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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성남]영의정 이경석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7. 11. 10:00

    답사를 가다보면 길을 잘못들어서 오히려 묘를 쉽게 찾는 경우도 있다.

    이경석 묘는 원래 윤중터널로 들어서려했는데 길을 잘못찾아 구도로를 타고 산을 넘었는데

    오히려 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경석(李景奭)


    1595년(선조 28)∼1671년(현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상보(尙輔), 호는 백헌(白軒).

    종실 덕천군(德泉君)의 6대손이며, 동지중추부사 유간(惟侃)의 아들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3년(광해군 5) 진사가 되고 1617년 증광별시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상소에 가담하지 않아 삭적(削籍)되고 말았다.

    그뒤 1623년 인조반정이 있은 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를 시작으로 선비의 청직으로 일컫는 검열·봉교로 승진하였고 동시에 춘추관사관(春秋館史官)도 겸임하였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로 몽진을 하게 되자 승문원주서로 왕을 호종하여 조정의 신임을 두텁게 하였다. 이어 봉교·전적·예조좌랑·정언·교리 등을 두루 거친 뒤 1626년(인조 4)에는 호당(湖堂)에 선입(選入)되었다.

    또한, 같은해말에는 이조좌랑·이조정랑에 올라 인사행정의 실무를 맡게 되었다.

    이듬해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체찰사 장면(張晩)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강원도 군사모집과 군량미조달에 힘썼다.

    이때에 쓴 〈격강원도사부부로서 檄江原道士夫父老書〉는 특히 명문으로 칭송되었다. 정묘호란 후 다시 이조정랑 등을 거쳐 승지에 올라 인조를 측근에서 보필하였다.

    1629년 자청하여 양주목사로 나가 목민관으로서의 실적을 올렸다.

    그뒤 승지를 거쳐 1632년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대사간에 제수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대사헌·부제학에 연배되어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이듬해 인조가 항복하고 산성을 나온 뒤에는 도승지에 발탁되고, 예문관제학을 겸임, 〈삼전도비문 三田渡碑文〉을 찬진하였다. 이듬해 문관으로서는 최대의 영예인 홍문관·예문관 양관의 대제학이 되었고, 얼마 뒤 이조참판을 거쳐 이조판서에 발탁되어 조정인사를 주관하게 되었다.

    1641년에는 청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이사(貳師)가 되어 심양으로 가 현지에서 어려운 대청외교(對淸外交)를 풀어나갔다.

    그러나 이듬해 엄금하던 명나라 선박이 선천에 들어온 일이 청나라에 알려지자, 그 사건의 전말을 사문(查問)하라는 청제(淸帝)의 명을 받고 서북지역으로 돌아왔으나 조선의 관련사실을 두둔하느라 청제의 노여움을 사 영부조용(永不調用)의 조건으로 귀국, 3년 동안 벼슬에서 물러났다.

    1644년에 복직,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한 뒤 이듬해 마침내 영의정에 올라 국정을 총리하였다.

    그러나 1650년에 효종의 북벌계획이 이언표(李彦標) 등의 밀고로 청나라에 알려짐으로써 사문사건(查問事件)이 일어나게 되었다. 청나라의 사문사는 남별궁(南別宮)에서 영의정 이경석과 정승·판서 및 양사의 중신 등을 모두 세워놓고 북벌계획의 전말을 사문, 치죄하고자 하여 조정은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국왕을 비호하고 기타 관련자들까지 두둔하면서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국왕과 조정의 위급을 면하게 하였다. 이에 청나라 사신들로부터 ‘대국을 기만한 죄’로 몰려 극형에 처하게 되었으나 국왕이 구명을 간청하여 겨우 목숨만을 부지, 청제의 명에 의하여 백마산성(白馬山城)에 위리안치되고, 이어 다시 영부조용의 명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나 1년 남짓 광주(廣州)의 판교(板橋)와 석문(石門)에서 은거하였다.

    그러다가 1653년(효종 4)에 겨우 풀려나 영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며, 1659년에는 영돈령부사가 된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고, 1668년(현종 9) 인신(人臣)으로는 세기적 영예인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남원의 방산서원(方山書院)에 제향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전주이씨 덕천군파 계보
    정종대왕 10왕자
    덕천군
     제1자
    新宗君
    (신종군)
     장남
    莞城君
    (완성군)
     차남
    商山君
    (상산군)
     장남
    億孫
     惟貞
    (유정)
     
    (응)
     
    4남
    咸豊君
    (함풍군)
     외아들
    秀光
     3남
    惟侃
    (유간)
     1.李景稷(이경직) 이장영,
    이후영,
    이정영
     
    2.李景奭(이경석)


    *계보에서 색깔로 된 이름을 클릭하면 바로가기 됩니다.

     

    ▼ 이경석선생 묘 이정표

     

    ▼ 이경석선생 묘 안내판

     

    ▼ 이경석선생 묘역

     

    ▼ 이경석선생 신도비(구, 신)

     

    ▼ 이경석선생 신도비 연혁... 노론을 공격한 내용이 있어서 비문이 고의로 훼손되어 다시 세움

     

    ▼ 이경석선생 묘역 전경

    ▼ 이경석선생 묘

    ▼ 이경석선생 묘 장명등

    ▼ 이경석선생 묘

    ▼ 이경석선생 묘 구 상석

    ▼ 이경석선생 묘비

    ▼ 이경석선생 묘 청룡쪽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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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석선생 묘 후경..

     

     

    ▼ 이경석선생 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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