金世弼)
1473년(성종 4)∼1533년(중종 2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 또는 지비옹(知非翁).
아버지는 첨정 훈(薰)이며, 어머니는 진천송씨(鎭川宋氏)로 학(翯)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홍문관의 정자·박사를 거쳐 수찬이 되고, 이어서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서 홍문관응교로 기용된 뒤에 사가독서의 은전을 입었다. 뒤에 전한·형조참판·부제학을 지내고 외직으로 광주목사(廣州牧使)·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대사헌·이조참판을 지내고, 1519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해 겨울 기묘사화가 일어나서 조광조(趙光祖)를 사사(賜死)하자, 임금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규탄하다가 유춘역(留春驛)으로 장배(杖配)되었다.
1522년 풀려났으나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십청헌을 짓고 후진을 교육하였다.
그뒤 공로를 인정하여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충주의 팔봉서원(八峰書院)에 향사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로는 《십청헌집》 4권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김세필선생 묘
▼ 김세필선생 사당
▼ 김세필선생 묘역 전경... 묘역이 이렇게 휘어져 있으면 좋게 보지는 않는다..
또한 계단을 정면으로 내면 기운이 빠져나가게 되어 가능하면 옆으로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 김세필선생 문학비
▼ 김세필선생 신도비
▼ 김세필선생 묘역의 신도비들...
▼ 김세필선생 묘역 모습..
▼ 김세필 묘역 안내판
▼ 김세필선생 묘 .. 석물이 상당히 많다
▼ 김세필선생 묘 전경
▼ 김세필선생 묘비
▼ 김세필선생 신묘비
▼ 김세필선생 묘 후경
▼ 김세필선생 모친 묘
▼ 김세필선생 묘역 입수처
▼ 김세필선생 모친 묘에서 바라본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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