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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태양 열기와 답사 열기와의 전쟁...서울부암동
    여행등산/지난여행이야기 2011. 1. 7. 11:54
     
    태양 열기 속에서...부암동 답사기
    답사길의 북한산
    
    6월 하순의 날씨는 장마가 시작되는 철이라 내일 날씨를 예측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그러다보니 야외활동에 대해서는 선뜻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 한 달전부터 서울문화유산답사 1차 행사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력에 똥글맹이를 쳐놓았지만 날씨가 걱정되어 확답을 못하다가 
    당일에서야 참석을 결심했다.
    창의문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자하문 언덕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바로 옆에 최규식경무관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1.21 청와대습격사태 당시 종로경찰서장을 지냈는데 
    공비토벌에 큰공을 세우고 전사해서 이곳에 동상을 세운거다. 
    그런데 난 그 옆에 작은 비석이 눈에 띈다. 당시에 전사한 순경을 위해 
    동료들이 세워준 작은 비석이다. 젊은 청춘을 이곳에서 몸 바쳐 나라
    위해 희생했으니 고귀하지 않을 수 없는데 최서장님의 동상에 비해 
    너무 초라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창의문
    
    창의문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벌써 많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군부대가 바로 옆에 있고 그 뒤로 때이른 노란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다름아닌 아카시아 잎이 말라 누렇게 변한 것이다. 지난 
    봄에는 남녘의 대나무가 모조리 말라 죽더니 이제는 그렇게도 강하디 
    강한 아카시아가 말라 죽다니... 뭔지모를 불안감이 나를 휩싸고 
    스쳐진다.
    창의문에 새겨진 주작과 홍예문 안쪽 주작상
    
    
     창의문을 옆으로 올라 내부를 둘러보고 다시 내려와 주위를 돌아
    본다. 홍예문 윗쪽에 주작이 새겨져 있고 홍예문 내부 천장에도 
    주작이 그려져 있는데 궁금증이 많이 일었다. 주작은 화(火) 즉 남쪽을 
    상징하는데 창의문은 도성의 북서쪽에 있는데도 주작을 그린 것이다. 
    가이드를 맡은님의 설명에 의하면 인왕산과 북안산이 지네 형상
    이라 지네와 상극인 닭을 이곳 어디에 새겨 놓았고 그 차원에서 주작을 
    그리지 않았나 한다는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 수긍은 갔으나 좀 더 
    명확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인조반정시에 이곳을 통해 군대가 들어오고 반정이 성공을 거둬 이곳에 
    공신명단을 현판으로 걸어 놓았다. 성공한 쿠데타는 법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통용되었던 모양이다. 
    나리꽃
    
    무계정사지로 가는데 햇살은 뜨거움의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가는 길목에 어느 보기 좋은 집 담 너머로 잘 익은 살구와 앵두가 일행
    들의 눈 맛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한쪽에는 나리꽃이 벌써 피어 노란 
    자태를 뽐내고 있어 사진기에 담아 왔다.
    무계정사지에 있는 무계동 각자바위
    
    무계정사지는 안평대군의 별서유적인데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등장하는
    무릉도원과 같은 곳이라 하여 이곳에 정자를 짓고 무계정사라 하였다.
    그의 필체로 쓰인 무계동이라는 각자바위는 개인집 안에 놓여있고 
    안쪽에 보기 좋은 기와집이 있어 문화재인줄 알았더니 주인인듯한 분이 
    나오시더니 개인집이니 사진을 찍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사생활을 침해받으니 귀찮기도 하겠지만 답사객들에게 봉사활동 
    하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실텐데... 
    무계정사지 앞은 공터로 되어있는데 이곳이 현진건의 고택이 있던 곳
    이란다. 얼마전에 주인이 불도저로 무지막지하게 밀어버린 그곳이다. 
    문화유산 보존과 현실적인 개인 재산권행사와의 간격을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을지... 답사객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아닌가 
    싶다.
    윤응렬가 입구..조금은 현대판
    
    조금 더 올라가니 청계동천이라는 각자바위가 나온다. 동천(洞天)
    이란 산과 계곡의 경치가 좋은 곳을 말하는데 이곳이 예부터 풍광 
    좋은 계곡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청계동천에서 조금 더 가면 
    윤응렬가가 나오는데 그 입구가 조금은 현대적이고 인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안쪽의 가옥과 그 앞의 훤히 트인 언덕과의 조화는 
    참 보기 좋아 보였다. 이곳이 박일송문학기념관이라 하는데 건물 
    안쪽을 들어가보질 못해 아쉽다. 
    석파정...문틈새로 겨우 보기만 했다
    
    백사실로 가는 길목에 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이 있으나 현재 소송이 
    진행중인 관계로 주말에는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먼 발치에서 
    별장의 소슬대문인지 절간의 일주문처럼 생긴 대문만 사진기에 담았다. 
    평일에는 개방을 한다하니 가을쯤에 한 번 별도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백석동천
    
    백사실로 오르는 길은 장난이 아니었다. 어찌나 높던지 내가 답사회를 
    온게 아니고 산악회를 따라 온 것으로 착각할 ㅅ동눼?.ㅎㅎㅎ 
    땀을 좀 흘리고 나니 북한산 자락에서 불어온 산바람이 몸을 시원하게 
    해준다. 숲속으로 조금 들어가니 백석동천이란 각자바위가 나타났다. 
    이곳이 경치 좋은 곳임을 말해주고 있다.
    백사실 유적지
    
    조금 내려가니 숲이 우거지고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백사실 
    유적이 있었다. 이곳은 백사 이항복의 별서정원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다. 연못에는 육각정 초석만 있고 물도 없어서 연못
    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곳이다. 곧 복원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곳에 정자를 짓고 물길을 조성해 연못에 물이 차면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 될거라 생각된다. 
    계곡에는 개도맹 서포터스들이 생태보전지역을 알리는 안내판을 곳곳에
    설치하여 이곳이 도롱뇽의 서식지임을 알리고 있는데 백사골이 그만큼 
    물이 맑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불암(부처바위)
    
    신영상가쪽으로 내려오는데 길가에 커다란 바위가 눈에 띈다. 이름하여
    불암(부처바위)라고 하는데 오랫동안 땅 속에 뭍혀 있던 것을 1981년에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일붕 서경보 스님의 시를 새겨 넣은 것이다. 
    앞쪽에서 보면 일반 바위처럼 보이지만 옆에서 보니 부처님 같기도 하다.
    아무튼 보는 사람들 나름대로의 주관이 있겠지...
    장의사지 당간지주
    
    장의사 당간지주를 보기위해 세검정초등학교로 가는데 벌써 다리에 
    힘이 빠지고 몸이 나른해져 간다. 서울에 유일하게 있는 당간지주라 
    하여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당간지주는 평범한 모습으로 이곳이 과거 
    장의사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당간지주가 있는 세검정초등학교 
    입구는 과거에 종이를 만드는 관아인 조지서(造紙署)가 있던 곳으로 
    인근에 한지마을이 조성된 것으로 봐서 상당히 큰 규모의 종이공장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세검정
    
    세검정을 바로 앞둔 언덕바지에 연산군 때 세운 탕춘대터가 있었는데 
    연산군이 연회장소로 사용했다 한다. 시냇물 소리 들어가며 술에 취해
    흥청거렸을 생각을 하니 연산군이 오히려 부러워 보였다. 지금은 흔적
    조차 찾기 힘들고 오로지 탕춘대터 지표석 만이 그 때의 상황을 알려
    주고 있다. 
    세검정은 익히 알려진대로 인조가 인조반정에 성공한 무인들과 홍제천
    맑은 물에 칼을 씻었다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세검정은
    인조반정을 의거로 평가하여 이를 찬미하는 상징으로 만들어 졌다. 
    그런데 원래 이곳은 실록을 완성한 후 사초를 씻어 종이를 재활용하던 
    세초(洗草)가 행해진 차일암이 있는 곳으로 세초가 끝나면 세초연을
    배풀던 장소이다. 세초(洗草)와 세검(洗劍)사이에 연관성은 없었을까?
    세검정 원경
    
    내 생각대로 소설 한 번 써본다면...원래 이곳을 세초하는 곳이라 
    불렀을 터인데 인조반정을 성공한 뒤 무인들이 이곳을 찾아 결의를 
    한 후 이곳의 이름을 무(武)를 상징하고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세검정
    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 세병(洗兵)이나 세검(洗劍)은 
    모두 무(武)를 상징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름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꼭 칼을 씻어서 세검정이 되었다는 말은 조금 억지스런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세검정 정자는 근자에 복원해 아담하게 꾸며 
    놓았는데 그 주위에 흐르는 물은 오염되고 쓰레기가 널려져 있어 
    시급히 정화활동을 해야할 정도였다. 
    홍지문과 오관대수문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인데 수없이 그 앞을 지나쳤지만 정작 걸어서 
    가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 옆 개울에 설치한 오관대수문은 수문만 
    설치했는데 사실 이 앞쪽과 뒤쪽에 적병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홍수에 대비하여 모두 철거한 것으로 생각된다. 오관수문 
    위쪽에 사납게 생긴 문양을 새겼는데 아마도 우리의 전통 문양인 치우황제 
    도깨비 문양인 것 같았다. 이는 적병의 침입을 막는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 아닐런지...
    보도각 백불과 모형
    
    
    일정에 없었던 보도각 백불을 보러가자고 현장에서 의기투합해 일행이 
    함께 나섰다. 이 백불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커다란 바위에 새긴 양각 
    마애불에 백토를 입힌 형태다. 옆에서 백불을 바라보니 상체와 하체가 
    앞으로 상당히 휘어있었다. 백불 바로 앞쪽은 홍제천이 있어 참배실이
    상당히 비좁다. 더더군다나 백불의 정면을 제외하고는 나무로 된 차양을 
    앞에 둘러 신비감에 휩싸여 있었다. 전체 모습을 어떻게 찍어야할지 
    몰라 고민하던 중 옆에 아마도 석가탄신일에 사용하였음직한 백불 모형이 
    놓여있어 그걸 사진기에 담았다.
    석파랑 입구와 석파랑 건물
    
    
    마지막 코스인 대원군 별장 석파랑은 음식점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안은 각종 꽃으로 보기 좋게 단장을 하였고 입구에서부터 
    운치 넘치는 석조물과 나무들이 멋들어지게 놓여 있다. 이곳 윗쪽에 
    석파랑이 있었는데 청나라풍의 창문이 특이했다. 오르는 계단도 기차
    침목으로 설치했고 주위를 문화재에 걸맞는 품격으로 가꾸어 비록 
    음식점으로 사용하긴해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외국인을 주로 상대하는 
    대단히 비싼 집이란 선입견이 있었지만 잘 가꾸고 보존한다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와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도 있겠지만...
    백사골 계곡을 내려가는 회원님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일요일 오후... 
    문화유산답사객들은 열정으로 뭉쳐 힘든 기색이 전혀 없이 오히려 
    기운이 넘쳐나는듯 했다. 부암동 답사길에 바라본 북한산 보현봉과 
    그 위에 펼쳐진 파란 하늘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그날 따라 유난히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것 같았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답사처를 회원들과 함께해서 너무 좋았고 같은 취미로
    어울린 하루가 마음의 양식을 키웠다면 내려오면서 일행들과 마신 막걸리는 
    내 몸의 무게를 한층 더 무겁게 했으니 이를 기뻐해야 할것인지...ㅎㅎㅎ
    비발디 - 플룻협주곡 '붉은 방울새'
    Antonio Vivaldi, 1678∼1741 
    
    출처 : 불혹전후
    글쓴이 : 소올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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