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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14)김가진집 터(金嘉鎭家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1. 6. 10:00

     

    표 석 명

    김가진집 터(金嘉鎭家址)

    임시관리번호

    종로14

    설치연도

    2001

    표석문안

    김가진(1846-1922)은 애국계몽정치가이며 항일 운동가이다. 그는 1877년 급제한 후, 주일본 판사대신, 군국기무처 의원, 독립협회 위원, 대한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한일합병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중국에서 병사하였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체부동 45-2

    찾아가는 길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95m 세븐일레븐 앞 대로변

    관계되는 내용

    김가진(金嘉鎭)

     

    1846(헌종 12)~ 1922. 한말의 문신.
    일제강점기 대동단(大同團)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했다. 본관은 안동. 호는 동농(東農). 아버지는 예조판서 응균(應均)이다. 1877년 문과에 급제하여 부수찬·주차일본공사관참찬관·동부승지 등을 역임했다. 1887년부터 4년간 주일본판사대신으로 도쿄에 주재했으며 1891년부터 안동대도호부사를 지냈고, 1894년 갑오개혁에 군국기무처회의원으로서 참여했다. 1896년(건양 1)에는 독립협회의 위원이 되었으며, 1897년(광무 1) 교전소(校典所) 지사원(知事員)이 되었다. 그뒤 중추원의장·궁내부특진관·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1906년 대한자강회가 조직되자 이에 참여했으며, 1909년(융희 3)에는 대한자강회의 뒤를 이은 대한협회의 회장이 되었다. 1910년 한일합병 뒤 일본정부가 수여한 남작을 받았다가 반납했으며, 1920년 비밀결사인 대동단의 총재 및 고문으로 추대되어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해 3월 대동단 총재의 명의로 포고문·통고문을 배포했으며, 대동단의 박용만(朴容萬)·나창헌(羅昌憲)·손영직(孫永稷)·고광원(高光元) 등과 공동명의로 갹금권고문(醵金勸告文)을 발표했다. 그해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으며, 대동단이 해체된 다음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했다. 한학·서예·시에도 능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서 인용> 

     

     

    ▼ 김가진집 터(金嘉鎭家址) 표석...

    이 표석은 서촌을 돌아다니며 세종대왕나신 곳 표석을 찾으려고 하다가 길에서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 전까지 김가진선생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훌륭한 선생의 일대기를 알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 김가진집 터(金嘉鎭家址) 표석... 아직도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고 있지 못하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일까?

    ▼ 김가진집 터(金嘉鎭家址) 표석... 대한제국 대신 중 유일하게 임시정부에 합류한 대신이다.

    ▼ 김가진집 터(金嘉鎭家址) 표석 건너편...

    ▼ 김가진집 터(金嘉鎭家址) 표석은 경복역 2번출구로 나와 95m 앞 세븐일레븐 가게 앞 대로변에 위치

    ▼ 김가진집 터(金嘉鎭家址) 표석 위치..<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김가진집 터(金嘉鎭家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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