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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남양주]진접 여경구가옥(榛接 呂卿九家屋)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4. 7. 29. 10:00

    진접 여경구가옥(榛接 呂卿九家屋)

     

    남양주 진접을 지날 때마다 길 옆에 여경구가옥이라는 문화재 안내판을

    보곤 했는데 이번 광릉지구 왕릉을 답사하면서 핸들을 꺾어 들어갔다.

    멀리서 봤을 때 산아래 용호가 감싼 곳에 위치하여 명당에 있는 들판과

    여러 가옥들을 호령하는 자세라고 여겨진다.

    종가댁의 공통분모를 보면 낮으막한 산의 끝부분에 햇볕이 잘 들고 앞쪽

    들판이 경사지지 않고 평탄한 곳에 전답이 펼쳐져 있어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그런 곳이 대부분이다.

    이곳은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여 마을을 내려다보는 위치인데

    퇴뫼산 용맥이 마지막 기운을 뭉친 용진처에 위치하고 사격이 잘 감싸고

    있으며, 왕숙천이 환포하는 곳에 위치하여 매우 좋은 입지를 만들었다.

    다만 언덕위에 위치하여 바람길을 조심해야 하며 물이 흘러나가는

    곳이라 현대에 산다면 재물이 걱정되는 곳이다.

     

    진접 여경구가옥(榛接 呂卿九家屋)  
     
    경기도 속자료 제129호. 마을에서는 연안 이씨(延安李氏) 동관댁이라 부르는데 명당의 터에 집을 지어서 누대 복록을 누려왔다고 한다.

    이 집은 여경구(呂卿九)의 장인인 이덕승의 8대조가 약 250여 년 전에 지었다고 전해오는데, 실제로 조사한 바에서도 대략 18세기의 기법과 형상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문채·사랑채·안채·사당이 비교적 옛 모습을 잘 지니고 있는 편이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기슭의 동남향에 자리잡고 있어서, 비교적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대문채에 닿는다. 대문은 서북향을 한 솟을대문이고 외양간과 행랑방이 좌우에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있고, 산기슭 쪽으로 동남향한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간반통(間半通)의 네 칸 반 규모로, 앞쪽에는 반 칸의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서쪽 끝의 반 칸은 툇마루를 없앴다. 큰 사랑방이 두 칸, 마루 한 칸, 작은 방이 한 칸인데 뒤쪽으로 쪽마루와 벽장을 드려 쓸모 있게 하였다.

    기단은 무사석(武砂石)처럼 큼직큼직한 돌을 알맞게 다듬어서 적절하게 쌓았다. 산석(山石) 그대로의 자연석도 아니고 말끔하게 다듬은 것도 아니지만 네 켜쯤 높직이 쌓은 품이 매우 활달하면서도 둔중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안목 있는 주인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집도 축대와 같은 탈속한 멋을 지녀서 별다른 치장이 없어도 범상하지 않게 느껴지고 있다. 사랑채 맞은편 마당 끝에는 헛간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이 마당 동편에 안채 일곽이 있다. 이 일곽은 형의 곳간채와 자형의 안채가 합쳐져 형으로 형성되었고, 안채는 역시 동남향이다.

    안채에 들어서려면 곳간채 귀퉁이에 설치된 중문을 통하여야 하는데, 미묘하게 구조되어서 내외벽(內外壁)이 저절로 이룩되게 되어 있다. 안채는 특색 있는 평면구성을 하고 있는데 동남향한 부분에 간반통의 두 칸 넓이의 대청이 있고 그 서쪽에 두 칸의 방이 있다.

    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어 대청과 연결된다. 대청의 동편에는 두 칸 크기의 안방이 있다. 경기도 중부지방의 안채는, 안방이 대청의 서편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집에서는 그 반대쪽인 동편에 있다.

    안방에 이어 동편으로는 한 칸의 방 두개와 헛간 한 칸을 부설하였다. 두개의 방 앞에는 안방과 이어지는 쪽마루가 있어 다니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뒷방의 존재도 보기 드문 편이어서 역시 이 집의 특징으로 손꼽을 수 있다.

    안방의 남쪽으로는 3칸 넓이의 부엌이 설치되어 있다. 사당은 사랑채 뒤편 한단 높은 터전에 따로 위치하였는데, 반오량의 가구법과 좌우의 꽃담을 쌓은 반벽의 구성 등에서 주목할만한 기법을 발휘하였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기와를 이은 맞배지붕이다. 이 중에서 반담을 쌓은 기법은 특히 주목할만하다. 하방에서 중방까지는 작은 돌을 켜에 따라 쌓되, 돌의 크기를 일정하게 하지 않고 화장줄눈을 주어서 열롱무늬의 맛을 약간 풍겼고, 그 위에는 지네발 마루를 수키와만으로 지었으며, 또 그 위에 암키와를 이용하여 꽃담벼락을 꾸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인용>

     

     

     

     

     

     

     

     

     

     

     

     

     

     

     

     

     

     

     

     

     

     

     

     

     

     

     

     

     

     

     

     

     

     

     

     

     

    ▼ 여경구 가옥 전경. 

     

    ▼ 여경구 가옥 문화재 안내판

    ▼ 여경구 가옥 주산과 하천의 환포

    ▼ 여경구 가옥은 한창 공사중이다.

    ▼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맞춰서 지었다.

    ▼ 여경구 가옥 사당... 사당의 벽면이 아름답다..

    ▼ 여경구 가옥 담장.. 자연석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특이한 자연미 연출

    ▼ 여경구 가옥 사랑채

    ▼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광채에 출입문이 있다.

    ▼ 여경구 가옥 사당...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뒷쪽으로 배치

    ▼ 여경구 가옥 뒷담.. 낮으막하게 쌓았다.

    ▼ 여경구 가옥 안채 너머로 보이는 내곡리...

    ▼ 여경구 가옥 사랑채 앞으로 펼쳐진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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