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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용인]황림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9. 11. 10:00

    황림 묘

     

    이완 묘를 거쳐 나오면 길에 묘지 3개의 표지판이 한꺼번에 보인다. 이종무장군, 이완 묘, 황림 묘

    표지판이다. 황림 묘는 생소하여 한번도 찾은 적이 없다. 네비게이션에 의존하여 차를 몰고가는데

    남의 집 앞마당까지 가서야 멈춘다. 집 주인에게 여쭤보니 오던 길 중간에 묘역이 있다고 한다.

    오던 길을 되돌려나와 언덕을 바라보니 저수지 반대편에 묘역이 보인다.

    저수지를 바라보고 자리를 잡은 묘는 이번 태풍과 호우로 인해 군데군데 무너진 흔적이 보인다. 땅이

    푸석푸석하여 기를 제대로 받고 있는 묘라고 볼 수는 없을듯 하다.

    황림(黃琳)
    1517년(중종 12)∼1591년(선조 2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온(汝溫). 황징(黃澄)의 증손으로 조부는 황준원(黃浚源)이고, 부친은 황순경(黃舜卿)이며, 모친은 조계상(曺繼商)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그 뒤 예문관검열을 거쳐 정언이 되어, 부경(赴京)하는 통사의 불법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 공무(公貿)를 금지토록 해야 한다고 상소하자, 왕이 그 타당성을 인정하고 윤허하였다.
    그 해 사헌부지평으로 전임되어, 사헌부의 여러 관원들과 같이 김홍도(金弘度)‧김계휘(金繼輝)‧이구수(李龜壽) 등의 탐학을 탄핵하였다. 1558년(명종 13) 사간원헌납이 되고, 이후 선공감판관‧병조정랑, 부수찬‧수찬 등을 거쳐 사헌부장령으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세자시강원문학이 되었다가, 다시 장령이 되었다. 1560년(명종 15) 의정부사인이 되고, 이후 사간원사간‧홍문관교리‧군자감정을 거쳐,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후 호조참의와 우부승지‧우승지‧좌승지로서 계속 임금을 시종하였다.
    1573년(선조 6) 나주목사를 거쳐 여주목사로 재임 당시, 지방관 중에서 가장 고을을 잘 다스려 특지로 대사헌에 제수(除授)되었으나, 풍헌(風憲)의 수장으로는 적합치 못하다는 사론으로 탄핵되어 관직이 갈렸다. 1577년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공조판서‧호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역임하다가 75세로 사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용인시 황토유적 제40호
       황림 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14(골프연습장사거리 인근)
       창원황씨


     

     

     

     

     

     

     

     

     

    ▼ 개울가 사거리에 위치한 세분의 문화재 묘역 표지판..

    ▼ 황림 묘역 

    ▼ 황림 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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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림 신도비 후면

    ▼ 황림 묘

    ▼ 황림 묘 측경

    ▼ 황림 묘 전경

    ▼ 황림 묘표

    ▼ 황림 묘 좌,우 석물

    ▼ 황림 묘 석물 

    ▼ 황림 묘 입수도두..

    ▼ 황림 묘 후경.. 저수지 물을 바라보고 향선을 정했다.

    ▼ 황림 묘 측경

    ▼ 황림 묘 청룡쪽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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