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기념표석](종로120)조선일보 창간 사옥터(朝鮮日報創刊 社屋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5. 1. 6. 09:00

    표 석 명

    조선일보 창간 사옥터

    (朝鮮日報創刊 社屋址)

    임시관리번호

    종로120

    설치연도

    2005

    표석문안

    1920년 3월 5일 창간한 조선일보사 사옥 터. 조선일보는 3·1운동 이후 민족 자본으로 이곳에서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구 관철동 43-12

    찾아가는 길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골목길로 우회전하여 130m 청계천변 카페 앞 인도변

    관계되는 내용

    조선일보 창간(朝鮮日報創刊)

     

    3.1 운동 이후 문화정치의 간판을 내걸었던 일제의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1919년 9월 3일 훈시를 통하여 “언론, 출판, 집회 등에 대해서는 질서와 공안 유지에 무방한 한 상당한 고려를 기하여 민의 창달을 허하여야 한다”면서 민간지 창간을 허용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를 계기로 국내의 여러 세력들에 의해 신문 창간을 위한 움직임들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총독부에 10여건의 신문 허가 신청이 접수되었다.
    그러나 실제 창간을 허락받은 것은 세 신문에 불과했다. 총독부는 1920년 1월 4일 동아일보의 창간을 허용하였으며, 1월 5일에는 조선일보와 시사신문의 창간을 허용함으로써 세 신문에 대해서만 창간을 허용하였다. 그리하여 그해 3월 5일 조선일보가 가장 먼저 창간되었으며, 4월 1일에는 동아일보와 시사신문이 창간되어 민간신문시대의 막이 올랐다.
    가장 먼저 창간된 조선일보는 조일동화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대정실업친목회에 의해 창간되었다. 대정실업친목회는 1916년 설립된 친일기업인들의 단체로서 민영기, 조정태, 예종석 등이 중심인물이었다. 이들이 자신들의 단체명에 일본의 연호인 ‘대정’을 사용한 것만 보더라도 그 성격의 단면을 엿볼 수 잇다. 조선일보 창간 당시의 진용을 보면 사장에 조진태, 발행인 예종석, 편집국장 최강 등 모두 대정실업친목회의 중견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에서 인용> 

     

    ▼ 조선일보 창간 사옥터(朝鮮日報創刊 社屋址) 표석 

    ▼ 조선일보 창간 사옥터(朝鮮日報創刊 社屋址) 표석... 앞쪽이 청계천이다.

    ▼ 조선일보 창간 사옥터(朝鮮日報創刊 社屋址) 표석... <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조선일보 창간 사옥터(朝鮮日報創刊 社屋址) 표석 위치

     

    댓글

Designed by Tistory.