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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하남]유홍선생 묘 및 신도비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0. 12. 10:00
유홍선생 묘 및 신도비
의안대군 묘를 보고 귀경하는 차에 인근 하남에 유홍선생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향을 틀어 찾아갔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각이라 어둠이 내려 그만두려고 했지만 이놈의 열정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묘
위치도 모르고 신도비 위치도 모르면서 무조건 주소로 찾아갔다.
가는 곳마다 왜그렇게 개들이 많은지... 개만보면 나는 질겁을 하고 도망쳐 나온다. 같이간 후배가 그래도
잘 구슬려서 답사는 했다. 아무도 없어서 누구한테 물을 수도 없어서 유홍 선생 묘소는 일일히 하나하나
산을 완전 뒤지면서 찾아 올라갔더니 선생 묘소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까맣게 내린 뒤였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사진 몇장 찍고 내려오는데 혼자갔다면 엄청 무서웠을 것이다.
산중에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비 내린 뒤라 더욱 음산하고..ㅎ 올라갈때는 묘소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올라 갔는데 내려올때는 후회 막급..ㅎ 밤늦게는 가지말아야지..ㅎㅎ
유홍(兪泓)
1524년(중종 19)∼1594년(선조 2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지숙(止叔), 호는 송당(松塘). 판서 여림(汝霖)의 손자이고, 생원 관(綰)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된 충세(忠世)의 딸이다.
1549년(명종 4)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 정자·전적·지제교·지평·장령·집의 등 문관요직을 역임하였다.
1557년 강원도암행어사로 나가 민심을 수습하고, 1563년 권신 이량(李樑)의 횡포를 탄핵하였다.
이듬해에 시관(試官)으로 이이(李珥)를 뽑았으며, 1565년 문정왕후(文定王后) 상사 때에는 산릉도감(山陵都監)으로 치산의 일을 맡았으며, 춘천부사가 되어서는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1573년(선조 6) 함경도병마절도사로 회령부사를 겸하였고, 그뒤 개성부유수를 거쳐 충청·전라·경상·함경·평안도의 관찰사와 한성판윤 등을 역임하면서 치적을 쌓았다.
1587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동안 조선왕조의 시조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으며, 1589년 좌찬성으로서 판의금부사를 겸하여 정여립(鄭汝立)의 역옥(逆獄)을 다스렸다. 이러한 공으로 1590년 종계변무(宗系辨誣)1등, 토역(討逆) 2등에 책훈(策勳)되어, 평난공신(平難功臣)호를 하사받고 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기성부원군(杞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이조판서·우의정에 승진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였고, 평양에서는 세자(뒤의 광해군)와 함께 종묘사직의 신위를모시고 동북방면으로 나아가 도체찰사를 겸임하고, 이천(伊川)에서 격문을 여러 도로 보내어 각 도의 의병들을 격려, 지휘하여 방수태세(防守態勢)를 갖추었다. 이듬해에 왜적이 서울에서 물러나자, 먼저 서울에 들어와서 불탄 도성을 정리하고 전재민을 구호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594년 좌의정으로서 해주에 있는 왕비를 호종하다가 객사하였다.
성품이 중후관대하고, 의리를 위하여 기개를 굽히지 않았으며, 시문에 뛰어났고 장서가 많았다. 유저로는 《송당집》 4권이 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하남시 향토유적 제8호 유홍신도비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 261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 264 (재실) 기계유씨 유홍(兪泓, 1524 ~ 1594)신도비
유홍(兪泓, 1524 ~ 1594)은 증 영의정 유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로 증 사복시정 남충세(南忠世)의 딸이다. 1549년(명종4)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3년(명종8)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삼사(三司)를 거쳐 충청/전라/경상/함경/평안 등 5도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였다. 1589년(선조22)에는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광국일등공신(光國一等功臣)으로 기성부원군(杞城府院君)에 책봉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시종하고, 도체찰사로 관군과 의병을 지휘하여 왜군과 싸웠다. 왜군이 후퇴하자 먼저 서울로 올라와 관아와 도성을 정리한 공으로 1594년(선조27) 좌의정을 제수 받았다. 슬하(膝下)에는 대술(代述), 대건(大建), 대진(大進), 대일(大逸) 등 4남과 2녀를 두었다. 시문에 능했고 장서가 많기로 유명하다. 호는 송당(松塘), 본관은 기계(杞溪), 시호는 충목(忠穆)이며,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저서로는 송당집(松塘集)이 있다.
<하남시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인용>
1813년(순조13)에 세워진 신도비는 이조판서 장유(張維)가 짓고, 자손인 유한지(兪漢芝)가 썼는데, 예서체는 서예가들에게 높이 평가되어 찬사를 받고 있다. 신도비는 장방형의 대석위에 신석(身石)을 세우고, 비두에 개석(蓋石)을 얹고 있으며, 높이는 167㎝, 폭 60㎝, 두께 54㎝이다.▼ 유홍선생 묘.. 해가 거의 진 뒤에 찍은 거다..▼ 유홍선생 신도비 안내판
▼ 유홍선생 신도비..
▼ 유홍선생 신도비.. 신도비 글씨가 예서체로 되어있다.
▼ 유홍선생 신도비는 글씨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 유홍선생 묘.. 앞쪽에 돌무더기가 보인다..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 유홍선생 묘 전경...
▼ 유홍선생 묘비..
▼ 유홍선생 묘 석물...
▼ 유홍선생 묘 앞쪽에 있는 유찬증선생 묘 후경
▼ 유홍선생 묘 입수처 있는 바위...
▼ 유홍선생 묘 후경... 주위가 깜깜했는데.. 카메라 조작술이 좋아서 다 보인다..ㅎㅎ
▼ 유홍선생 묘 조안산...
▼ 유홍선생 묘를 찾기위해 무작정 올라가서 본 묘.. 유홍선생의 아들 유대건 선생 묘
▼ 유대건 선생 묘
▼ 유대건선생 묘비
▼ 유대건선생 묘 석물..
▼ 유홍선생 묘를 찾다가 올라가본 묘... 유무증선생 묘..
1580년(선조 13)∼1659년(효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성(汝省).
아버지는 청풍군수 대술(大述)이며, 어머니는 별제(別提) 홍반(洪磻)의 딸이다.
1634년(인조 12) 충의위(忠義衛)에 속하여 있다가 동반(東班)으로 서용되었으며, 이듬해 음보(蔭補)로후릉참봉(厚陵參奉)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위하였고,
이듬해 선릉참봉(宣陵參奉)이 되었다.
그뒤 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안협현감 등을 역임하고, 1646년에는 공신회맹(功臣會盟)에 참가하여통정대부에 올랐다.1658년(효종 9)에 기안군(杞安君)에 봉하여졌다.
▼ 기안군 유무증선생 묘갈
▼ 기안군 유무증선생 묘갈 뒷면..
▼ 기안군 유무증선생 묘 석물...
▼ 기안군 유무증선생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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