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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45)백련사 터(白蓮社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1. 25. 11:00

     

    표 석 명

    백련사 터(白蓮社址)

    임시관리번호

    종로45

    설치연도

    2001

    표석문안

    백련사는 조선말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로 이름났던 김유근(1785~1840)의 집이다. 그는 대사헌, 예조판서, 병조판서, 판돈녕부사에까지 올랐던 당대의 세도가였다. 김유근은 이곳에 집을 마련한 후에 집 뒤에 있는 산봉우리가 백련봉인 것을 감안하여 백련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동 25-1

    찾아가는 길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10m 버스정류장 종로11 승차-->금융연수원 앞 하차 -->230m 국군서울지구병원 내(부대 내에 있어 허가를 득해야 출입 가능함)

    관계되는 내용

    백련사 터(白蓮社址)

     

    이곳은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옥호정과 아주 가까운 곳인 삼청동25번지 일대이다. 김조순의 큰아들인 황산(黃山) 김유근(金逌根)은 종가댁의 대를 이어 가려는 영안부원군의 뜻에 의해 종백부인 김용순(金龍淳)에게 입후 된다. 큰댁으로 양자를 보냈지만 가까운 곳에서 살게 하려는 영안부원군의 사랑이 바로 옆 산자락에 김유근(金逌根)의 집을 짓게 하였다고 생각 된다. 백련사라는 집이름은 북악산 기슭인 백련봉 아래라서 백련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세칭 안동김씨 1차 세도정치 때 실세이며 1832년 4월 영안부원군 별세 후부터 1837년 병환으로 정계에서 은퇴하기 직전까지 실질적인 1인자였던 김유근은 그러나 정치 보다는 학문과 예술을 더 사랑한 것 같다. 백련사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추사 김정희, 이재 권돈인 등과 더불어서 학문을 연구하고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추사 김정희가 백련사 현판을 써 주었으며, 김유근의 유명한 묵소거사자찬 시는 추사가 글씨를 씀으로서 더욱 유명해 졌다. 세 분 사이의 우정은 완당전집은 물론 새로 연구되는 황산유고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836년부터 중풍을 앓은 김유근은 1837년 까지 활동하였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1837년 말부터 밖에 출입을 못하고 실어증까지 겹쳐 고생하다 1840,12.17일 운명하였다.

    <안동김씨대종중 사이트에서 발췌하여 편집> 

     

    김유근(金逌根)

     

    1785(정조 9)∼1840(헌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선(景先), 호는 황산(黃山). 할아버지는 김이기(金履基)이고, 아버지는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이며, 어머니는 홍배호(洪配浩)의 딸이다.
    1810년(순조 10) 부사과(副司果)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곧 홍문록회권(弘文錄會圈)에서 5점을 얻고 사서를 거쳐 검상(檢詳)이 되었다. 1817년에는 이조참의가 되고, 2년 뒤에는 대사성을 역임한 뒤 곧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이 되었다.
    1822년 이조참판에 오르고, 3년 뒤에는 대사헌이 되었으며, 1827년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는 도중 면회를 거절당한 전직 관리(德川郡에서 퇴임한 전직 아전)에 의해 일행이 살상되는 흉변을 당하여 부임하지 않고, 돌아와서는 병조판서에 올랐으며, 곧이어 이조판서로 자리를 바꾸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군사의 실권을 잡아 판돈녕부사에 올랐으나, 중풍에 걸려 4년간 말을 못하는 고통을 받다가 죽었다. 시와 서화에 모두 능하였으며, 특히 갈필(渴筆: 붓에 먹물을 묻혀서 그리는 수법)을 사용하여 지극히 간일(簡逸: 간략하면서도 안락함)하고 문기(文氣) 넘치는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를 잘 그렸다.
    유작으로 개인 소장의 「오주고목도(五株枯木圖)」와「괴석도(怪石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연산도(硏山圖)」 등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백련사 터(白蓮社址) 표석

    백련사터는 표석답사를 하면서 감사원 부근에 있다고 나와서 여러 번 고생한 끝에 그 표석이 옛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국군서울지구병원이 그 자리에 들어서 있어서 군부대 출입을 얻어야 답사가 가능하다. 예전에는 주차장 가운데에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외곽 담쪽으로 다른 표석들과 함께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다른 답사객들이 이곳을 답사 하려면 허가를 얻어 들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 먼저 다녀온 제 사진을 여러분들과 공유하도록 할테니 필요하신 분은 쪽지나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 백련사 터(白蓮社址) 표석

     ▼ 백련사 터(白蓮社址) 표석... 주변에는 이곳에 있었던 여러 표석들이 같이 모여있다.

     ▼ 백련사 터(白蓮社址) 표석 주변에 있는 다른 표석들... 재동백송의 씨앗을 받아 심었다는 백송 표석...

     ▼ 그런데 그 나무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 백련사 터(白蓮社址) 표석 위치... 담장 안 지구병원에 있는데 왼편 길로 들어가서 허가를 얻어야 한다.<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백련사 터(白蓮社址) 표석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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