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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담양 지방을 돌아보고...
    여행등산/지난여행이야기 2011. 1. 7. 10:43
    내가 화순지방을 처음 찾아간 것은 벌써 20여년 전이었다.
    그때 5.18로 광주가 아주 어수선한 때였는데
    난 그때 한참 광주 상무대라는 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현대사의 한 질곡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결과가 되었다.

    군에서 유격이라면 지금도 제일 힘든 훈련 중에 하나이지만
    그때도 유격을 받기 위해 광주에서 새벽에 20키로 완전군장을 꾸려 출발하면
    밤새 무등산을 넘고 화순 적벽을 거쳐 동복에 이르는 산길을 걷다 보면 온
    몸이 녹초가 되어 어디가 어딘지 주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잠에 빠지고 만다.
    그때의 느낌 때문인지 그 이후로 남도를 거의 찾지 못했는데 지난 해 봄에
    남도답사 일번지라는 강진 해남을 찾은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가 된다.

    큰 맘 먹고 이번에 광주를 한번 들를 심산으로 화순온천에 여장을 풀었다.
    산을 구비구비 넘다 보니 온천이 나오는데 주위는 너무 조용하고 덩그마니 온천만 있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더구나 평일이라 사람조차 발길을 끊고 있어 분위기가 더욱 더 스산하다.
    온천과 콘도를 우리 몇 사람이 전세를 내어 지내는 양 마음껏 즐기고 피로를 풀었다.

    주중에 관광지를 찾게 되면 젊은이들의 패기어린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다.
    학교에서 MT를 온 모양인데 밤새 지칠 줄 모르고 이벤트를 진행하는 걸 보면
    내 자신이 그런 적이 있었나 하며 그 주위를 맴돌며 기웃거리기 일쑤다.
    그러다 그네들의 동무가 되어 같이 손잡고 모닥불 주위를 빙빙 돌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네들의 젊음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걸로 족 한다.
    밤이 늦도록 모닥불과 게임과 웃음과 폭죽으로 심심찮게 해주는 젊은 이들……
    예전에는 너무 시끄러워 창문을 닫고 제발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더 보고 싶어하는 쪽이 바로 내 쪽이 되었다.
    화순온천에서도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나의 회포를 풀어주며 밤새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화순온천에서 소쇄원은 지척에 놓여있다.
    비록 소쇄원은 담양에 위치해 있지만 거리상으로는 차로 20여분 거리이다.
    소쇄원은 많이 알려져 있어 주말에는 밀려드는 차량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붐비지만
    평일에는 예의 여기도 적막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양산보(1503~1557)가 속세에 뜻을 접고 마련한
    그의 별서 정원이었다 한다.
    최근엔 정원이란 말이 일제 식민지 시대 때 나온 말이라 하여 주로 원림(園林)이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소쇄원 입구는 대나무가 무성하여 대밭 사이로 스쳐지는 바람소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에 찾은 소쇄원은 아직 아침 안개가 걷히기 전이라 약간은 물기 머금은 모습으로
    은은한 그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과 퍼짐의 효과를 보는 듯……
    생각보다 작은 원림에서 돌 하나 나무 한 그루를 유심히 바라보노라니 마치 내가 시간을
    가로질러 16세기로 돌아간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그 옛날 양산보가 그의 스승인 정암 조광조가 개혁을 미쳐 이루지 못하고 통한의 가슴을 지닌 체
    유배지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느끼던 그 참담함을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미쳐 갖추지 못한 부족함과 허허로운 마음에서 기인한 건 아닐까….?


    소쇄원 제월당

    소쇄원은 조선시대 원림의 백미라고 말한다.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인공을 될 수 있는 대로 가미하지 않은 체 자연 본래 모습 그대로를
    살려낸 아름다운 곳이다.
    양산보가 원림의 이름을 소쇄원(瀟灑園)이라 하고 사랑채와 서재가 붙은 집을 ‘제월당(霽月堂)’,
    계곡 가까이 세운 누정을 ‘광풍각(光風閣)’이라고 한 것은,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주무숙의 인물됨을 “흉회쇄락 여광풍제월(胸懷灑落 如光風霽月)”, 뜻을 새기자면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맑은 날의 달빛과도 같네”라고 한 데에서 따온 것이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소쇄원을 관망할 때 흔히 제월당에서 바라봐야 전체를 볼 수 있다느니
    대봉대에서 바라봐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듣고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찾았지만
    막상 그곳에 이르니 너무도 작아 어디서 본들 크게 다를 게 없는데 제월당이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그런 말이 나온 듯 하다.

    광풍각과 제월당 담장

    소쇄원 입구를 들어서면 초가정자로 된 대봉대를 만나는데 이곳에 걸터 앉아 잠깐 쉬면서
    소쇄원 전체를 관망하는 것도 퍽이나 즐거운 일이다.
    담장을 따라 조금 오르면 계곡을 만나는데 담장이 계곡을 타고 넘은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제월당에 오르면 시원하게 조망되는 소쇄원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오른편으로는 대나무 숲이 둘러쳐져 있고 왼편으로는 산에서 유입되는 계곡을 볼 수 있다.
    제월당 아래 광풍각이 있고 그 옆에 작은 폭포수가 떨어져 산란했던 마음을 다잡아 주는 듯 하다.
    이맘때 소쇄원에는 매화 벚꽃 산수유 등이 피어 그 운치를 더해준다.
    소쇄원 풍경을 더 이상 세세하게 나타내는 것도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여기서 접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조금 더 담양 땅으로 발길을 옮기니 가사문학관이 나온다.
    최근에 개관을 한 듯 깨끗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그곳에는 조선시대의 가사문학을 빛낸 인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여행에서 늘상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여러 가지를 보려고 하면 시간에 쫓기는 일이 많아
    여유로운 여행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늘도 담양의 누정을 두루 둘러보고자 하는 욕심에 마음만 바빴지 시간이 따라주질 않는다.
    가사문학관에서 식영정을 향해 차를 옮기는데 아니….바로 옆에 식영정이 있다.
    차라리 주차장에 식영정 팻말이나 세워 놓았다면 그냥 걸어서 갔을 텐데…….


    식영정 현판

    식영정 간판을 보고 오르는데 바로 앞에 송강 시비가 있고 앞에 누각이 있어
    그게 식영정인줄 알았지만 그곳은 서하당 김성원의 거처가 있던 곳이고
    그 옆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는 부용정이라 한다.
    식영정은 옆 돌계단을 타고 올라 언덕 위에 정말 아름답게 누각이 앉아 있다.
    식영정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바로 앞에 광주댐 물이 철렁거리고 앞쪽에
    성산을 마주대하고 있으며 노송들이 멋들어지게 자리잡고 있다.
    뒤쪽에 가면 정철의 성산별곡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유홍준 교수는 이를 두고
    무지막지한 현대인들의 작태라고 꼬집었었다.

    부용정과 송강 시비-왼편계단이 식영정 오르는 길

    식영정 툇마루에 걸터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일행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더 이상 여기서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이미 지친 몸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곳의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마냥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광주 방문을 계획했었지만 아무래도 무리인듯하여 면앙정으로 방향을 돌리고 말았다.


    면앙정 전경

    면앙정은 송순의 면앙정가라는 글로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가파른 계단을 세 번 돌아 오르니 그곳에 오래된 멋들어진 누각이 나타난다.
    그 곁에 500여 년을 넘게 지탱해온 거대한 나무 세 그루가 보호수로 보호 받고 있어
    이 누각의 연륜을 말해주는 듯 하다.
    다른 누각과는 달리 이곳은 정면이 절벽 쪽으로 향해 있지 않고 절벽을 등지고 앉아 있다.

    면앙정가비

    면앙정 앞에는 송순의 면앙정가비가 세워져 있고 개나리와 진달래를 멋들어지게 심어
    지금 한창 그 멋을 뽐내고 있다.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봄 바람을 맞으며 누각을 돌아 뒤편에 다가가니
    담양 땅이 넓게 펼쳐져 있고 들판 곳곳에 봄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남도 땅을 돌면서 수시로 느끼는 것은 웬만한 곳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누정이 설치된 것을 볼 수가 있다.
    마을 안이나 야트막한 야산… 들판 가운데 모정으로 등장하는 남도의 누정들……
    더운 남도의 여름을 보내야 하는 까닭에 이렇듯 누정이 많이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휴식 뿐만 아니라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정을 나누는 곳이리라…
    내 눈에는 이 같은 누정이 음풍농월의 여유있는 남도 사람들의 모습같이 보인다.

    출처 : 불혹전후
    글쓴이 : 소올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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