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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허난설헌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0. 10. 10:00
허난설헌 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들어올 때마다 빤히 보이는 묘를 간다간다하면서도 찾지못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찾았다. 허난설헌의 두 아이가 함께 뭍혀있는 그곳은 왠지 찾기가 쉽지않았다.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이곳으로 천장된 묘이다보니 특별한 것은 없어도 허난설헌의 자취를 더듬어보는데는
무리가 없을것이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년(명종 18)∼1589년(선조 22).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강릉 출생. 엽(曄)의 딸이고, 봉(篈)의 동생이며 균(筠)의 누이이다.
가문은 현상(賢相) 공(珙)의 혈통을 이은 명문으로 누대의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학자와 인물을 배출하였다.
아버지가 첫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에게서 성(筬)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 강릉김씨(江陵金氏) 광철(光轍)의 딸을 재취하여 봉·초희·균 3남매를 두었다.
이러한 천재적 가문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때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허씨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으며, 15세 무렵 안동김씨(安東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하였으나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남편은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나,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 거기에다가 고부간에 불화하여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으며,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 설상가상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균마저 귀양가는 등 비극의 연속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먹〔墨〕으로 고뇌를 달래며, 생의 울부짖음에 항거하다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잇달은 가정의 참화로, 그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일부를 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분다이(文台屋次郞)가 간행, 애송되었다.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고, 국한문가사 〈규원가 閨怨歌〉와 〈봉선화가 鳳仙花歌〉가 있으나, 〈규원가〉는 허균의 첩 무옥(巫玉)이, 〈봉선화가〉는 정일당김씨(貞一堂金氏)가 지었다고도 한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경기도기념물 제90호 허난설헌묘(許蘭雪軒墓)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산29-5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473-9(재실) 안동김씨
허난설헌(1563∼1589)의 묘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의 묘이다.『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로 용모가 아름답고 성품이 뛰어났으며, 8살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서 신동으로 일컬어졌다.
<광주시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인용>
15세에 김성립과 결혼하였는데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하였으며, 친정집에 옥사(獄事)가 있는 등 연속되는 불운에서 오는 고뇌를 시를 쓰며 달래다가 선조 22년(1589) 27세에 생을 마쳤다. 그녀는 섬세한 필치로 여성 특유의 감상을 노래하여 애상적인 독특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작품의 일부는 허균에 의해 중국에 전해져『난설헌집』으로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다. 허난설헌의 묘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500m 우측에 있었으나 중부고속도로 개설로 1985년 현 위치로 이전되었다. 문인석을 제외한 묘비·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상석·망주석·둘레석은 근래에 만들어졌다. 묘비의 비문은 국어학자 이숭녕이 지은 것이며, 묘의 우측에는 1985년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에서 세운 시비(詩碑)가 서있다. 시비에는 허난설헌의 곡자시(哭子詩)가 새겨져 있으며 시의 대상인 두 자녀의 무덤이 난설헌묘 좌측 전면에 나란히 있다.
이곳은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의 여류(女流) 시인(詩人) 허난설헌(1563∼1589)의 묘이다. 자(字)는 경번(景樊), 호(號)는 난설헌(蘭雪軒), 본관(本貫)은 양천(陽川)이다. 안동(安東) 김씨(金氏) 김성립(金誠立)의 아내로 천품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용모로 타고나 8세 때에는 광한전(廣寒殿) 백옥루(白玉樓) 상량문(上樑文)을 지었고, 한시(漢詩)에 능하여 『난설헌집(蘭雪軒集)』을 남겼다. 선조(宣祖) 22년(1589) 3월 19일 27세로 요절(夭折)하였다.★ 허난설헌 시가 안동김씨 가계 김홍도
(전랑)김첨
(교리)김성립
(허난설헌 부군)김진
(양자)▼ 허난설헌 묘역 후경
▼ 허난설헌 묘 안내판...
▼ 허난설헌 묘 전경...
▼ 허난설헌 묘비...
▼ 허난설헌 묘 석물... 문인석은 원래 있던 것이다.▼ 허난설헌 묘에서 바라본 중부고속도로.. 원래 묘는 우측 500미터 지점이었다.
▼ 허난설헌 시비...
▼ 허난설헌 시비... ▼ 허난설헌 두 자녀 묘... ▼ 허난설헌의 슬픔이 묻어나는 시비와 함께 이곳에 작은 묘비가 있다.▼ 허난설헌 묘역 전경...
▼ 허난설헌 부군 김성립 묘비...
▼ 허난설헌 묘가 있는 안동김씨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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