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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울 정동길 답사(1)여행등산/지난여행이야기 2011. 1. 7. 11:54
서울 정동의 뒤안길 답사...(1)
흐릿한 시청앞
사납게 내렸던 빗줄기도 밤새 잠잠해져서 아침으로는 햇살이 오히려
사납게 내리쬐었다. 서울답사 2차에 참여하기 위해 시청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무겁다. 전날 지인들과 대포잔을 사정없이 들었더니
무거운 몸이 더욱 무거워진 느낌이다. 시청앞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일찍 오셔서 인사로 반겨준다. 1차 답사와 몇번의 안면으로 그새
가까워진듯 서로 정감있게 악수를 교환한다.
덕수궁 대한문
조금 일찍 도착해서 덕수궁을 한바퀴 돌아보겠다는 생각은 게으른
탓에 없었던 일로 하고 근자에 공사가 끝난 대한문을 보기위해
자리를 옮겨 바라보니 예의 그 모습 그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한문을 바라보니 민족의 수난사를 보는듯하다.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씩 조금씩 뒤로 물러나다보니 현재의 위치까지 밀려나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 위치마져도 고수하지 못하고 또 어떤
이유로 밀려나지나 않으려는지......
성공회 성당
오늘의 답사는 건축물이 주류를 이루고 시내에 있는 근현대식
건물들이라 사실 답사기 적기가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 그래서
건물에 대한 일반적인 것은 생략하고 건물은 사진으로 대신하고
느낌을 간단히 가미하여 적어볼까 한다.
첫번째 답사지는 성공회성당이다. 화강암과 붉은 벽돌의 조화가아름다운 로마네스크풍의 건물이다. 원래 계획은 큰 십자가 형태로
지으려 했으나 일제강점기에 짓다보니 양쪽날개와 아랫부분을
떼어내고 지었는데 1993년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원래의 설계도면이
발견되어 1996년도에 완공하였다 한다.
성당 뒷쪽 부속건물 앞에 유월항쟁 표석이 있다
이곳은 1987년 유월민주항쟁의 진원지로서 민주화의 횃불이 타오르던
곳이다. 당시 호헌정국과 이한열군 사망사건 등이 일어나 걷잡을 수
없는 항쟁이 일어나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하는 이른바 6.29선언을
이끌어낸 항쟁이다. 새삼 넥타이부대들의 함성이 들리는듯 하다.
구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는 과거 부민관폭파의거의 현장이었던 구 국회의사당 건물이
있다. 국회를 1975년 여의도로 옮기면서 현재 이곳은 서울시의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국회를 여의도로 옮긴 것에 대해 풍수학자들 사이에
잘못 옮긴거라는 얘기가 많이 나돈다. 이유인 즉 국회는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동쪽(木)으로 옮겨야 하는데 재물을 관장하는 서쪽(金)으로
잘못 옮겼다는 것이고 여의도에서도 배산임수를 지키지 못하고 물을
등지고 있어서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국회가 정책을 펴지
못하고 맨날 재물에 관계되는 비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견 일리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행정수도 건설에서는 계획단계에서부터
풍수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한양 도읍지 이상의
완벽한 도시가 되길 빌어본다.
아이들의 낙서
구 경기여고에 있는 경운궁 선원전 터를 가는데 길가 담벼락에 아이들
낙서가 눈길을 끈다. 시멘트벽에 낙서를 했는데 이끼가 끼면서 더욱
선명하게 글씨가 보인다. 이것도 잘 간직하면 훗날 문화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ㅎㅎㅎ
담장에는 능소화가 곱게 피었는데 이곳이 궁궐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왕을 기다리다 애처롭게 쓰러진 후궁의 한서린 전설을 간직한
꽃답게 유난히 빠알간 색을 진하게 내보인다.
능소화...유난히 빨간 꽃잎이 전설을 생각나게 한다.
구세군중앙회관을 답사하려는데 영화를 찍는다고 빨리 지나가란다.
자기네들이 전세를 낸 것도 아닐진데 오히려 큰 소리다. 한마디 하려다가
스크린쿼터문제도 있고해서 우리 영화산업 도와주는 셈 치고 그냥
지나쳐 왔다...ㅎㅎㅎ
미대사관저 근처에 오니 온통 전경이 깔려있다. 사진도 못찍게 하는
걸로 봐서 경계망이 삼엄하다. 정동 답사에서 줄기차게 만나는 전경들......
이 시대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력과 부딪혀봐야 득 될게 없다고 우리 부모님들께서 누누히 강조하셨고 나 또한 자식들에게 강조하고 있으니 효자 노릇한 셈 치고
자식에게는 모범을 보이는 셈 치고 다툼없이 답사를 하고 왔다.ㅎㅎㅎ
정동교회
정동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건물인데 벌써 100년이
넘은 건물이다. 건물을 보고 떠나려는데 교회 안내자께서 교회당 안을
구경하고 가라하셔서 생각지도 않은 횡재를 했다.ㅎㅎㅎ
정동교회 내부 전면..길죽한 것이 파이프오르간
교회당 안에는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있었으나 6.25때 파손
되었던 것을 1993년에 원래의 형태대로 재설치하였고 뒷편에는
최병헌 목사와 아펜젤러 목사에게 바치는 헌시가 당시의 형태대로
벽에 부착되어 있다.
정동교회 내부 후면...시계 밑에 붙어 있는 것이 최병헌 목사 헌시
신망애라고 새겨진 오래된 연단 등 교회당 안 곳곳에 있는 유물들이
100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사회관 5층에는 100년전 유물들이 외국에서 들어와 전시를 하고
있다는데 시간에 쫓겨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구 대법원 청사...현재 시립미술관으로 사용
정동교회를 보느라 지금 보수중인 배재학당은 보지를 못하고
곧바로 구 대법원 청사로 향했다.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입장료가 비싸 사람이 없을거란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관람객이 의외로 많은것 같았다.
이곳은 퇴계 이황 선생의 집터자리로도 유명한데 표지석이 정원
한가운데에 놓여있어 도리 없이 잔디를 밟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미술관 마당 앞쪽에 수백년은 됐음직한 향나무가 서있는데 내가
보기엔 그 모습이 심사가 뒤틀린 사람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해주는
듯 하다.
시립미술관 앞 정원에 있는 향나무
새삼 느낀거지만 정동 거리에는 문화재가 즐비하다. 조금 고색(古色)이
보인다하면 바로 문화재다. 이 거리는 덕수궁 돌담길로도 유명한
곳이어서 서울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한두번은 걸어봤음직한 거리다.
이곳이 태조의 계비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이 있었던 곳이었다는
사실은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는 일이지만 태종(이방원)의 행패에
버금가는 정책으로 인해 정릉이 수난을 겪었고 아마도 그때부터 이곳
정동의 운명이 약간은 뒤틀리고 사람들에게 다소 불쾌감을 안겨주고
있지 않나하는 역사적 풍수적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거리에 포진해
있는 전경들의 눈빛을 의식하며 답사를 하자니 괜시리 짜증이 나려한다.
그래도 뱉는 말은 사람 탓하지 못하고 날씨 탓으로 돌린다..
왜이리 후텁지근하다냐...? ㅎㅎㅎ
출처 : 불혹전후글쓴이 : 소올산 원글보기메모 :'여행등산 > 지난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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