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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화성]영의정 김상로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8. 31. 10:00

    영의정 김상로 묘

     

    청풍김씨 4대6정승 중에 김유선생의 아드님 두분이 포함되어 있다. 즉 좌의정 김약로와 영의정 김상로가

    그 인물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김상로 묘가 나와 반가움에 앞뒤 가리지 않고 주소만 달랑 적어 들고

    화성시를 향했다. 그런데 아뿔사... 재상을 지낸 분의 묘가 덜렁 분묘만 있고 아무런 표식이 없다.

    일단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사진만 찍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왜 재상을 지낸 분의 묘가 이지경이 

    되었을까? 

    정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숙히 관계된 김상로를 무척 싫어한 모양이다. 그래서 즉위 후에 김상로의 

    관작을 추탈하였다. 그후 고종 때 신원되었다. 

    한편 김상로의 형 김약로 묘가 과천에 있는데 현륭원 참배 시에 그 앞을 지나도록 되어 있어 그게 싫다고

    행차길을 바꿀 정도였다 한다. 최근에 청풍김씨 문중에서 과천의 김약로, 화성의 김상로 묘를 김유선생

    묘하로 이장했다고 하는데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조만간 다녀온 후 다시 올릴 예정이다.

    김약로묘 바로가기

    김상로(金尙魯)
    1702년(숙종 28)∼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경일(景一), 호는 하계(霞溪) 또는 만하(晩霞).
    부친은 대제학 김유(金楺)이며, 좌의정을 지낸 김약로(金若魯)의 아우이다.
    1721년(경종 1)에 진사가 되고 1734년(영조 10)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곧, 지평이 되고 한림(翰林) 출신이라하여 6품직에 승진하였다.
    응교를 거쳐 이듬해 정언‧교리를 역임하였으며, 1737년 경기도 양정어사(良丁御史)로 나갔다가 돌아와 부교리가 되었다. 이어 헌납‧이조좌랑을 거쳐 1740년 도청부사과(都廳副司果)가 되어 가자(加資)되고, 이어 대사간과 승지를 역임하였다.
    1742년 강원도감사로 나가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구제할 것을 상소하였고, 이듬해 대사성‧부제학이 되었다.
    1744년 승지로서 무과에 폐단이 많음을 지적하고 엄격하게 시행할 것을 건의하였다. 같은해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도내의 사태(沙汰)로 인하여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구휼할 것을 상소하여 허락받았다.
    1745년 한성우윤‧대사헌‧도승지‧병조판서를 역임하고,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었다.
    1748년 공조판서가 되고, 이듬해 탕평책에 찬성하였다.
    1750년에 겸지경연 우빈객, 1752년에 우의정이 되었다가 이듬해 파직되었다.
    1754년 좌의정에 오르고 1759년 영의정이 되었으며, 말과 행동이 맞지 않은 사헌부 관리들은 교체시킬 것을 건의하였다.
    이듬해 개성유수 남태제(南泰齊)가 재주와 견식이 있고 마음가짐이 공평한 것을 알고 승격시킬 것을 천거하였다.
    1762년 사도세자의 처벌에 적극 참여하여 영조의 동조를 얻었으나 왕이 이를 후회하자 청주에 귀양가게 되었으며 특명으로 풀려난 뒤 봉조하가 되었다.
    죽은 뒤에 정조가 즉위하자 관작이 추탈되었으나 고종 때 다시 신원되었다. 시호는 익헌(翼獻)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영의정 김상로 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 38-2
       청풍김씨


     

     

     

     

     

     

     

     

     

    ★청풍김씨 가계도
    13세
    김인백
      14세
    김극형
    (공조정랑)
      15세
    김징
    (관찰사)
      16세
    김구
    (우의정)
      17세
    김희로
      18세
    김치만
      19세
    김종수
    (좌의정)
       
        17세
    김재로
    (영의정)
      18세
    김치인
    (영의정)
     
                             
      16세
    김유
    (대제학)
      17세
    김취로
      김약로
    (좌의정)
       
      김상로
    (영의정)

    ▼ 영의정 김상로 묘 후경... 

    ▼ 영의정 김상로 묘 전경...

    풀이 우거지고 석물이 전혀 없어 묘인지 조차 잘 알 수 없을 정도다. 다만 먼저 답사한 사람들의

    자료에 의하면 맨 윗쪽이 김상로 묘라고 전해져 나 또한 그냥 그대로 수용한다.

    ▼ 유일하게 묘역 뒷쪽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어 표식으로 삼는다.

    ▼ 영의정 김상로 묘 주산... 이곳은 석물이 없어서 사격만으로 판단해 볼 뿐이다.

    ▼ 영의정 김상로 묘.. 주산에서 맥이 내려오는지 제대로 확인을 못해서 이곳에 피력하기가 곤란하다. 

    ▼ 오후에 찾아서 햇살에 반사되어 사진이 잘 못 나왔다. 왼편 산은 김취로 묘로 들어가는 주산이다.

    ▼ 영의정 김상로 묘역에는 묘가 4기 정도 있는데 전혀 표식이 없어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없다.

    ▼ 영의정 김상로 묘역 뒷쪽으로 길이 나있고 산 밑에는 절이 있다.

    ▼ 영의정 김상로 묘 조안산.. 이날 날씨가 너무 좋아 하늘이 맑고 투명하다

    ▼ 영의정 김상로 묘 백호쪽... 아파트가 높게 자리 잡았다.

    ▼ 영의정 김상로 묘 ... 우측 산에서 맥이 내려오는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정확히 측정하진 못했다.

     

     

     

     

    ▼ 영의정 김상로 묘 청룡쪽... 나즈막한 안대가 빙 둘러져 있다 

     ▼ 영의정 김상로 묘는 마을 안에 위치해 있다.

     ▼ 영의정 김상로 묘 앞 명당은 평탄 원만하며 청룡이 잘 감싸주고 조산이 아름답게 보여진다. 

     ▼ 새로 들어선 백호쪽 아파트가 어떤 역할을 할까?

     ▼ 백호쪽에 마을이 있고 김유의 차자이자 김상로의 형 김취로 묘가 있다.

    ▼ 영의정 김상로 묘 후경

    ▼ 영의정 김상로 묘로 내려오는 주맥...

    ▼ 영의정 김상로 묘 뒷쪽 공장.. 이곳에 주차하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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