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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양주]남을진선생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6. 4. 10:00

    남을진선생 묘

     

    구정 남재 묘역 위에 부친 남을번 묘가 있어 형제관계를 파악해 남을진 묘가 양주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의정부에 결혼식이 있어 찾아가는 길에 미리 작성해둔 리스트를 들고 조금 일찍 길을 나서 답사를 하였다.

    감악산 남선굴에 남을진선생 전설이 전해져서 어떤 분인가 궁금했다. 묘역은 후손들이 잘 지키고 있어서인지 정돈이 잘

    되어있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묘역의 사격이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묘역이 많이 변질되고

    덜렁 묘만 남는 경우가 많은데 오랜시간 묘역이 유지된다는 것은 그 자리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남을진(南乙珍)
    생졸년 미상. 고려의 충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풍저창부사(豊儲倉副使)를 지낸 남익저(南益㫝)이며, 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를 지낸 남천로(南天路)이다.
    1368년(공민왕 17)에 현량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와 교유가 있었으며, 고려말에 정치가 문란하여지자 양주(楊州)의 사천현(沙川縣) 봉황산(鳳凰山)에 은거하였다.
    조선이 개국된 뒤 태조가 사천백(沙川伯)에 봉하고 회유하였으나 신하된 자로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적성(積城)의 감악산(紺嶽山)석굴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죽은 뒤 그 석굴을 남선굴(南仙窟)이라 하였으며 영조 때 사천서원에 제향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양주시 지정문화재 2호
       남을진선생 묘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 24번지
      의령남씨

     

     

     

     

     

     

     

     

     

     

    남을진

    남을진 선생은 고려 말 충신으로 본관은 의령이다. 공양왕 때 참지문하부사를 지냈다. 성품이 강직,간결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정몽주,이색,길재 등과 교유했다. 조선이 개국되었을 때 벼슬을 버리고 사천에 은거했는데, 충절에 감복한 태조가 사천백에 봉했다. 선생은 태조의 부름을 거절,감악산 깊숙이 들어가 사람을 일절 만나지 않았으며, 사후 그가 거처한 곳을 남선굴이라 불렀다. 영조 때 사천서원에 제향되었다.

    묘 앞에는 상석,향로석,묘비2기,장명등,문인석 2개 등 석물이 있다. 봉분의 높이는 2m둘레는 19m,직경은 7m이다. 묘소 아래 위치한 신도비는 팔작지붕의 옥개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다. 비의 앞면 상단에 전자로 ‘고려참지문하부사남공신도비’라 횡서했고 비제를 ‘고려정헌대사부참지문하부사겸판전의감사의열남공신도비명병서’라 했다. 뒷면에 ‘숭정기원후사신축칠월일립’이란 음각으로 보아, 신도비는 헌종 7년(1841)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문은 조인영이 짓고, 송상래가 글씨와 전을 썼다. 재료는 화강암으로, 비신은 높이 150cm, 폭71cm, 두께 16cm의 규모이다. 한편 묘소 초임 우측에는 1986년 3월에 새로 건립한 혼용의 또 하나의 신도비가 있는데,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귀부를 갖추었다.

    <양주시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 남을진 묘 및 신도비 안내문.. 낡아서 새로 해야될 상황이다. 

    ▼ 남을진 묘역에 위치한 신 신도비...

    ▼ 남을진 구 신도비

    ▼ 남을진 묘역 구신도비와 신신도비.. 넓은 곳을 놔두고 굳이 이곳에 신도비를 세운 이유는 뭘까?

    ▼ 남을진 묘 전경

    ▼ 남을진 묘표

    ▼ 남을진 묘비...

    ▼ 남을진 묘 무인석

     

    ▼ 남을진 묘 입수도두

    ▼ 남을진 묘 입수도두에서 바라본 사격..

     

    ▼ 남을진 묘 후경...

    청룡 본신 안산이 잘 감아주고 백호 끝자락으로 파구가 관쇄되어 잘 감싸주고 있다.

    앞쪽 안산너머 집을 지으면서 절개한 곳이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

    ▼ 남을진 묘 원경... 앞쪽으로 길을 낸듯 경사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火의 형태로 火克金으로 매우

    좋지않게 본다. 애금전화(埃金剪火)라 하여 아래를 가위로 자르듯 잘라야 좋다.

    ▼ 남을진 사당

    ▼ 사당에서 바라본 남을진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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