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영동]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3. 3. 25. 10:00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풍수답사 겸 시산제를 금남정맥 끝자락인 충북영동으로 다녀왔다. 이곳은 난계 박연의 고장으로
능원묘에서도 두어번 다녀온 곳인데 갈 때마다 박흥생선생 묘는 워낙 높은 곳에 있다보니
도로에서 뻔히 보이는데도 올라갈 엄두를 못내고 가보질 못했는데 이번 시산제 때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묘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이곳은 풍수적으로 볼 때 회룡고조형의 횡룡입수의
전형적인 곳이다. 앞으로는 금강이 흘러들어오고 멋진 관모사가 조산으로 받쳐주고 있어
상당히 좋은 묘역이다. 이곳은 현무정 부근의 과룡처에 쓴 묘역도 볼 수 있고, 섬룡으로 쓴
묘역도 볼 수 있어 풍수 공부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바람이 다소 많이 불어 이에 대한 비보책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난계 박연의 사촌형이다.
박흥생(朴興生)
1374(공민왕 23)∼1446(세종 28).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
본관은?밀양(密陽). 자는 경부(敬夫), 호는 국당(菊堂)·국은(鞠隱)·춘곡(春谷). 할아버지는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시용(時庸)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윤 천귀(天貴)이며, 어머니는 전객사령(典客司令) 목신우(睦臣佑)의 딸이다. 일찍이 문명을 떨쳐서 1386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390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김훈(金訓)·서호(徐?), 사촌동생 연(堧) 등과 김자수(金子粹)의 문하에서 학업에 전념하였다.
이를 지켜본 이색(李穡)이 그의 재주를 칭찬, 추천하여 여흥부(驪興府)·춘천부(春川府)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의 강의는 치밀하고 상세하여 원근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1423년(세종 5) 창평현령에 제수되어 기강을 엄히 하고 소송을 분명히 하여 칭송이 컸으나, 친상을 당하여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만년을 자연과 더불어 보냈다.
고향에 정자를 세워 이락정(二樂亭)이라 하였다. 1427년(세종 9) 동생 흥거(興居)와 전답을 가지고 분쟁하다가 사헌부에 의해 탄핵, 파직되었다가 1455년 세조가 즉위하면서 고신(告身 : 벼슬길에 오른 관리의 임명 사령장)이 환급되었다.
저술로는『촬요신서(撮要新書)』가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국당 박흥생(朴興生) 묘 밀양박씨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입구 표지석...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비 문화재 안내문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전경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신 묘비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신 묘비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구묘비 전,후,측면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석물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뒷쪽에 있는 초배위 충주양씨 묘와 입수도두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후경... 앞쪽의 조산에서 맥이 백호쪽으로 돌아 혈자리로 돌아들어오는 회룡고조형이다.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에서 바라보이는 관모사 사격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청룡쪽 후경... 금강이 흘러 들어온다.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백호쪽 후경... 낮은 산능선에 도로까지 개설되어 그쪽이 조금은 허하다.
▼ 국당 박흥생(朴興生)선생 묘 백호... 뒷쪽에서 장막으로 받쳐주고 있지만 바람이 무섭다.
'답사는 즐거워 > 묘지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 양평]청강 이제신(李濟臣) 묘 (0) 2013.03.28 [충북 영동]괴애(乖崖) 김수온(金守溫) 묘 (0) 2013.03.26 [강원 원주]김천석(金天錫)-선조 국구 김제남 손자 (0) 2013.03.23 [강원 원주]김내(金琜) 묘-연흥부원군 김제남(金悌男)의 장남 (0) 2013.03.22 [강원 원주]의민공 김제남(金悌男) 신도비 및 묘(선조의 국구) (0) 2013.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