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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44)박인환선생 집 터(朴寅煥家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1. 25. 10:00

     

    표 석 명

    박인환선생 집 터(朴寅煥家址)

    임시관리번호

    종로44

    설치연도

    2004

    표석문안

    이 곳은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1926~1956)이 1948년부터 1956년까지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하였던 장소이다. 1955년에는 <박인환 시선집>을 냈으며 <목마와 숙녀>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어 지기도 하였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세종로동 116

    찾아가는 길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뒤로 돌아 100m 교보생명빌딩 옆

    관계되는 내용

    박인환(朴寅煥)

     

    1926∼1956. 시인. 본관은 밀양(密陽). 강원도 인제 출신. 아버지 광선(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의 4남 2녀 중 장남이다.
    1939년서울 덕수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광복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 뒤 상경하여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김광균(金光均)·이한직(李漢稷)·김수영(金洙暎)·김경린(金璟麟)·오장환(吳章煥)·김기림(金起林) 등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48년 서점을 그만두면서 이정숙(李丁淑)과 혼인하였다. 그 해에 자유신문사, 이듬해에 경향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는 김병욱(金秉旭)·김경린 등과 동인지 ≪신시론 新詩論≫을 발간하였으며, 1950년에는 김차영(金次榮)·김규동(金奎東)·이봉래(李奉來) 등과 피난지 부산에서 동인 ‘후반기(後半紀)’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51년에는 육군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한 바 있고, 1955년에는 직장인 대한해운공사의 일 관계로 남해호(南海號) 사무장의 임무를 띠고 미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955년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 朴寅煥選詩集≫을 낸 뒤 이듬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46년에 시 <거리>를 ≪국제신보 國際新報≫에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47년에는 시 <남풍>, 영화평론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신천지 新天地≫에, 1948년에는 시 <지하실 地下室>을 ≪민성 民聲≫에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1949년김수영·김경린·양병식(梁秉植)·임호권(林虎權) 등과 함께 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광복 후 본격적인 시인들의 등장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1950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밤의 미매장(未埋藏)>·<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하였는데, 이런 작품들은 도시문명의 우울과 불안을 감상적인 시풍으로 노래하여 주목을 끌었다.
    1955년에 발간된 ≪박인환선시집≫에 그의 시작품이 망라되어 있으며 특히 <목마와 숙녀>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서 우울과 고독 등 도시적 서정과 시대적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1956년 작고 1주일 전에 쓰여진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기도 하였다. 1976년 그의 20주기를 맞아 장남 세형(世馨)이 ≪목마와 숙녀≫를 간행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박인환선생 집 터(朴寅煥家址) 표석

    표석공부를 하면서 광화문 일대에 엄청 많은 표석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은 관청의 터였지만 일부 근현대역사유적지도 있다. 교보생명 옆자리에 박인환집터가 있어서 의아했다. 광화문 주변은 관청자리일텐데 이곳에 집이 있다면 당시에 한끗발 하던 집안 아니었을까? 아무튼 박인환 시인은 너무 짧은 생애를 살다 가신 분이다. 망우리 공원묘지에 선생의 묘역이 있는데 묘역은 그런대로 기운을 받는 곳이다. 요즘은 묘역 입구에 계단까지 조성해서 한층 대우 받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인환선생은 음택지나 양택지나 내가 참 많이 소개하고 있다..ㅎㅎ 

     ▼ 박인환선생 집 터(朴寅煥家址) 표석

    ▼ 박인환선생 집 터(朴寅煥家址) 표석... 이곳은 인근 빌딩에서 나온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 박인환선생 집 터(朴寅煥家址) 표석 우치... 이곳에 왜 항상 사람들이 많을까? 입에 한 대 씩 다 물고 있다.ㅎㅎ<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박인환선생 집 터(朴寅煥家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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