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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남양주]조말생선생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0. 27. 10:00

    조말생 선생 묘

    남양주 석실마을과 조말생 묘 및 신도비는 이미 몇차레 다녀오기도 했고 답사기도 남긴것 같다. 그런데 

    그곳은 구리에서 덕소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오며가며 자주 들르게 된다. 이번에는 수석동의 조씨들 묘를 

    찾아가는 길에 다시한번 다녀오게 되었다. 그런데 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다시한번 글을 올린다. 

    조말생(趙末生)
    1370년(공민왕 19)∼1447년(세종 29).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근초(謹初)·평중(平仲), 호는 사곡(社谷)·화산(華山). 서운관정(書雲觀正) 의(誼)의 아들이다. 조용(趙庸)의 문인이다.
    1401년(태종 1) 생원으로서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요물고부사(料物庫副使)에 임용되었고, 감찰·정언·헌납을 거쳐 이조정랑에 승진되었다.
    140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2등으로 급제하여 전농시부정(典農寺副正)이 되었으며, 다시 장령·직제학을 역임하였다.
    그뒤 1411년에는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가 되었다가 곧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에 잠시 배명되었으며, 승진하여 지신사(知申事) 등을 역임하고, 1418년에는 이조참판에 이르러 가정대부(嘉靖大夫)가 되었다. 같은해 8월에 형조판서·병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426년(세종 8)에 장죄(贓罪)로 연좌되어 외직으로 좌천되었다.
    1432년에 동지중추원사가 되고 다음해에 함길도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그만두었다.
    1434년 9월에 지중추원사가 되고, 1435년에 판중추원사가 되었으며, 대제학을 지냈다. 그리고 1438년에 다시 판중추원사가 되었으며 다음해에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1442년에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으며, 1446년에 영중추원사가 되었으나 다음해에 죽었다.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남양주향토유적 제8호
       조말생신도비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산2-1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산2-1
       양주조씨


     

     

     

     

     

     

     

     

    조선초기 문신인 조말생(趙末生: 1370~1447)의 묘이다. 호는 화산(華山), 사곡(社谷), 본관은 양주, 서운관정(書雲觀正) 의(誼)의 아들이다. 시호는 문강이다.   1401년(태종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급제하여 감찰 등을 거쳐 이조정랑으로 승진하였고 1407년 문과 중시(重試)에 2등으로 급제하여 장령을 지낸 후 예문관직제학, 승정원동부대언, 지신사 등을 거쳤다.   1418년 이조참판을 제수 받고 가정대부(嘉靖大夫)가 되었으며 형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가 되어 군무를 맡기도 하였다. 태종의 총애를 받아 항상 측근에서 보좌했고 1433년(세종15) 함길도관찰사 겸 함흥부운으로 여진족의 누루하치를 막아 싸웠다.   1435년 판중추부사가 되었고 그 후 예문관 대제학을 겸임하고, 경상, 전라, 충청3도의 도순문사로서 축성을 감독했다.1439년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447년 세상을 떠났다. 대학자로 특히 글씨가 매우 뛰어났다.   선생의 묘소는 본래 금곡동 묘적산 끝자락에 있었는데 고종의 홍릉 천장으로 인해 수석동으로 이장하였다. 한강을 바라보는 묘소에는 원형의 둘레석이 봉분을 보호하고 있으며 묘비와 석양의 호석이 있고 장명동, 망주석, 문인석이 배치되어 잇다.   신도비는 묘 아래에 있는데 옥개석은 한식 기와지붕모양으로 골이 져있으며 끝 면에 구름문양을 파 새겨 넣은 형상이 유일하다. 특히 신도비는 비신을 등에 얹은 거북이가 고개를 쑥 내밀어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 특이한데 왕릉에 밀려나기 전, 본래의 자리인 홍유릉을 쳐다보고 있는 듯하여 이장을 예견하고 만든 것 같아 기이하다. (둘레석은 없다-수정해야함)

    <남양주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 조말생선생 묘역 후경은 한강과 예봉산이 어우러져 항상 멋있는데 이번에는 가을 빛이 담겨있어

     유난히 더 멋있어 보인다...

    ▼ 수석리에서 찾아오면 표지판이 보인다.

    ▼ 조말생선생 묘 전경

     

     

    ▼ 조말생선생 묘역의 석물 배치가 특이하다

     

     

     

     

     

     

     

     

    ▼ 조말생선생 묘 아래에 있는 석실마을

    ▼ 조말생선생 묘를 2년전에 촬영한 사진.. 지금과 비교해보면 좋을듯하여 올린다.

    ▼ 조말생선생 묘역 아래에 있는 후손들 묘는 평장으로 바뀌었다.

     

    ▼ 조말생선생 후손들의 묘 석물을 한 곳에 진열해 놓았다.

    ▼ 조말생선생 묘역을 새롭게 치장하고 세운 비...

     

    ▼ 참고로 인근에 있는 조말생선생 신도비를 2년전 사진으로 올린다.

     

     

     

     

     

    ▼ 조말생선생 묘를 가다보면 인근에서 만나는 수석리 토성...

    ▼ 수석리토성은 별다른 것이 없다.흔적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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