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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46)백록정 터(白鹿亭址)-철거됨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1. 26. 09:00

     

    표 석 명

    백록정 터(白鹿亭址)

    임시관리번호

    종로46

    설치연도

    2000

    표석문안

    조선말 경기감사 심상훈(沈相薰)의 정자 터. 개화당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갑신정변을 계획했던 곳인데 한적하고 주변 경관이 뛰어났었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계동 산1-1

    찾아가는 길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10m 마을버스 정류장 종로02번 승자-->감사원앞 하차-->정류장 바로 옆에 위치

    관계되는 내용

    심상훈(沈相薰)

     

    1854(철종 5)∼?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순가(舜歌).
    1882년(고종 19) 수구당의 한 사람으로 임오군란 때 장호원(長湖院)에 은거하고 있던 민비에게 대원군의 납치소식을 비롯, 왕궁의 근황과 청·일 양국의 출병사실 등 서울의 형세가 호전될 것을 전달해주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고종 일행이 경우궁(景祐宮)에 임시 거처하고 있을 때, 경기도관찰사로서 경우궁에 들어와 개화당에 합세하는 척 가장하고 몰래 왕에게 정변의 기밀과 개화당의 진상 등을 알려주어 왕과 민비에게 밀통하였고, 사대당 인물들과 모의하여 청나라의 위안스카이(袁世凱)·우차오유(吳兆有) 등을 움직여 행동을 개시하도록 하여 독립당의 혁신정부를 무너뜨렸다.
    같은해 충청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동학교도의 탄압에 앞장섰고, 1893년 이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에 올랐다. 1895년 삼국간섭 이후, 친러적 경향을 띠던 수구당내에서 궁내부특진관의 직책을 맡았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탁지부대신으로 재직하였으나 악화(惡貨)인 백동화(白銅貨)와 같은 보조화(補助貨)를 주조하여 유통질서에 혼란을 초래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독립협회로부터 탄핵의 대상이 되었다가, 1898년에 체직처분을 받았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백록정 터(白鹿亭址)표석

    백록정터에 대해서는 특별히 나오는 관련문서가 별로 없다. 경기감사 심상훈에 대한 이야기는 갑신정변 당시에 김옥균 등을 속이고 왕과 왕비에게 밀통하여 처세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이런 내용들 뿐이라면 굳이 백록정터를 표석으로 새겨 기념할 필요가 있을까 의아해 진다. 표석을 단지 역사적 사실만으로 세운다고 한다면 서울의 땅, 건물마다 세워야 할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기념물을 세우되 후대에서 본받을 만하거나 기념할 만한 인물이나 건축물 등에 대해 기념표석을 세워야 한다. 백록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갑신정변을 논의하고 그가 갑신정변 주역들과 행동을 같이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배신을 한 사람인데 이곳에서 갑신정변을 계획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그냥 빼어난 경관이 있던 이곳에 백록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다.  

     ▼ 백록정 터(白鹿亭址)표석 위치<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백록정 터(白鹿亭址)표석 위치... 앞에 보이는 것이 중앙중고등학교 후문이다.<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백록정 터(白鹿亭址)표석 위치... 바로 옆이 마을버스 감사원앞 정류장이다.<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백록정 터(白鹿亭址)표석 위치... 안국역에서 걸어오기는 힘들고 마을버스를 타고 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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